무진기행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1
김승옥 지음 / 더클래식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간 읽어야 할텐데‘ 하고 괜히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드는 책들이 있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그러한데, <무진기행>도 예전부터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불편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책 중 하나였다. 한국 단편문학의 최고봉,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라 칭송이 자자한 작품이 바로 <무진기행>이니까.

그래서 읽어 보았다. 역시 문장 만큼은 정말 빼어나다. 마치 60년대 한국영화 대사 톤 같은 이질감이 들지만, 근 6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문장들이 넘쳐난다. <무진기행> 뿐만 아니라 같이 수록된 <생명연습(生命演習)>, <확인해본 열다섯개의 고정관념> 같은 단편들을 읽어보면 더더욱 그렇다.

<염소는 힘이 세다>는 마치 김소진의 단편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 중 유일하게 계급과 가난의 폭력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60년대에 쓰여진 김승옥의 소설 속 하층민들의 삶이 90년대 김소진 단편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건, 그동안의 개발우선주의 경제가 소외 계층의 삶의 질에는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것만 놓고 보면 김승옥이 사회의식 있는 작가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가 꽤 이질적인 작품인 것일 뿐,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런 시대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록된 단편을 전부 읽고 나서는 ‘김승옥은 전근대와 근대와 탈근대가 마구 뒤섞여 있는 작가‘라는 감상이 떠올랐다. 문체와 시대 배경은 근대적이고, 개인의 상실과 일탈을 다루는 주제의식은 탈근대적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 김승옥의 시선은 지극히 전근대적이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 <서울의 달빛 0장>에서 드러나는 그의 여성관은 경악할 만한 수준이어서, 요즘 같았으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매장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돋보기로 그의 작품을 들여다본 것일 뿐, 그가 처음 등장했던 60년대 초반엔 현저한 탈근대성으로 동시대인들을 무장해제 시켰을 법하다.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평을 들었던 김승옥은 당시 문학의 미래 그 자체였을 테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읽기엔 조금 진부하고 어색하며, 고전 특유의 고졸한 맛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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