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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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또 하나의 에도 시대 역사물 시리즈. 개인적으로 미미 여사의 작품 중 <화차>나 <모방범> 같은 현대 사회물도 좋지만, 이 에도 시대극이 참 마음에 든다. 당시의 생활 풍습이나 주거, 복식 등을 세부까지 충실히 묘사하여 마치 주인공과 함께 에도 거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이 아직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 어스름한 미명이 눈 앞을 가리고 있던 그 시절, 당대인들이 갖고 있던 자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겸손함, 그로 인해 맺어진 사람들 간의 유대가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에 담뿍 들어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건을 겪고 고향 마을을 떠나 숙부가 운영하는 에도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 몸을 의탁하게 된 주인공 오치카. 그녀의 숙부 이헤에는 오치카가 갖고 있는 마음 속 어둠을 덜어주고자 미시마야 안의 ‘흑백의 방’이라는 곳에서 괴담 대회를 연다. 기이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을 수배하여 ‘흑백의 방’에서 오치카에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오치카가 들은 괴담은 ‘흑백의 방’에서만 듣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 그렇게 될까? 무시무시한 괴담은 오치카가 겪은 과거 사건을 기억에서 일깨우고, 급기야 그녀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괴담이나 기담은 그 이야기가 청자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오싹하기는 하나 공포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흑백>에서는 다르다. 오치카가 듣는 괴담은 오치카의 실제 생활을 파고들어 그녀의 묵은 아픔을 바늘처럼 찔러댄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이대로 무너질 리가 있나. 오치카는 열 일곱 소녀 답지 않은 담대함과 온화함으로 현세에 도래한 괴담 속 존재를 물리친다.
 
괴담집이지만 마치 성장 소설 같은 작품. 아픔과 두려움은 소녀의 마음을 성숙케 한다. 마음 속 어둠을 걷어낸 오치카의 괴담 대회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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