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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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 책이 페미니즘 도서로 세간에 인식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군데군데 여성 과학자로서 겪는 고충 - 학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소외된다거나, 임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 이 드러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성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과학자들이 보편적으로 마주하는 어려움과 그들의 분투를 생생히 담고 있다. 한정된 시간(대개 3년이다) 안에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연구실이 공중분해되고 교수직을 잃는다. 학자로서의 커리어가 끝나서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과학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 - 글로벌 기업의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받는 응용과학과는 달리, 자연과학이 기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재원이다 - 은 극히 한정되어 있어 이를 얻으려면 어마어마한 노력과 운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일한다. 연구실에 살다시피 하며 며칠 밤을 새는 건 일상이고,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거대한 폭풍 속으로 차를 몰고 가는 정신 나간 짓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다 광기가 극에 달해 저자처럼 심각한 조울증을 겪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인 호프 자런과 그녀의 동료 빌의 기이한 우정의 연대기이다. 몇 십년 동안 그들은 자런의 교수직에 따라 대학을 옮겨다니며 연구를 지속해왔다. 친구이면서 가족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자극하고 격려하며 먼 길을 달리고 있다. 하여 이 책은 자런과 빌, 두 사람의 과학자로서의 성장기이자, 과학이라는 끝도 없이 뻗은 도로 위의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이 이 <랩 걸>을 여타의 일반적인 대중과학서적과는 결이 다른 책으로 만든다. 현대 과학의 최첨단 이슈를 다루거나 어려운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게 일반적인 대중과학서적의 역할이라면, 이 책은 연구의 과정 과 학자로서의 성장 그 자체에 집중한다. 미네소타 시골 마을의 어린 새싹이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라는 거대한 나무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식물학자답게 나무의 성장에 빗대어 풀어낸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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