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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자격 - 도시계획학 1 : 역사 ㅣ 도시계획학 1
강명구 지음 / 서울연구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도시계획학 시리즈 중 하나로, 도시와 도시계획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도시의 자격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의 도시는 여왕이 하사하고, 미국은 공공재정을 포함해 자치역량을 필요로 한다.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공동체적 삶을 꾸려 나갈 의지와 역량을 갖추어야 도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일정 규모이상이 되면 자동으로 도시가 된다.
도시의 생성에 대해 상식을 뒤집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원시시대에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생겨났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도시가 먼저 생겨나고 농사가 나중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역설한다. 사람들이 모이며 도시가 생성된 후 유목민이 4년에 1명의 아이를 갖는데 반해 정착민은 2년에 1명의 아이를 갖게 되자 인구가 증가하고 지식의 교환을 바탕으로 도구의 발명이 농업의 발달을 불러왔다고 설명한다. 도시의 출현으로 농업과 사회가 발전하고 고도화되었다는 것이다. 설득력있다.
도시의 역사는 시민 중심에서 왕과 신을 중심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시민 중심으로 변화를 겪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이루어지는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제국의 등장에서 중세 중반기까지는 왕과 신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사회조직으로 자유와 평등의 도시정신이 퇴보하였다. 그렇지만 로마제국의 도시 공학적 성취는 놀랍다.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수로와 도로망을 만들고, 식민도시는 격자형으로 구축했다. 중세 영주는 영토 내 사람까지 소유하였고 일반인은 농노로 전락하여서 자유가 없다. 중세후반 상업경제와 능력에 기반한 시민중심의 사회로 전환이 이루어졌다가 16세기 이후 중앙집권화된 국가는 도시를 다시 위축시킨다. 19세기이후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개인의 관심을 벗어난 도시계획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누가 도시계획에 관심을 가졌을까?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왕이 내부적으로 통치와 지배를 위해, 외부적으로 군사목적으로 도시계획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는 자본가들이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상공업에 유리한 도시 기반시설을 계획했고, 18세기 이후 시민은 자유와 평등을 향유하며 스스로 도시계획을 세워나갔다.
19세기부터 공중보건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도시계획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런던의 템스강은 악취가 심했고,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는데, 하수도시스템 건설로 더 이상 템스강으로 하수가 흘러들지 않게 됨으로써 해결되었다. 하수도 설치와 같은 도시계획이 과학의 도움으로 시작된 것이다.
조선시대 도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헤세 바르텍이 1895년 출간한 <조선, 1894년여름: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의 여행기>를 소개하는데, 런던과 다를바 없다. 오물과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도로는 정비가 되어있지 않고, 물건을 나르는 조랑말 빌리는 값이 너무 비싼 상황이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조선시대의 정갈한 모습과는 너무 다른 묘사여서 충격적이다.
20세기 도시계획으로 백색도시, 축복도시, 공업도시와 같이 건축가들이 도시를 건축의 대상으로 계획하지만 큰 성공을 보지 못하고, 르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으로 파리의 구도시를 밀고 교통이 원활한 고속도로 중심과 고층 건물의 도시를 만들자는 '어바니즘'이 유행하지만 도시가 많이 망가진다. 차량과 건물보다 사람 위주의 '뉴어바니즘'역시 시민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도시는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결론낸다.
세계의 역사를 도시와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