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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평점 :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 대왕의 가정교사였다.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가 이상세계에 머물러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로 내려와 대중이 사랑하는 서사시와 비극이 자신의 철학체계인 윤리학, 정치학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비극을 철학이자 학문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관심분야는 철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논리학, 심리학, 식물학, 정치사 등과 같이 다방면에 있었고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BC335년 경에 쓴 작시에 관한 글이다. 당시 문학은 운문으로 쓰였으므로 '시'는 비극, 희극, 서사시, 서정시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구성)을 중시여기고, 감정의 정화(카타르시스)를 거쳐 성숙한 인격을 갖추고 미덕의 삶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원 전에 이미 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진 것이 놀랍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구성요소는 물론 용어 정의까지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역사, 서사시, 비극의 설명을 보자. 역사는 개별사건의 나열이고, 서사시는 그 중 일부를 떼어와 길게 이야기한다. 비극은 서사시를 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려야 하므로 태양이 한 번 도는 시간(12시간) 내에 이야기가 끝나도록 해야한다. 따라서 비극은 서사시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우월하고, 서사시는 필연적, 개연적으로 일어날 만한 일을 제시하므로 역사보다 우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비극이란 "배우의 연기를 통해 사건을 모방하여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정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26)." 비극의 구성요소는 여섯 가지(대사, 노래, 시각적요소, 플롯, 성격, 사상)이다. 대사와 노래는 모방의 수단이고, 시각적 요소는 모방의 방식이며, 플롯(구성), 성격(행위자의 특성), 사상(행위자의 의견)은 모방의 대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시학에 맞추어 기존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 플롯은 <오디세이아>처럼 이중적 플롯을 전개해 가다가 고귀한 등장인물과 악한 등장인물이 서로 정반대의 결말을 맞는 플롯이다(49)." 또한, "호메로스는 칭찬받을 점이 많지만, 시인이 하지 말아야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칭찬 받을 만하다. 시인은 자기가 직접 나서서 말하는 것을 극히 삼가야한다...(중략) 호메로스는 도입부에 해당하는 짤막한 몇 마디 이후로는 곧바로 한 남자나 한 여자, 또는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개성이 뚜렷하다(98)."
목차가 후에 만들어져서인지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쓴 것 같다. 비극의 구성요소 여섯가지를 설명하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한참 플롯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노래를 언급하고, 다시 플롯을 이야기 하다가, 성격을, 인지를, 다시 플롯으로 돌아와 이야기하고 있어서 초반에 책을 읽는데 혼란스럽다. 요즘처럼 목차대로 설명되어 있는 책에 익숙해진 독자에게는 우왕좌왕 갈피를 잡기 어려울 수 있겠다. 이 책이 비극이었다면, "플롯의 개요를 미리 작성하고 에피소드를 채워 넣어 이야기를 발전시키라(67)"고 조언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맞지 않는 플롯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을 분석하면서, 독자가 이미 모든 작품을 알고 있으리라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극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 굳이 줄거리를 요약해 주지 않는다. 다행히 상세한 각주가 큰 도움이 된다. 나아가 "여자는 열등하고 노예는 비천하기 짝이 없지만, 여자와 노예도 선할 수 있다(56)"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용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당시 가치관도 해석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찬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