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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는 '미스터리의 여왕'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간호사와 약제사로 일했고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평생 배우며 살았다. 1920년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시작으로 1975년 <커튼>까지 매해 작품을 발표한 다작가이다. 100여 권이 있는데, 성경과 세익스피어 작품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이 책은 영국사를 전공한 학자가 보는 애거서 작품의 비판적 해석이다. 어려서 흥미위주로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졌다면 성인이 되어서는 애거서의 제국주의적 우월의식,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 계급주의적 차별의식, 무지로 인한 편견이 작품 곳곳에서 느껴져 불편할 수 있다. 애거서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시대배경과 1차, 2차 세계대전에 따른 사회상을 반영하였을 것이므로 염두에 두고 볼 일이다.
애거서의 작품에는 차별주의적 표현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인종적 차별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원제에 'Nigger(검둥이)'를 사용한 것인데, 당시 영국에서는 문제되지 않았으나 미국에서 출판할 때는 '인디언'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And then there were none>으로 바꾼다. 또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의 사람들에 대해 막연한 인종적 차별과 편견이 곳곳에 나타난다. 싱가포르를 기계적인 나라로, 베트남인들은 싸움밖에 원하는 게 없는 분별없는 사람들로, 아프리카인을 주술에 의존하는 낙후된 사람들로 묘사한다. 같은 유럽인들에 대한 편견도 그대로 노출시켜 이탈리아인은 도둑이자 거짓말쟁이로 표현한다. 이러한 편견은 무지의 소치다. 그 용감함이 애거서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애거서 개인의 독특한 점도 소개한다. 집과 탈 것, 호텔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관상학을 맹신하고, 여행을 즐겨했다고 하며, 소설에 반영한다. 집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8채의 집을 소유하였고, 여러 작품에 집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과 같이 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은 기차에 대한 저자의 애착을 보여주는데 자동차만큼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시대상을 그려보며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1차대전에 여성들이 참전하였고, 그 공로로 여성참정권이 주어졌다. 군복무에서 남녀평등이듯 정치에서도 평등하게 된 것이다. 전간기(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는 배급을 받으며 살았는데, 애거서의 미국 지인들이 구호물품을 보내주면 작은 파티도 하였다고 한다. 1차대전으로 망자를 만나고자하는 사람들이 늘자 심령술이 유행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1차대전이 끝나가며 영국의 파워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미국과 소련이 등장한다.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독학하여서인지 애거서의 문장력이 형편없다는 평가는 놀랍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한 것을 기반으로 미시사(국가의 역사가 아닌 인간 개인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책 또한 애거서의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상세한 묘사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애거서의 여러 작품을 주제에 맞게 통합하기도 분해하기도 하면서 분석한다. 소설 외적인 요소인 애거서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 영국인들의 특성과 같은 주제에 맞게 작품을 바라보니 의외의 사실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애거서의 자서전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소설만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저자의 삶은 또다른 작품과 맞먹는다.
애거서의 작품을 여러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애거서 팬이라면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