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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팽팽한 긴장 속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개정판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6월
평점 :
"조선이라는 나라가 기본적으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정치가 이루어졌고, 참모의 적절한 발탁과 활용은 그 시대의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6)."
518년간의 조선은 절대왕권의 시대가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유지하고, 백성을 중히 여기는 민본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이 기본은 조선 건국을 진두지휘한 정도전에게서 나왔는데, 핏줄로 이어지는 왕의 재량은 고르지 못할 수 있으나, 과거제를 통해 뽑은 엘리트들은 일정의 능력으로 왕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조선왕조는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 무너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하면서 이어졌다. 이 책은 왕 중심이 아니라 42명의 참모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신하라는 이름보다 참모라고 정한 것은 좀더 왕 가까이서 적극적으로 국정을 이끌어내 낸 인물이라는 의미겠다. 결정은 왕이 내리지만 그 결정의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로 좁혀진 개념이다. 참모들은 대부분 과거를 통해 벼슬에 오른 수재들이었고, 혹은 어린 왕보다 국정 경험이 많은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정치, 경제, 외교,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며 왕만큼 중요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종묘에는 왕들의 신주를 모신 정전뿐아니라 훌륭한 신하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을 두었다는 것은 조선의 왕이 참모를 존중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참모들을 소개하자면, 개국공신 정도전, 세종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세종이 아꼈던 황희, 천민출신의 과학자 장영실을 비롯한 조선 초기의 참모들부터 수양대군을 왕으로 세운 한명회와 신숙주, 폭군 연산군과 광해군을 쥐고 흔들었던 장녹수와 김개시, 16세기 성리학 학문수준을 끌어올린 호남의 김인후, 성리학의 근본원리를 파헤치는데 힘쓴 이황과 실천을 중시하는 라이벌 조식, <맹자>를 읽으며 개혁과 실천을 중시한 이이가 있다. 양란 시대에 유성룡은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지나치다 생각한 것을 반성하고 전쟁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징비록>을 남겼고, 조헌은 실천하는 참모 의병장으로, 이덕형은 외교적 능력으로 풀어나갔고, 일본인이지만 예의의 조선을 흠모해 귀화한 김충선은 조총과 화포 제작을 알려주며 여러 전쟁에서 활약했다. 문무를 겸비한 장만은 국방전문가로서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최명길은 실리를 내세워 병자호란의 희생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였다. 치열한 당쟁시기의 남인 송시열과 맞수 허목, 실물경제에서 성과를 보인 김육, 정조의 대표 참모 정약용이 인상에 남는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인물로 신숙주와 황희가 있다. 신숙주는 변절자로 알고 있었지만, 집현전 학자로 누구보다 뛰어났고, 단종 보다 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 수양대군을 옹립하며 성공시킨 참모다. 단종 입장에서는 천하의 나쁜 인물이지만, 세조 입장에서는 둘도 없는 참모인 것이다. 신숙주는 중국과 일본과의 외교에도 능했으며, 저서 <해동제국기>에서 일찌기 일본의 호전성을 간파하였고 이후 이 책이 통신사의 필독서가 되었다. 또한, 의외로 황희가 젊은 시절에는 매관매직에 청렴하지도 않았으나, 왕의 신임을 받고 오랫동안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서 부드럽지만 할 말 다하는 인물로 성장하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실록에서 참모에 대한 평가는 후기 집권세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예로 서거정은 나라에서 펴내는 거의 모든 책의 서문을 쓸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지만 후대 반대파인 사림파의 평가에서는 그가 젊은이를 우습게 여기고 후생을 장려하지 않은 속좁은 사람이라니 새겨들을 일이다. 또한, 서인의 영수로 추종되는 율곡 이이에 대한 광해군 시대 동인의 평가에서 십만양병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일부러 적지 않은 것이다. 다른 자료를 통해서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로 반대 의견을 고수하는 참모들도 많다. 이황은 왜에 대해 교린정책을, 조식은 토벌정책을 주장하였다. 재야에서 백성들과 가까이 생활한 조식의 판단이 더 옳지 않았을까한다. 또한, 중국이 명에서 청으로 바뀌는 시기에 명에 대한 의리로 척화론을 주장한 김상헌과 실리외교로 주화론을 주장한 최명길도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않는 대결상대였다. 지금에 와서는 시대흐름에 맞았던 최명길의 결정에 손을 들지만 당시 그의 용단으로 왕은 삼전도의 굴욕을 견데야했다.
조선의 분위기를 조금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조식이 살던 16세기에는 남녀구분 없이 고르게 나누는 균분상속이 엄격하게 지켜져서 부유한 외가나 처가의 경제적 도움을 받은 선비들이 많았다. 또한 재야의 조식은 명종에게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상소문을 올려 문제가 되지만 조정의 관리들이 그를 변호하였다는 것이 당시 언론이 보호되었음을 증명한다.
조선시대의 엘리트 계층의 활약에 관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서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좋은 책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