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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 1840~1975
비에른 베르예 지음, 홍한결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이 책은 정말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표에 얽힌 이야기라는 것도 독특한데, 우표를 통해서 세계사를 살펴보고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역사에서 사라진 세계 50여 개의 나라들이 등장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세계사를 담은 책답게 연도별로 목차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즉 ‘1840~1860’으로 시작해서 ‘1945~1975’까지 여섯 시기로 나누어서 각 시기별로 우표와 담긴 세계사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우표가 담은 이 시기에는 보야카와 같이 내전과 내전을 거듭하다 스스로 파멸한 왕국이 있고, 이제는 포격의 흔적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나라인 양시칠리야왕국도 있습니다. 또 간유 공장으로 쓰이다 화산 폭발로 무인도가 된 나라인 사우스셰틀랜드 제도나 주민들의 투표로 나라 자체가 양분된 슐레스비히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이 서구 열강이 제국주의 침탈을 본격적으로 자행하던 시기인 만큼 제국주의자들의 교묘한 술책으로 수백 년 간 평화롭던 나라가 원주민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경우와 같이 비극적인 사례도 많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25~1945’ 편의 ‘악의 한가운데에서: 만주국’ 편입니다. 만주국은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이 중국 만주 지방을 침략하고 이듬해인 1932년 이른 봄에 마지막 황제로 잘 알려진 부의를 허수아비로 내세워서 세운 괴뢰국입니다. 이 책에는 만주국의 가면을 쓰고 일제가 행한 다양한 악행 중에서 731부대의 만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1935년 무렵 이미 정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위장한 731부대가 만주국을 실험실 삼아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벌어지는 실험의 주축은 마루타라고 불리는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뇌와 창자의 적출과 변형과 말 피의 주입 그리고 가스실·저압실·원심분리기 투입 등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부대의 가장 중요한 실험은 전염성 생물학적 물질에 대한 체계적 실험이었습니다.
탄저균, 발진티푸스균, 이질균, 콜레라균은 물론이고, 비교적 생소하지만 그들 못지않게 끔찍한 페스트균까지 실험했다고 알려져 있죠. 특히 전염 매개체로 선택된 것은 파리였는데, 특수 제작한 번식통 수천 개에서 파리를 키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만주국은 1945년 다시 중국 영토가 되었고 철저히 은폐를 시도한 일제에 의해서 오늘날 731부대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야산 밑에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는 무시무시한 화학물질 폐기장이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또 ‘1945~1975’ ‘조직적인 집단 자결: 류큐 제도’에서는 1957년 발행된 불교신화에 나오는 압사라가 그려진 류큐 우표와 함께 일본군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시행된 집단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쇠뇌와 겁박 그리고 조직적으로 자살을 유도함으로써 15만 명 즉 주민 1/3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말기에 한글에 대한 탄압을 비롯해서 황국신민서사 그리고 창씨개명 등 잔혹한 동화정책을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각 이야기마다 우표를 보여주고 무엇보다 각 나라의 지도와 개요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간결하고 짜임새가 있게 설명하고 있어서 술술 읽힌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 책을 보니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해서 모았던 우표들이 생각납니다. 그 때 우표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사건들과 인물 들을 보면서 이것들이 하나의 역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우표를 통해서 보는 세계 역사에 대한 책이 나와 있으니 정말 신기합니다. 우표를 좋아하시는 분들 흥미로운 역사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잘 편집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리뷰어스클럽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