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작년에 거의 이 책의 3분의 2쯤을 읽다가 그만 둔것을 며칠 전에 마저 다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이 생각보다 흥미있고 재미있다.
학계와 정치계등 다양한 분야와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지식인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진정한 지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실상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인터넷의 보급과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변화하는 지식인상을 접하게 된다.  이 책에서 한국 사회을 이끌어 가는 지성으로써의 지식인들의 실태와 활동들이 재미나게 서술되어 있다.  이전에 들어서 생소하지는 않은 주제들이나 깊이 있게 알지 못했던 대중지성의 문제, 대학의 문제, 지식 환경의 문제들이 흥미있게 다루어져 있어, 나도 많이 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가의 딜레마'는 역사학의 외형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사 연구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p.  32)

과거는 존중되어야 한다.  과거는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다.  후회할 만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p.  79)

공공문화의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자칭 포스트모던이라고 공언하는 운동들이 예술과 지적 세계에 출현한 것은 과거와의 관계에서 자신감의 붕괴와 단절의식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p.  98)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에서 유래한 '헤게모니'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제도들을 매개로 한 일련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활동들을 통해서 지배계급이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해 하층계급의 순종과 동의를, 최소한 순응과 용인을 확보하는 계급 간의 관계를 말한다.
...
달리 말하자면, 헤게모니는 단순히 힘과 강제-혹은 이것을 이용한 즉각적인 위협-을 통해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현존하는 질서를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피지배자들에게 납득시킴으로써 지배하는 방법이다.  (p.  105)

신우익은 '민중주의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결코 영국과 미국에 국한되지 않은 국제적인 운동 조직의 일부라고 여겼지만 국가적 연합세력, 실제로는 국가주의적 연합세력들과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삼자협력주의자들과는 달리, 신우익은 자유주의적. 사회민주주의적 합의와 정권의 존속을 맹렬히 반대-특히 미국의 경우에 연합세력 내에서 이런 입장은 매우 다양하게 이해되었다-하였다.  (p.  124)

'과거'는 영국과 미국에서 신우익 세력들이 연합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는 아직 존속하는 전후 체제에 맞서서 새롭고 보수주의적인 합의를 지지하기 위해 신우익 세력들이 감행한 이념 투쟁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  "다른 사람들이나 어떤 문제에 관한 우리의 이미지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역사가 반영돼 있다.  어려서 배운 역사는 평생토록 우리에게 각인된다.  그것의 표상(representation)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 세계의 발견이자 여러 사회들의 과거의 발견이며, 일시적이건 항구적이건 간에 우리의 모든 지론을 아우르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품었던 의문이나 맨 처음 감정의 자취들은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pp.  154-155)

"일반 대중에 의해서 널리 읽혀지고 모든 교육 단계에서 누구난 배우는 역사는 그 잠재력 때문에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중요한 무기로 간주되어야 한다."  (p.  158)

"인문학은 교양 있는 공동체의식에 기여할 수 있다."  (p.  164)

"실제로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형성과정의 이야기에 무지하게 되면, 우리의 국가의식은 위태롭게 된다.  우리를 빚어낸 이념과 우리에게 중요한 이상에 대한 지식은 시민들을 묶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p.  169)

신우익은 학교 교육이 집단적인 역사 기억. 의식. 상상력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학교 교육의 문제와 이 문제에 대처하는 전략에 대한 그들의 독특한 해석이 입증해주듯이, 신우익은 역사학의 위기를 '조성'함으로써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재창출이라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는 쪽으로 역사 교육과 교과 과정을 수정하고 재강화하려는 의도를 실제로 갖고 있었다.  (pp.  175-176)

역사학의 위기는 단지 학교 교육과 고등 교육, 나아가 문화와 사회에서 역사 분과의 지위와 관련된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책의 서두에서 제기했던 '왜 역사학인가?'라는 좀더 중요한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실제 역사 연구, 학문으로서의 역사학, 역사 교육의 미래 방향만이 아니라 과거와 혀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실현 가능한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p.  176)

레이건과 대처가 원래 지배적인 질서에 맞서서 '혁명'과 다름없는 것을 약속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 184)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신우익의 부당한 공격과 적의는 다지 자유주의적.사회주의적 정치가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좀더 큰 계급. 인종. 성의 사회학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것은 노조 지도자와 노조원, 빈민과 실업자, 소수 인종과 민족(그리고 영국의 경우에는 이민자들), 페미니스트와 여권신장 활동가들 및 게이와 레즈비언들에 적대적인 그 시절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하고 자극하는 사회학이었다.  (p.  185)

국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이행기가 아니라 사회주의야말로 자본주의의 길에 이르는 우회로"라고 서술했다.  (p.  201)

현재는 미래가 된다.  다니엘 싱어가 반어적으로 표현했듯이 "역사는 있었지만 역사에 미래는 없다.  이제 자본의 시대는 영원하다.  (p.  204)

'역사학의 위기'란 단지 역사 분과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역사 연구와 사고의 목적과 전망의 문제임을 되풀이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p.  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과거의 힘 - 역사의식, 기억과 상상력
하비 케이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1970년대에 처음으로 대두된 '역사학의 위기'. 
시간이 흐를수록 이 문제의 쟁점은 심화 되었고, 특히 교육에서 역사학의 위기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물론 대학 등에서 취업과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유용한 타 계열에 더 학생이 몰리고, 역사학과 같은 인문, 사회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두고 각계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레이건과 대처의 과거 이용과 오용의 사례는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들 정부의 이념을 위한 과거의 이용은 솔직히 무서웠다.  정부의 신우익(New Right)을 통한 역사 교육 프로젝트는 급진적이지만 효과적이었고 부분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문이나 대중매체에서 한동안 꽤나 활발했던 new right movement가 레이건과 대처 정부에서 유래된 것이었다니...  역사 바로잡기가 중요하고 뜻 깊듯이, 역사의 정치적 오용과 남용을 막는데에도 힘을 쏟아야 될 것이다.  그러려면 역사 바로 보기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역사 교육에 힘써야 하겠으며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읽는 내내 작가도 그렇지만 책 내용이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색채가 짙다고 느꼈다.  물론 사물이나 사회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발전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책이나 신문등에서 접하는 지식 인사들의 의견이나 논평들을 적절히 걸러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인문, 사회학 책은 역시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이란 사람 참 재미있다...
조금은 생소하고, 신랄하고, 파격적(?)이랄 수도 있는 그의 어투와 문체가 처음엔 꽤나 낯설고, 거북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정도 적응이 되긴 했지만, 책장을 다 덮을 때까지 여전히 편안하진 않다.  그러나 중간중간 공감가는 의견도 많았고, '아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도 있구나' 했다. 
똑똑한 진보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사회 여러 현상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때론 비판하기도, 옹호하기도 하는 그를 통해, 내가 속한 이 사회를 좀 더 새롭고, 발전된 시각으로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파업이 시도 때도 없이 현실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장경제 속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잠재적으로는 늘 존재해야 한다.  총파업은 메시아다.  국가라는 리바이어선과 마주선 잠재적 메시아.  단 우리는 이 메시아를 탈(脫)신학화해야 하고, 그 '힘'의 행사가 맹목적으로 흐르지 않게 늘 감시하고 비판하며 그 정당성을 물어야 한다.  '이성'의 포장지로 '힘'을 감추는 근대 자유주의의 위선,  '힘'의 망치로 '이성'을 두들겨대는 좌우익 탈근대의 악마성.  근대와 탈근대의 소모적 대립을 넘어서려는 나의 유물론은 그래서 힘의 비판, 폭력 비판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p. 40)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던 지식인들이 대거 환경론자들로 변신했다."  그 와중에도 빛나는 그의 우국혼.  빨갱이에 맞서 시장을 수호하는 '기사'님.  자유주의자는 쓸데없이 남의 신념의 색깔에 관심 갖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교양없다는 소리 듣습니다.  남의 머리통 속의 생각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실제로 하는 실천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그것만 평가하세요.  (p. 85)

진짜 자유주의라면, '자유'라는 말로 경제적 자유 이상의 것을 의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교양이다.  또 시장을 만능 '해결'로 보는 수준을 넘어 동시에 그것을 '문제'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평등을 자유와 대립시켜놓고 '골라, 골라' 야바위를 하는 수준을 넘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평등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현대적 자유주의의 수준이다.  (p. 92)

흔히 '자유=민주'라 생각하나 실은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함축한다.  (p. 97)

그리하여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변증법.  말하자면 정의와 연대에 기초한 거시 사회에 다양한 탈근대적 삶의 형태들이 서로 모순적으로, 그러나 상보적으로 접속을 하는 사회.  우리가 앞으로 지향할 사회의 모습은 그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pp. 119-120)

미국에서 벌어진 '공동체주의 대 자유주의' 논쟁의 배경에는 레이거노믹스가 있다.  레이건의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빈부 격차를 심하시켜 미국의 사회적 통합력을 약화시켰다.  어느 사회든 두꺼운 중산층이 그 체제에 안정감을 주는 법이다.  중산층의 몰락은 사회를 양극화하여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p. 121)

우리 지식인 역시 이제까지 권력의 밖에서 권력 그 자체를 비판해왔고,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좌파 이념 자체에 신뢰감을 잃었으며, 그러잖아도 때는 포스트모던, 보편적 주체가 만들어낸 일체의 보편적 이념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p. 190)

우리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존재미학, 즉 자존심의 최소한을 지키고 제 존재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예술이다.  (p. 192)

공포.  그것은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게 만든다.  공포에 질린 사람에게 유일한 정의는 생존이고, 그 생존을 위해 그들은 무슨 일이든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p. 198)

한국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공포 정치, 대중의 본능적 공포를 자극하는 협박의 정치다.  그리고 이 공포 정치에 대중은 기꺼이 참여한다.  왜?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홀거 하이데)  (p. 215)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반공'이라는 네거티브한 이념조차도 한갖 허위와 위선에 불과하며, 실은 수구 기득권층의 밥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처세술이다.  (p. 217)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복잡한 인간관계의 망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p. 241)

우리 사회의 권력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꼽으면 지연.학연.혈연으로 형성되는 정체성을 들 수가 있다.  이 정체성은 어떻게 보면 자발적으로 맺어지는 것 같으나, 어떤 면에서 보면 강요된 것이기도 하다.  (p. 247)

패거리에는 개인의 '주체성'도, 집단의 '사회성'도 없다.  패거리의 권력 구조는 패거리의 정체성을 위해 개인의 선택을 무시한다.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개인 윤리는 아부와 맹종이다.
...
한국인의 정체성은 패거리의 정체성이다.  '에고'는 있어도 '주체'는 없다.  (pp. 249-250)

역사란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조직하는 것.  (p. 283)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했지만, 그때 그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단지 관념의 차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몰랐던 거 같다.  이데올로기는 단지 벌어진 사실을 해석하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사건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적극적 기제를 갖고 있다.  (p. 284)

'별자리 그리기'.  담론의 스펙트럼을 그리는 것은 별자리 그리기와 같다.  그 중 어느 별은 죽어서 사라지기도 하고, 별똥별이 되어 땅에 떨어지기도 하며, 허공을 헤매다가 다른 별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도 한다.  그때마다 별자리의 모습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담론의 분석은 정태적이 아니라 시간 축을 따라 변하는 스펙트럼의 형상을 그 역동성 속에 포착해야 한다.  그 스펙트럼은 존재의 영속성을 갖는 타블로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포착된 무상한 생성의 이미지, 즉 빛의 그림자 '마테르나 마기카(laterna magica)'다.  (p. 295)

폭력에는 폭력으로.  권력이 행사하는 신화적 폭력에는 웃음의 폭력으로.  니체는, 가장 커다란 비판은 상대의 이상을 비웃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p. 296)

작가는 사회와 번거로운 관계를 절연하고 조용히 자기의 문학세계에 갇혀 소설이나 시만 쓸 수가 있다.  그 문학적 성취만으로도 작가는 이미 사회에 기여할 수가 있다.  (p. 309)

'지역 차별주의'와 '광신적 반공주의'는 영남에 둥지를 튼 수구세력이 오랫동안 지역 패권의 구도를 유지해온 비결이었다.  (p. 315)

이기적인 개체들은 자신을 가해자 집단과 동일시하는 데에 성공할 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왕따'의 심리학이다.  (p. 323)

이념의 독재.  우리 사회는 극도로 우경화되어 있다.
...
다른 생각을 말살하는 데에 보수층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데올로기 장치가 바로 '빨갱이'와 '전라도', 말하자면 '레드 콤플렉스'와 '지역차별'의 논리였다.  (p. 326)

친일파 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논리라는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유물론의 문제, 즉 그의 추종자들이 구축해놓은 권력관계라는 물적 토대의 문제다.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에서 드러나는 과도한 친미 성향, 그리고 미당의 행적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나는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성향은 한국 보수주의 이념의 두 측면이다.  (p. 329)

거시구조는 사회 속의 단자들 하나 하나를 제 형상대로 찍어내고, 그 결과 미시구조는 도처에서 프랙털처럼 거시구조을 반복한다.  이것이 우리가 무심결에 보고 지나치는 일상의 장엄함이다.  (p. 329)

이 범상함의 시대에 위대해지려는 자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고 말 게다.  ...  이 평범함의 시대에 숭고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희극적 숭고', 즉 스스로 바보-광대가 되는 것뿐이리라.  시대의 아이러니......  (p. 3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