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파씨라는 동거인께서 출장 갔다 오면서 데리고 온 곡도. 고양이를 닮았지만 고양이는 절대 아니라고. 애완동물이지만 ‘가이드북’을 대동하고 있으며, 무려 대화가 가능해서 ‘저어, 뭘 좀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부끄러운 듯 말을 거는 녀석, 곡도. 변기에 앉아 아저씨처럼 고뇌를 짊어진 듯한 얼굴을 하고 용변을 보는 귀여운 녀석, 곡도. 심심할 때 마다 놀아달라고, 옛날 얘기해 달라고 보채는 곡도 녀석과 함께하는 그의 동거인 G의 따뜻한 이야기.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이 소설이
‘현관문을 열었던 파씨가 서 있었어.’ 첫 문장부터 그녀의 소설은 낯설었다. ‘파씨’라는 독특한 이름도 역시.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 ‘곡도와 살고 있다’는 어떨까. 평범해 보였던 소설 제목은 ‘곡도’라는 생소한 단어 덕분에 상당한 이질감을 주고 있다. 호기심은 이 소설을 꼭 읽게 만든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의문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곡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황정은, 그녀만의 독특한 표현의 방식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구어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구어체 소설은 많이 있어 왔지만 대부분 해요체나 합쇼체였다. 그런데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어’ 나 ‘~지’로 끝나는 반말? 구어체이다. 친근함이 소설 전체에 배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거 지금 뭔가 말해야 되는 거지?)’와 같이 괄호를 사용한다거나 곡도의 말을 ‘타이포체 음성’이라고 묘사한 점. (그래서 곡도의 말은 타이포체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가망이 없다고요, 그렇게 작아져서는.’와 같이 말의 순서를 바꾸는 점. 이렇게 열거하기도 바쁠 만큼 이 소설은 그녀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화자의 말들은 우리를 공감을 이끌어내다가 때론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빈틈없이 잠에 밀착된 고양이 한 마리’ 이 한 마디로 인해 우리는 고양이와 닮은 곡도를 쉽게 떠올린다. 너무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라서, 읽는 나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밑줄을 긋게 만든다. 괄호 속에 있는 말들 또한 재치가 넘친다. 마치 만화 속의 말풍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말들을 반복한다거나 아주 복잡한 설명을 동반하여서 독자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도착했나요? 도착했어요. 수고했어요. 수고했어요.’나 ‘음 음 음 음’을 반복한다거나 G가 A와 B와 C를 가지고 맥락의 이미지를 설명한다거나. 말하자면, 서술을 일정한 방식으로 유지하지 않고 강과 약을 제멋대로 주고 있어서 우리에게 긴장 아닌 긴장을 느끼게 만든다.
환상과 일상의 대화
사실 ‘곡도’는 환상 속의 생물이다. 물론 고양이를 닮았지만 고양이는 아니라는 설정은 다소 엉뚱함을 넘어서 환상적이기 까지 하다. 하지만 곡도를 비롯한 소재의 설정은 환상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모습들은 전혀 환상적이지 않다. 그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당장 지금 내 옆에서 곡도가 달걀 프라이를 먹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환상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환상성을 운운하는 자체가 이소설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의 작가가 말했듯이 환상은 단지 소설 작법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곡도, 나도 곡도와 살고 싶다
곡도는 에니메이션 캐릭터의 모습 같다. 차분하지만 약간 어리숙하고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여준다. ‘맵지 않은 카레색’을 띄고 있으며, ‘양파를 생으로 먹었다간 무서운 재체기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심심하면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하면서 온 집안을 달리기 시작한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제까지 어느 애완동물도 일방통행만 있어왔지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말도 참 예쁘게 한다. ‘저어, 뭘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상상만 해도 방긋,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아마 나를 비롯한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독자들은 심각하게 공감할 것이다.) 애완동물로 치면 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키울 맛?이 절로 날 것 같다.(하지만 진짜 존재하지 않으니까.)
곡도의 이러한 모습과 함께 이 소설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곰돌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만큼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소설이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환상적인 소설과는 분명 다른 반응이다. 환상은 자칫 잘못하면 무거울 수 있고, 자칫 지나치면 가벼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을 이미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정은. 그녀의 또 다른 소설이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