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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 스노든, NSA, 그리고 감시국가 ㅣ 스노든 시리즈 1
글렌 그린월드 지음, 박수민.박산호 옮김, 김승주 감수 / 모던타임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은 CIA와 NSA에서 일했던 미국의 컴퓨터 기술자. 그는 두 기관에서 국민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2013년 스노든은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내 통화감찰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스노든은 자신의 폭로가 대중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대중의 반대편에 있는 일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스노든에게서 NSA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가디언지에 보도한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2014년 5월 13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No Place to Hide>라는 책을 펴냈다. 전 세계 24개 국가에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스노든과 그린월드의 만남과 인터뷰가 전반부, 그리고 미국의 구체적인 감시 기술과 정부 및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이 후반부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책을 낸 출판사 모던타임즈는 원래 쿠바 미사일 위기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내겠다고 출범한 회사인데, 5번째나 10번째 책도 아니라 2번째 책을 이렇게 별 상관없는 주제의 책으로 낸 것을 보면 ‘현실의 벽’을 깨달은 모양이다.
같은 출판사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친절’하다거나, ‘소화흡수’가 그리 편한 책은 아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구체적인 감시 기술을 거론하는 내용은 무척이나 딱딱하고 전문적이어서 무슨 컴퓨터 교육 교재같은 느낌을 준다. PC를 근 20년 사용해 왔지만 분해 조립도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 막막한 부분. 이런 쪽에 별 기초 지식이 없는 ‘지나가던 독자 A'에게는 더욱더 그럴 것이고.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30여년 전의 히트영화 <블루썬더>와의 강렬한 기시감이 들었다. 영화의 주역 헬기인 블루썬더는 1984년 LA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를 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일반에 공표되지만, 그 실체는 오히려 감시와 테러로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쿠데타 집단의 병기였다. 블루썬더의 테스트 파일럿인 머피 경관은 그 사실을 언론에 폭로하고, 블루썬더를 자폭시켜 버린다.
김대중 및 노무현 정부 당시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의 원훈은 “정보는 국력이다.” 였다. 정보는 실로 그 주인에게 엄청난 권력을 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정보기관장은 때로는 상전인 국가원수보다도 더욱 큰 실질적 권력을 누리기도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감시하기도 한다. 나치 독일의 괴링 원수나 카나리스 제독, 미국의 에드가 후버 FBI 국장 같은 사람들이 그런 전형적인 사례 아니던가.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국가 원수 중 많은 사람이 정보기관 출신이라는 점도 절대 흘려 볼 일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고도로 발전한 정보통신 기술로 인해’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도 정보기관은 꾸준히 국민들을 감시해 왔다. 고영일 작가의 만화 <푸른 끝에 서다>를 보면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에도 얼마나 철두철미한 감시가 이루어졌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영화 <블루썬더>의 주인공은 통제 불능의 정보기관을 상징하는 블루썬더를 열차에 부딪쳐 자폭시켜 버렸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은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정보기관의 무차별한 폭주와 감시를 막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모든 자유를 다 잃어도 스스로의 사유의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는 위안이 그 답이라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만만히 볼 책은 아니다. 이는 읽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당한 부담을 주는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