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의 13일 - 쿠바 미사일 위기, 거짓말, 그리고 녹음테이프
셀던 M. 스턴 지음, 박수민 옮김 / 모던타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때는 1962년, 미국이 터키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자, 소련이 이에 대응하고자 미 본토로부터 불과 145km 거리에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함으로서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지게 된다.

미국은 이러한 소련의 행동에 쿠바 해상봉쇄로 맞서고, 소련은 핵미사일 기지 상공을 정찰하는 미군 정찰기에 대공화기 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이에 미국 U-2 정찰기 1대가 소련에 의해 격추당하기까지 한다.

결국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핵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기로 약속하면서 단 한 명만의 사망자(격추된 U-2 조종사)를 발생시킨 채 <쿠바 미사일 위기>는 13일만에 일단락되지만, 훗날의 사가들은 이를 ‘전 세계가 멸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책은 그 사건의 한 복판에 서서, 미국 측의 정책을 결정했던 비상대책기구 엑스콤 회의의 비밀 회의록을 간추린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떠오르는 개념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죄수의 딜레마>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면 모두에게 최선인 결과가 도출될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경쟁에는 지나친 과열로 인해 판을 깨버리지 않기 위한 양보와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의 미국과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생각 같아서는 자국 코앞에 건설되는 적국의 기지를 때려 부숴 버리고 싶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전 세계 단위의 ‘원자력 불꽃놀이’를 불러왔을 뿐일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하게도 케네디 대통령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데 비해, 미국 군부를 위시한 강경파들은 몰랐다. 알고는 있었어도 모른 척 했거나. 이러한 견해 차이는 단순히 정치 성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그 차이의 원인을,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두 번째 개념인 <입장 차이>에서 찾고 싶다. 미국 군부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추축국 본토에 불벼락을 퍼부어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끈 고급 장교 출신들이다. 반면 그들을 이끈 케네디 대통령은 그 고급 장교들이 지도에 그려놓은 1km의 땅을 먹기 위해 부하 사병들과 함께 속된말로 ‘피똥을 싸야 했던’ 하급 장교 출신이다. 고급 장교들이 안전한 벙커에서 전쟁을 지휘하는데 비해, 하급 장교들의 생활 여건은 사병들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타고 있던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에 의해 격침되면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같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그들의 처지는 이만큼 차이가 났다. 따라서 이들의 전쟁관 역시 크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군부 지도자들은 ‘핵’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소련을 쑥대밭을 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던 데 반해, 사병과 다를 바 없던 전쟁을 치루었던 케네디는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젊은 세대로서 핵의 실체에 대해 더욱 현실적인 시각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실적인 시각을 좀더 ‘학삐리’스러운 말로 풀자면, 세 번째 개념인 <안정성-불안정성 패러독스>이다. 설명하자면 핵은 분명 전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무기이지만, 핵의 소유자가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면 결코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지구의 평화’는 지켜졌다. 아니, 최소한 ‘강대국(핵무장을 하고 있거나 핵무장이 언제라도 가능한 국가) 간의 전쟁’은 종식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시각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상대편 지도자인 흐루시초프 역시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쿠바 미사일 위기>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아직도 냉전 질서가 엄존하고, 가장 높은 군비증강률을 기록하고 있는 동북아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50년 전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보다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책은 13일간 기록된 엑스콤 회의의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사태를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초보자’에게 친절한 책은 결코 아니다. 개행도 없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인공들의 대화는 한글로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가독성과 이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성을 달리했으면 한다면 과도한 주문일까? 그러나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춘 분에게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 줌으로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이 책을 읽어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분께는 영화 <디데이13>(로저 도널드슨 감독, 케빈 코스트너 출연)을 보실 것을 권한다.

여담이지만, 인류 멸망의 핵전쟁을 불러올 뻔한 사건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련 K-19 잠수함 원자로 고장 사건, 소련 K-129 잠수함 침몰 사건 등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다루는 책이 국내에도 출간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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