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
이지민 / 유페이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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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을 받고 번역을 시작한 지 만 22년이 된 번역가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문서를 번역했다.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기록하자면 소설이 여러 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이지민 번역가가 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번역과 번역가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전하는 어조가 담백해서 좋았다. 이 책은 번역일을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거나,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는 ‘사람 혹하게 만드는’ 투로 절대 묘사하지 않는다. 다양한 조언들도 현실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지 않은 중요한 부분도 있다. 그 점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 책의 저자는 ‘번역계의 엄친딸’이다.


고려대학교에서 학사를, 이화여대에서 통번역학 석사를 받은 재원이란 말이다.


나처럼 그 정도 학벌 근처에도 못 가본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데뷔와 업무 지속이 저자만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 들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요즘 나오는 책들 보면 학부 졸업자는 번역가로 이름도 올리기 어려운 느낌이다.


두 번째, 번역가의 삶은 여기 묘사한 것 이상으로 더욱 팍팍하다는 게 내 경험이다.


일일이 말로 표현하기도 구차한 각종 갑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은근슬쩍 욕과 반말까지 섞어가며 훨씬 나이 많은 번역가를 갈구는 편집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으로 번역가를 욕하는 독자들이 대표적이다. 돈 관련된 추문도 많이 겪었다.


선배 번역가 왈, 번역계는 작은 연예계라고 하던데, 나도 100% 공감한다. 번역가는 실질적인 권력은 별로 없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늘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점에서 연예인들의 신세와 정말 일치한다.


세 번째, 이건 정말 근본적인 문제인데, 한국 사회가 번역을 너무나도 홀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칭 세계 10대 선진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번역가의 대우는 너무나도 허술하고, 아직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각 분야 고전들이 속된 말로 천지 삐까리다. 만들어진 번역서의 수준도 한심하고 말이다. 누구도 그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하고자 하는 끼를 주체할 수 없는 자라면, 어서 번역계에 투신하라. 우리나라의 문화 발전을 위해 목숨을 걸어라.


나 역시 그리하고 있으니까.


PS: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소주와 삼겹살을 끼고 앉아 3박 4일은 떠들어야 할 것 같다. 이 정도로 마무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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