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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평점 :
현대 문명은 과학 문명이다. 이 말을 전쟁에 맞게 바꾸어 보면, 현대전에서는 우수한 과학 기술을 보유한 참전국이 그렇지 않은 참전국을 이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총력전으로 변한 현대전에서는 과학 기술의 우월함 외에도 국력 전반이 승패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국력이 우수한 나라일수록 과학 기술이 우월한 나라일 확률 또한 높다.
사람들은 흔히 1930~1940년대에 미국만이 핵 기술을 알고 있었다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1930년대에 모든 열강들은 인공 핵분열, 핵융합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 모든 에너지는 건설 목적 보다는 파괴 목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들기가 더욱 쉽다. 그리고 당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이던 제2차 세계대전의 시대였다. 핵의 가능성을 알고 있던 모든 열강들은 이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병기화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이는 미국 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 그리고 적 추축국인 독일과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한 이들은 자국의 핵개발에 주력할 뿐 아니라, 자국 핵개발 세부 정보를 엄중히 비밀로 하는 동시에 적성국의 핵개발은 철저히 방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가 명실공히 절대반지의 반열에 올랐음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핵의 위력을 알던 일부 당대인들이 그 사실을 약간이라도 예견했음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나치 독일은 1939년 4월부터 핵개발을 시작했다. 미국의 핵개발 계획인 맨하탄 계획보다 무려 3년이나 빨랐다. 미국은 독일의 핵개발 소식을 듣자마자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했다. 핵탄두와 투발수단 개발에 늦는다면 인류 최초의 핵무기는 일본 히로시마가 아닌 미국 본토에 떨어지고, 추축국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한복판에 서 있었던 미국의 알소스 부대를 중심으로, 미국의 독일 핵개발 저지 노력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특이한 소재로 책을 낸 저자와 출판사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미국식(?) 탐사보도 레포트 답게 꽤나 산만하다.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무려 수십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차라리 주요 사건이나 개념 위주로 챕터를 나누어서 서술을 해 나갔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성장기와 사생활까지 다루느라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고 번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이 책의 상당부분은 나 같은 문과 쓰레기에게는 외국어나 다름없는, 핵의 물리학적 해설에 치중되어 있다.
책의 만듦새를 보면, 가격에 맞지 않게 내지는 상당히 고급이다. 게다가 2도 인쇄다. 다만 표지 디자인은 좀 별로였다. 그리고 문장도 ()와 --가 남발되어 거칠다.
출판사는 현재 흥행 중인 영화 <오펜하이머>와 연계해서 이 책을 홍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책과 그 영화 간의 내용적 연관성은 그리 높지 않다. 물론 이 책에도 오펜하이머가 언급되기는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미국의 핵개발>이 아닌, <독일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역자가 군사 쪽에 지식이 별로 없는지, 전쟁물임에도 상당수 군사 용어들이 잘못 번역되어 있다. 워낙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꼽아보면 조셉 P. 케네디는 해군의 ‘전투기’를 조종한 적이 없다. 영국과 미국의 항공부대에는 ‘중대’ 편제도 없다. PT-109는 결코 소형 ‘전함’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대전차 미사일’, 그것도 민간인이 수제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영화와 책 <모뉴먼트 맨>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권해드릴만 하다. 둘 다 나치가 숨기는 뭔가를 빼앗기 위한 특수 작전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영화화되지는 않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도 모자람이 있는 분들에게 영화와 책 몇 가지를 권해드릴까 한다.
영화 <텔레마크의 영웅들> - 노르웨이 중수 공략전인 거너사이드 작전을 다루었다.
영화 <크로스보우 작전> - 영국 공군의 페네뮌데 폭격 작전을 다루었다. 단, 내용에는 상당한 픽션이 들어가 있다.
책 <히틀러의 비밀무기 V-2> - 내용은 제목 그대로.
책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 - 내용상 이 책 <원자 스파이>의 직계 후속이다. 전후 미국이 벌인 나치 과학자 쟁탈전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