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슈타포 - 히틀러 비밀국가경찰의 역사 KODEF 안보총서 43
루퍼트 버틀러 지음, 이영래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다 '친위 원수'라는 표현을 봤다. 나치 친위대의 최고 지도자이며 독일 경찰장관을 겸한 하인리히 히믈러의 친위대 계급, 즉 원어로는 Reichsfuhrer-SS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이 표현을 보고 나는 좀 기가 막혔다. 원수(元帥)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서 이런 표현을 썼을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이 표현은 분명 번역한 이영래 씨가 지어낸 표기가 아니라,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아마도 이 책의 번역을 감수했을 군사번역가 김 모씨가 마음대로 지어낸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더더욱 기가 막혔다.

 

원수란 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장관급 장교 중에서도 최고 계급을 가리킨다.

 

하지만 별 상관없는 책에서 스쳐지나가는 내용도 아니고, 친위대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을 번역하면서 Reichsfuhrer-SS를 친위 원수로 번역했다면, 그건 엄청난 오역이고, 자신이 무슨 내용을 번역했는지도 모른다는 걸 실토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해 Reichsfuhrer-SS를 친위 원수로 번역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독일의 친위대는 엄밀히 말해 '군대'로서 창설된 조직이 아닌데다, 창설 및 성장기에 독일 국방군과 활발한 교류도 없이 만들어진 나치당 내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독일 친위대는 나치당의 당수인 히틀러의 개인 경호를 위해 나치당 돌격대 내의 일부 인원을 빼내어 1923년에 창설된 슈타스 트루프를 그 모체로 한다. 그리고 친위대라는 명칭도 1925년에야 부여되었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군사력이 부여된 것은 아무리 일찍 잡아도 1933년, 요제프 디트리히가 무장친위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특수부대 베를린을 창설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을 모체로 성장한 친위대 전투부대는 1939년 8월에야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작전 지휘계통 하에 들어갔고, 그 총병력은 당시 고작 사단 규모에 불과했다.

 

이렇게 본격적인 군대가 아닌, 나치당 내의 하위조직으로서 태어나고 길러졌기 때문에 친위대는 여러 면에서 국방군, 특히 육군과 상이한 문화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위관급 장교의 계급명 하나만 보더라도 육군은 소위-중위-대위이지만 친위대의 해당 계급은 하급중대지휘관-상급중대지휘관-고급중대지휘관으로 호칭되었다.

 

물론 이후 무장친위대가 육군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 전투부대로서 뛰어들면서 친위대의 계급호칭도 육군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 바뀌게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선의 이야기이다. 일선의 친위대의 성격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총수인 하인리히 히믈러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위대의 최고지도자인 하인리히 히믈러는 히틀러의 정치 동지로서, 나치당 내에서 괴링과 함께 권력서열 2~3위를 다투는 거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무장친위대의 군사작전에 일절 간섭하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해, 히믈러의 역할과 권리, 책임한계는 '원수'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군인'이 아니라, 그 군인을 부릴 힘을 지닌 '장관급 민간인 정치가'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원수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거물인 것이다.

 

게다가 독일 국방군이 배출한 26명의 원수 중 친위대원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친위대원의 최대 진급한계선은 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상급대장, 즉 친위대 계급명으로는 최고집단지휘관까지 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Reichsfuhrer-SS는 친위대 장관, 또는 친위대 전국지도자로 번역되어야 하며, '친위 원수'라는 번역명은 말도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이런 오역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서 장문의 글을 적어 보았다. 이렇게 잘못된 번역어가 책에 실리면, 대중은 그걸 옳은 표기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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