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재미있게 봤던 만화 <지팡구>에서, 한 캐릭터가 대충 이런 대사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왜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고, 어떻게 싸우다가 어떻게 죽어가는지가 궁금했다.”
음미할수록 매력적인 진술이다. 대부분의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이만큼 명쾌하게 꿰뚫은 말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런저런 기록과 주의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받아든 이 책 <문명과 전쟁>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을 포함해서, 최근 필자가 접한 <전쟁론>류의 책들의 시각은 대체로 현실적이다. 전쟁이란 부족한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 중 가장 스케일이 큰 것이고, 따라서 인류가 존재하는 한 늘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류 스스로를 자멸시킬 수 있는 최종 병기인 핵 병기가 등장함으로서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강대국 간의 전쟁은 벌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전쟁은 그러한 상황 하에서도 나름대로 ‘진화’를 통해 ‘성장’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 또는 약소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이라는 형태로 전쟁은 지구촌 어디에선가 계속 벌어졌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발생한 9.11테러, 이슬람 국가 등의 사례는 국가의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정치 단체 역시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래의 전쟁이 어떤 모습이 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를 놀라게 할 예기치 못한 참신한 형태로 발생할 거라는 점이다. 그 역시 인류의 문명이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법 역시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선은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향한다. 우리는 미래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 준비는 과연 옳은 것일까? 옳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한 자성과 그에 따른 움직임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휴전이라는 이름의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대치 상태를 근 70년 동안이나 유지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의 안보 팔이에 질렸고 정치 군인들의 행태에 신물이 났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전쟁과 군사를 생각하기 싫어하게 되었고, 전쟁은 커녕 각종 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상당히 낮아졌다. 전쟁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당장 집에 수도와 전기, 가스가 들어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당신은 얼마나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정으로 전쟁이라는 비극이 두렵다면, 정치인과 학자, 군인을 탓하기 이전에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와는 살짝 별개로, 이 책은 아무나 만만하게 읽을 수 있지 못하다. 학자들이 쓴 책이 흔히 그러하듯이 책의 분량과 내용 난이도는 장난이 아니다. 특히 두께는 베개로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만약 이 책을 가지고 본격 스터디를 한다면, 최소 6개월은 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 것도 복사 및 분철을 해서.
그렇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데도, 이 책은 꽤나 잘 팔리기는 한 것 같다. 판권란을 보면 1쇄와 2쇄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불과 1주일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하드한 책을 열독할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출판 시장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아직 ‘장식용 책’의 수요는 죽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중에 또 시간을 내서 열독해 보고픈 책이다. 그 사이에도 또다른 매체를 통해 전쟁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부지런히 해나가야겠지.
아울러, 이 방대하고 어려운 저작을 쉽게 번역해 주신 번역자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