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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평점 :
갑작스런 실직, 아내와의 별거,
남편은 직장을 또 때려치웠고 새로운 사업을 의논 한마디 없이 시작했다면...
정말 짜증스럽고 막막한 현실임에도 6명의 주인공 누구 하나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자기 신세 한탄하며 질질 짜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너나 할 것 없이 씩씩하게 잘 살아내서 전화위복이란 말이 절로 생각날 정도다.
여섯 명의 주인공(여섯 명의 가족)을 만나는 동안
박장대소는 아니어도 미소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혼자서 킥킥거리기도 했다.
"아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아마존 재팬 독자 서평 중에서 -
6편 모두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이야기지만 그 인물이 바로 내가 돼서 빠져들게 된다.
아마존 재팬 독자의 서평처럼
주인공들이 정말 그 상황에서 무슨 느낌이었을지 알 것 같다.
총 6편의 단편 중 3편은 아저씨들, 나머지 3편은 아줌마들 이야기인데
오쿠다 히데오 자신은 아저씨인데 아줌마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서 써놓았다.
아줌마 마음을 너무 잘 알아줘서 작가의 성별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ㅎㅎ
내가 저 상황에 놓였으면 딱 저랬을 것 같다 싶은 대사와 생각들만 모아모아
줄줄이 쏟아내서 공감 백배였다.
아줌마 수다를 지겹다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고
가려운데까지 시원하게 긁어주는
마음이 아주 잘 맞는 초등학교 남자 동창생을 만난 듯한
딱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
마흔 두살의 전업주부인 노리코는
아이 둘이 학생이 된 후론 가족끼리의 외출이나 여행조차 없어진 요즘.
옥션 인터넷 경매에 푹 빠져든다.
더이상 집안에서 쓸모 없어진 물건들을 가져다 팔고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을 올리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내 물건을 받은 누군가가 내게 감사하단 평가를 내려준다는게 멋지고 황홀하단다.
집안에 뭐 더 팔 물건이 없나 혈안이 된 노리코.
노리코가 이러다 남편까지 팔려고 하는건 아닐런지 걱정되기도 했다.
중독이란 무섭다. 나 역시 블로그 중독이다.
남편은 평소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법이 없고
싸울때조차도 귀를 닫고 눈까지 감아버려서 ’벽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매번 실감하게 해준다.
그런데 블로그 친구들은 다르다.
내가 고구마 하나 삶았다고 해도 맛있겠다며 덧글을 달아준다.
내 시시한 일상을 하나하나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며 축하도 해준다.
남편보다 블로그가 낫다.
’노리코가 인터넷 경매에 매달리게 된 이유는
아마도 나같이 평범한 주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주목받을 수 있단
그런 뿌듯함 때문이겠지.
’육아에만 전념했는데 아이 둘은 이젠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
리코가 겪었을 허탈감이 내게도 곧 오겠지.
괜찮아. 나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블로그 친구들이 많다구. ^^’
작가는 노리코 외에도 5명의 3,40대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고 있다.
별거하게 된 아내가 집안 살림을 몽땅 가져갔기 때문에 시작한 쇼핑 덕분에
평소 꿈꿔오던 남자들의 로망인
(자신만의) 아지트를 꾸미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 마사하루,
14년 근무한 회사의 부도로 졸지에 직장을 잃고
아내는 출근하고 자신은 전업주부로 살게됐지만 그 생활에 만족하는 유스케.
의논 한마디 없이 걸핏하면 직장을 때려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대는 남편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착한 일러스트레이터 아내 하루오의 이야기 등등
별거, 실직, 무책임한 한탕주의 가장 등
누구 하나 편하지 않은 현실이지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처럼 속을 바글바글 끓이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그 상황을 최대한 즐길 줄 아는 사람들만 총집합돼있다.
누구 하나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잘난 사람도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인생관만큼은 누구보다 비범하다.
일탈을 꿈꾸지만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이도 없고 그러기엔 모두 착하다.
평소 일본소설을 좋아한다 좋아한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처음 읽어봤다.
읽어보고 난 후의 느낌은?
글쎄, 앞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보다
더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느낌? ^^
그의 작품 모두를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을때마다 어떤 느낌일까 벌써부터 설레인다.
가슴이 두근두근. 히로코처럼 그를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