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메이플 스토리 한자도둑 3 메이플 한자도둑 3
전광진 감수 / 서울문화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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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이 쏟아져나오는 학습만화 시리즈 중에서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우리 아들에게 꼭 사줘야하는 학습만화가 있습니다.
바로 메이플스토리 수학도둑과 한자도둑이예요.

꼭 아슬아슬, 아주 중요한 순간에 끝이 나서
다음 권을 안사볼래야 안사볼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아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해서
우리 아들이 메이플스토리 학습만화를 학교에 가져가 쉬는 시간에 펼쳐들면
반친구들이 아들 주변을 빙 둘러싸고 구경하는 통에
제가 "메이플스토리 신간 한 권이면 누구나 스타될 수 있다" 는
우스갯소리도 해본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이가 아무리 좋아한다해도 학습효과가 전혀 없다면
짠순이 엄마 지갑을 열기 쉽지 않겠지만
한자가 약한 우리 아들이 한자를 쉽고 재미나게 배울 수 있다면야
한달에 한번정도 지갑 여는 거 정도야 일도 아니겠죠?

3권에서는 7급 한자 25자를 새로 배우게 되는데 
1,2권에서 이미 배운 한자가 같이 나와서 자연스레 반복학습을 하게 해줍니다.

"메이플 주인공들이 펼치는 신나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자와 친해지고 
 3권에 수록된 초등필수한자 7급 100자 중 25자를 공부하면서 
한자지식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쌓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한자도둑」에서는 한자어(낱말)를 중심으로 엮어져 있어서, 
낱글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다른 책들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전광진님의 추천사 中 에서 - 

추천사에서도 보여지듯 낱글자만 보여주는데 그친다면 
이 낱글자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힘들겠지만
한자도둑에서는 낱말 중심의 한자어를 보여줘서 
한자가 얼마나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고 얼마나 자주 쓰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들이 쓰는 대사 속에 
"이 공간(空間) 에서는 그런 잔재주따윈 통하지 않아!"
이런 식으로 공간이라는 낱말 중심의 한자어를 보여주고
페이지 하단(또는 중간에) *를 달아 
*공간(空間 빌 공; 사이 간) : ①앞뒤, 좌우, 위아래로 끝없는 범위 ②빈 곳이나 빈 자리
(메이플 스토리 한자도둑 3권 P11 中에서)
이렇게 음과 훈, 거기에 공간이란 낱말의 뜻까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로 들어와 친구들을 인질로 잡고 위협을 했던 몬스터들을
물리친 도도와 친구들은 기숙사를 구해준 상으로
메이프리나 학교의 두번째 단계인 '서 캠퍼스"를 출입할 수 있는 패스를 받게 됩니다.
처음엔 너무 큰 상이라며  서 캠퍼스 출입패스 주기를 반대했던 교장선생님도 
도도 일행에게 상을 하나 주시네요.
물론 좋은 뜻으로 준건 아니고 이건 음모죠.
아무튼 도도일행에게 피로도 풀겸 푹 쉬고 오라고 
<메이프리나 휴양지> 여행상품권을 주시고
도도일행은 기쁜 마음으로 휴양지를 향해 떠납니다.

도도의 초보 한자자전에서 
부수와 총획, 활용단어들과 그림까지 보여주면서
앞서 배운 한자들을 한번 더 정리해줘서 더 좋았어요.
델리키의 시험격파에서는 총 7개의 문제를 풀며 앞서 배운 한자들을 제대로 익혔는지
실력점검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바우의 만점퀴즈와 메이의 숨은 한자찾기는 
재미나게 즐기면서 한자공부를 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고요. 
부록으로 주신 한자낱말카드 24장과 한자워크북은 활용하기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

아이들에게는 재미를, 엄마들에게는 만족을 주는 한자학습만화라
7,8급 정도의 한자급수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는
권해드리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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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잉글포츠 GO! GO! 3 : Do Your Best! 최선을 다해라! - 초등 필수 영어 학습 만화
Clare Lee 콘텐츠, 송시온 글, ZOO 그림 / 좋은책꿀단지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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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ㆍ숙어와 골프 용어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영단어도 물론 외우기 싫지만 영숙어도 참 외우기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리 외울게 많은지... 설령 외웠다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이고
어렵사리 다 외웠다해도 실생활에서는 써먹기 힘들고 말이죠.
외국인이 다가오기만 해도 가슴은 벌써부터 두방망이질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고픈 생각이 스멀스멀~ ^^;;

저 어렸을때도 
’이렇게 재미난 캐릭터가 그려진 만화로 
영단어와 영숙어를 쉽게 배울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아쉬운 맘이 드는 책을 만났습니다. 

영어와 스포츠를 결합한 단어, 즉 잉글포츠를 통해 
스포츠는 만능이지만 
영어성적만큼은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 되는 
영어 열등생 민속초등학교 학생들과 같이
스포츠와 함께 영단어ㆍ숙어를 배우게 됩니다.
3권에서는 골프란 스포츠 종목이 채택돼서
영단어ㆍ숙어와 함께 골프용어도 같이 배울 수가 있는데요
’학습만화인데 고작해야 몇단어나 배우겠어?’ 생각했던 
제 생각이 틀린걸 증명이라도 해주듯 정말 많은 영단어ㆍ숙어가 등장하네요.

아이들에겐 아직 어려운 골프란 스포츠용어를 자세히 설명해준  점도 참 좋았습니다.
앨버트로스, 이글, 버디, 파, 보기,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 페어웨이 등등
저한테도 생소한 골프용어를 표까지 동원해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저 또한 많이 배웠답니다.

캐릭터들도 한명한명 참 재밌었어요.
다른 아이들도 다 재밌었지만
머리에 덩을 무려 11개나 쌓아 장식한 듯한 이세련이란 아이는 
특히나 개성이 철철 넘치는데다 헤어스타일이 참 재미나더라구요. ^^
4편에서는 이세련이 더 많이 등장해주길 개인적으로 바라봅니다. ^^

배우리, 한나라, 왕조은, 이세상~ 
성은 빼고 이름만 따서 보면 ’우리 나라 조은 세상’ 이 되니 이름부터가 참 재밌죠? ^^
공부는 잘하지만 스포츠실력은 꽝인 소심은 말 그대로 소심쟁이고
민속초등학교의 잉글포츠부 선생님인 방국봉은 방구뽕에서 따온거겠죠? ^^

잉글포츠 골프는 미션 카드에 제시된 우리말 단어를 보고 
그에 맞는 숙어 쪽 푯말에 골프공을 쳐서 더 적은 타수로 넣는 쪽이 이기는 게임인데
(출판사 서평 중에서 발췌)
운동실력은 없지만 영어는 잘하는 소심이 영어실력을 발휘하고
영어실력은 없지만 운동은 잘하는 우리, 나라, 조은, 세상이 운동실력발휘를 해서
고구려초 잉글포츠부와 골프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만화 1화에서 10화까지 실린 영단어ㆍ숙어 양만해도 상당하지만
만화가 끝난후 방구뽕 선생님의 잉글포츠 고고! 에서는
앞서 만화에서 배운 내용을 큼직큼직한 그림과 함께 다시 한번 배우고 
문제를 풀어보면서 확실히 익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art 5 방구뽕 선생님의 잉글포츠 고고! ’에 나온 
surprise란 단어를 설명해주는 경우,
The tiger surprises me. (호랑이가 나를 놀라게 한다.),
I was surprisd at the tiger. ( 나는 호랑이에 놀랐다.)
이런 식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영단어와 영숙어를 활용한 문장과 그림을 비교하며 같이 보여줘서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 점을 특히 칭찬해주고 싶었습니다.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잉글포츠! 도 아주 마음에 드네요.

마지막에 부록처럼 실린 
’주제별로 보는 초등 필수 영단어’와 ’주제별로 보는 초등 필수 영단어’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고 수록된 단어 양도 상당해서 
마무리까지 신경을 많이 쓴 책이란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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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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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람들-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심리적 동기-에게 관심이 있었고, 
대부분의 범죄 소설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과 
등줄기를 오싹하게 훑는 전율에 열광하느라 사람들을 등한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소설에서 툭하면 써먹는 뻔한 줄거리와 표현들이 싫었고, 
진실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최악의 죄-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를 
저지르는 까닭은 무엇인지 설명하려는 이야기를." -얼음공주 P 139 中 에서- 

얼음공주의 작가 카밀라 레크베리가 책에서도 역시 작가로 나오는 주인공 에리카를 통해
자기가 쓰고픈 추리소설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작가의 생각이 이랬다면 이 소설은 분명 성공적이다.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보다는 
왜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죽일 때 심정이 어땠을지 등등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있으니까.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 알렉산드라 비크네리가 
자신이 주말마다 들르는 피엘바카의 집 욕조에서 차갑게 언채 죽어있다.
면도칼로 양쪽 손목을 그어 피를 흘린채.
알렉산드라가 남편을 차갑게 대하긴 했지만
남편은 알렉산드라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집안살림은 넉넉했으며
이렇다할 자살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상한점 한가지, 
남편과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해본적도 없고 관계한지도 오래됐는데 
알렉산드라는 죽어있을 당시, 임신 3개월의 몸이었다.
알렉산드라의 어렸을적 친구인 에리카(극중 작가)와
에리카의 동창이자 형사인 파트리크가 이 사건을 점차적으로 해결해간다.


섬뜩하지만 범인을 종잡을 수 없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그 재미 때문에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사건 자체보다는 인간의 감정에 치중한 이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은 
한마디로 맥빠질 수밖에 없다.

사건과 추리과정이 1이라면
등장인물들에 관한 묘사와 상세한 설명이 9정도를 차지한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추리과정에서 형사가 만나는 증인들에 관한 묘사까지 너무나 자세해서
사건의 핵심이 흐려지는 기분이다.
기억력이 좋지는 않아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닌데
등장인물이 하도 많아서 기억을 더듬어야 '아 그사람!'하고 알아차릴 정도였다.

책상정리하고 방정리까지 싹 다하느라 지쳐서
정작 공부는 몇분밖에 못하고 피곤해진 기분이랄까?
아니면 누군가의 넋두리만 실컷 듣다가 
정작 내가 듣고팠던 중요한 이야기는 고작 몇분밖에 못들은 기분이라고 표현해야할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힌트를 더 많이 주는데 치중했거나
사건 자체에 치중했다면 훨씬 흥미진진했을텐데
사건과 정말 아무 관련없는 
에리카의 친동생이 남편한테 학대받는 이야기가 대체 왜 나와야했는지,
증인으로 만난 페트렌 부인이 30년동안 패스트리 가게를 했고
그 집 장식이 특이했단 이야기 등을 왜 자세히 언급해야만 했는지 등등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꼭 있는대로 늘어진 테이프를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듣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꼭 단점만 있는 추리소설은 아니었다.
칭찬할 점도 단점만큼이나 많았다.
400페이지 넘게 기다리고 기다려 알게 된 범인은 정말 의외의 인물이었고
그 범인이 왜 알렉드라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주는 부분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또 충격적까지는 아니지만 반전 또한 훌륭했고
중간중간 아무렇지 않게 흘려진 힌트가 
나중에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점도 좋았다. 
최소한 용두사미처럼 앞부분은 더없이 흥미진진했는데 결말이 너무 시시해서 
책장을 덮는 순간 괜히 읽었다고 투덜대게 되는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오히려 끈기를 가지고 읽다보면 뒤로 가면 갈수록 더 재밌어지는 그런 책이었다.

'차세대 애거서 크리스티' 라는 극찬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폭력과 같은 굵직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성폭력을 당한 본인과 그 가족들이 평생에 걸쳐 
얼마나 힘들어하고 망가질 수 있는지 그 사람들의 면면을 깊이있게 다뤘다는 점에서는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픈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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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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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모를 까만색 구의 출현!
그 까만색 구는 빠르진 않지만 일정한 속도로 사람을 계속 쫓아와
사람들을 구 속으로 빨아들인다.
처음엔 하나인줄 알았던 구가 점점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아진다.
건물 안에 있으면 안전할 줄 알았더니 건물 속으로도 스윽 통과한다.
위로는 못올라올줄 알았는데 위로도 거침없이 몰려든다.
포탄과 같은 정부의 강력한 무기로 막아낼 수 있을줄 알았는데
정부의 어떤 대책도 속수무책.
어느 순간 뉴스에는 이런 화면이 뜬다. "행운을 빕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신종플루 생각이 많이 났다.
처음에는 "개인위생에만 철저히 신경 쓰면 된다.", 
신종플루 그까짓거 별거 아니란 식으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에 바빴던 정부가 
어느 순간부터 위기단계를 심각단계로 상향시켜 바쁘게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나몰라라 손놓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고 할까? 
처음엔 절망의 구를 우습게 봤다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싶자
"행운을 빕니다" 란 얼토당토 않은 화면을 내보내는 정부의 행태가
신종플루를 대처하는 지금의 우리 정부와 비슷하단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처음 본 것이기에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추측이 난무하다 보니 헛소문 때문에 또 더 불안해지고...
끝도 없는 악순환의 연속도 절망의 구와 신종플루가 참 비슷했다.

항상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다
어느순간 자포자기하듯 인생이란 파도에 떠밀려 
이제 될대로 되란 식으로 막 살아버리고....
질긴 목숨 끊을 수는 없으니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급급한 우리네 모습과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 착실히 살다
어느 순간 씻지도 않고 술에 취하고 서로를 이유없이 미워하는 책 속 인물들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않아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절망의 구 사건이 다 해결된 뒤에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원망하다 벌 줘야 모든 일이 마무리될 것처럼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외모가 다르단 이유로 
그 사람을 원망하고 질타해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사람들과 책속 인물들이 다르지 않아 더더욱 무서웠다.
책 속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그저 재밌고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끝났음 더 좋았을텐데
'절망의 구' 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정체모를 무서운 존재의 출현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도 아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 
맘 속 깊이 와닿았고 그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라 더 무서웠다.

사람들이 똘똘 뭉쳤을 때 절망의 구 공격이 멈췄던 것처럼
우리도 헛소문에 연연하지 않고 심지 있게 똘똘 뭉쳐야만
이 험난한 세상 두려운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단 메시지를 전달해주려는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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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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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는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안개 속을 헤쳐나가는 듯한, 
혹은 난해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술술 잘 읽히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 속의 이야기를 알레고리적 환상으로 읽기에는 사실적이라는 느낌이 앞서고, 
그렇다고 사실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 개연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마치 땅 위를 걸어가긴 하되, 
발바닥이 땅으로부터 한 뼘 정도 떨어진 허공을 디디고 있는 듯, 
환상도 현실도 아닌 모호한 공간을 배회하는 독특한 독서체험을 제공한다."  
- "사과는 잘해요" 박혜경(문학평론가) 의 해설 中 에서 - 

처음 표지를 보고 ’사과는 잘해요’ 란 우스꽝스러운 제목과 
몇가닥 안되는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옆으로 빗어넘긴 남자가 
계속 사과의 말을 쏟아내는 그림을 보고 그저 익살스런 작품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던 장면들이 
뒤로 넘어갈수록 강도가 점점 세지더니 점점 심오해져서 어느덧 웃음기는 사라져버렸다.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점점 무게감이 더해져서
처음에는 술술 넘어갔던 책장이 뒤로 갈수록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져서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싶어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보느라 200페이지 남짓 되는 책을 읽는데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웃기다고 하기에는 심각하고 심각하다고 하기에는 웃기다고 해야할까?

시봉과 나는 시설(복지원)에서 두명의 복지사들에게 
숱하게 매를 맞고 알 수 없는 알약을 받아 먹어가며 
짓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고백하며 살아간다.
둘은 시설에 들어간지 몇달 뒤 반장을 맡아 
다른 원생들의 죄를 복지사들에게 대신 사과해주고
원생들이 맞아야할 매까지 대신 맞아주면서도 
우쭐함을 느끼고 편안함까지 느끼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둘은 시설에서 탈출하려는 구레나룻 아저씨를 그저 도와줄 요량으로
작업장에서 양말상자 안쪽에 "우리는 갇혀 있습니다.... " 메모를 써넣게 되는데
그 메모 탓에 둘은 시설의 내부고발자가 되고 
복지사와 원장,총무부장,식당 아줌마까지 경찰에 줄줄이 연행되는 바람에
둘은 갈 곳이 없어진다. 
마땅히 갈곳이 없는 나는 시봉을 따라 시봉의 여동생 시연의 집에 얹혀살게 되고 
거기서 그들이 제일 잘하는 일, 즉 남의 죄를 대신 사과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일명 ’시설의 기둥들’ 로 표현되는 시봉과 나는
분명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들인데
모자라다고 하기에는 정말 똑똑한 것도 같고
순박하다고 보기에는 너무 영악스럽기도 했다.
절대 복잡하게 생각하는 법도 없고 생각이 나면 그대로 실천에 옮기니
그들의 거침없고 간단명료한 사고방식에 쿡쿡 웃음이 나다가도
그 과감함에 기함을 할 듯이 놀랍기도 했고
나도 저렇게 순리대로 거침없이 살고 싶단 생각에 한편으로는 살짝 부러운 면도 있었다.

남의 죄를 대신 사과해주고 몰매를 맞아가면서도 우쭐함을 느끼는 거 보면
분명 모자란데 
전혀 고백할 죄 따위는 없어보였던 정육점 주인한테 찾아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무언가 느끼고 변화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화나게 만들고 사과할 죄를 짓게 만드는거 보면
정말 똑똑해보이기도 했다.
또 시봉이 대신 사과했으니 자기는 이제 사과를 안해도 된다고 하는 ’나’의 행동을 보면
순박한게 아니라 영악하단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시봉과 나는 우선 사과를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죄책감없이 죄를 짓는다.
원생들에게 고백할 죄 목록을 하나하나 말해주고 죄를 짓도록 사주하기도 한다.
모자란 사람들인만큼 죄를 짓게 해봤자
잘 씻지 않는 거, 시설을 도망쳐서 신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라는 정도의 죄이긴 했지만
사과했으니 이제는 무슨 죄를 지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단순한 사고방식에
무턱대고 바보같다 웃을 수만도 없었다.
"미안하다.다시는 안그러겠다." 
사과하는 그 순간만큼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듯 고개를 조아려 사과하다가도
뒤돌아서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 저지르고 
어느순간 수세에 몰리면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따지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많고 그 중에는 바로 나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묵직함만 있다면 읽는 독자가 힘들어할 걸 알아채기라도 한듯
작가는 중간중간 웃음거리도 던져준다.
구치소로 원장선생님을 면회간 시봉과 내가 
비리가 가득 적힌 원장의 일기장을 
자기들이 갖고 있고 나중에 돌려줄테니 안심하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시봉과 나의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원장의 당황한 표정이 교차해서
혼자서 웃기도 했다. 
걸핏하면 더러워서 이놈의 동네를 뜬다고 투덜거리는 슈퍼아줌마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그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장면에서도
안타깝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웃음이 났다. 

200페이지 남짓이니 빨리 읽는 사람이라면 두시간도 채 안돼 읽을 분량이지만
이 책은 두시간에 해치울 만만한 책은 결코 아니었다.
한문장 한문장 되뇌여보고 또 되뇌여봐야 할 문장들, 즉 생각거리로 가득하다.

달디단 사탕인줄로만 알고 빨리 먹어치울 욕심에 우두둑 깨물었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단맛,신맛,짠맛,쓴맛,매운맛까지 아주 오묘하고 다양한 맛이 나서
살살 녹여먹으며 그 참맛을 음미해보려 애쓰게 된, 그런 책이었다.

앞서 박혜경(문학평론가)님 의 해설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앞부분만 읽고 일부러 뒷부분은 읽지 않고 남겨뒀다.
건방진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맛은 짜다. 시다." 누가 단정지어줘서 
내가 느낀 맛이 짠맛인지 신맛인지 아님 짠맛도 신맛도 아닌 전혀 다른 맛인지
느껴볼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아서다.

천명이 읽는다면 천명의 의견이 다 다를 수 있는 오묘한 맛의 책이었다.
’두번째 읽을 때는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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