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벼락이 - 정과 덤이 오고 가는 우리 동네 시장통 이야기
홍종의 지음, 한수자 그림 / 샘터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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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 자신의 처지도 안좋지만 어려울때 겪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없는 형편에 그나마 자신이 가진걸 쪼개고 쪼개서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는 이웃분들을 볼 때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전 그분들보다는 조금은 더 가졌음에도 
그런 마음을 먹어본 적도, 행동으로 옮겨본 적도 없음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요.

나이가 아직 어려 물질적인 도움은 못주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웃 상인들의 장사를 돕고 청소를 하며
날로 어려워지는 재래시장을 일으켜보려는 정말 기특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바로 오병학, 별명은 '벼락이' 입니다. 

'벼락이' 같은 아이가 실제로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벼락이는 참 밝은 아이였습니다.
TV에서 비춰진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보면 
물론 더러는 밝은 아이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눅이 잔뜩 들어 밝은 모습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묻는 말에도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모습에 안타깝곤 했는데
벼락이는 엄마가 시장통에서 어묵 장사를 해도, 엄마가 말을 못하는 벙어리인데도
절대 기가 죽거나 창피해하는 법이 없으니 정말 기특하더라구요.
전학 온지 얼마 안돼 자기를 회장 후보로 추천해준 친구 한 명 없어도
스스로 손을 번쩍 들고 회장 선거에 나가서 
물당번, 칠판 지우기, 청소도 도맡아 혼자 다 하겠다는 시원시원한 공약을 내세워
떡하니 부회장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정도면 기특한 정도를 넘어 앞으로 커서 대성할 큰 재목감이네요. 
넉살은 또 어찌나 좋은지 장 보러 온 아줌마들 손을 붙들고 
주변 상인들 옷도 팔아주고 과일도 팔아주고 심지어는 청소까지 도맡아해서
근처에 대형 마트가 생긴 뒤로 장사가 안되는 탓에 
하루하루 한숨만 늘어가던 두리 시장 상인들에게 활력소 역할까지 아주 톡톡히 해냅니다.
걸핏하면 장사는 뒷전이고 막걸리에 취해 매사 투덜거리기만 하던 삐쭉 할머니까지 
말쑥한 차림으로 변하게 하고 
자신도 두리 시장에서 옷가게(예쁘니 옷방)를 하면서 
시장 물건은 거들떠도 안보고 물건은 몽땅 마트에서 사오고
시장 상인들 하는 일에는 참여도 안하던 깍쟁이, 은지 엄마까지 
두리 시장  결의대회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었으니 
벼락이야말로 두리 시장의 일등공신, 보배 중의 보배네요. 

두리 시장이 벼락이란 기특한 아이의 등장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듯이
날로 어렵고 각박해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벼락이 같은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는 더 살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병학이(벼락이)가 
벙어리 엄마, 어려운 살림살이 등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특유의 넉살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청소로 
주변 사람을 살뜰히 챙기고 주변을 밝게 해준 것처럼
우리들도 고민해도 소용없는 일일랑 다 잊어버리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듯 우리에게도 두리 시장처럼 
좋은 일, 기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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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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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좋아하시는지? 난 무지 좋아한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은 무려 20번을 보고도 지금 또 볼 상황이 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란 말만 들어도 꼭 한번은 봐줘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좋아한다.'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이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입력됐나보다.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건 '이웃집 토토로' 였다.토토로가 조그만 우산을 쓰고 위로 점프하며 쿵하고 구르니까 우산에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맞고 씨익 웃는 장면도 좋았고 메이가 통통한 토토로 배 위에 엎드려 낮잠을 즐기는 장면도 참 좋았다. 메이와 사츠키가 고양이 버스를 타고 하늘을 신나게 달리는 장면은 특히나 신나고 인상적이었다. 고양이 배가 스윽 열리면서 메이와 사츠키가 고양이 뱃 속에 들어간다는 설정은 살짝 징그럽기도 했지만~ ^^;;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과 이 책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렇게 길게 이야기할까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이유는 바로 유정천 가족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스틱한 애니메이션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너구리가 인간으로 변신하고 가짜 에이잔 전철로도 변신하고 바람신 천둥신 부채를 부치면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질 않나 술을 연료로 하늘을 나는 배를 타고  매년 오봉 때마다 불이 붙는 산을 구경하는 등 정말 기막히도록 재미난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져있기 때문이다.자신의 여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걸 퍼주고도 자신을 뻥 차버리고 떠난 여제자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조금은 야한 텐구만 없다면, 아니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행동 따위의 수위조절만 살짝 한다면 아이들과 어른들이 같이 즐기는 방학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대박나겠다 싶을 정도로 재밌다.재미만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자기들 스스로 자기들 몸속에 바보피가 흐르고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하는 짓마다 대책없고 바보스럽지만 그들의 끈끈한 가족애(너구리 가족)는 그들을 그저 전통이랍시고 잡아먹는 잔인한 인간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재미난데다 교훈까지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너구리 폼포코' 에서처럼 이 책의 주인공도 너구리여서 한때는 명문가였지만 지금은 몰락한 '시모가모 가'의 너구리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너구리 세계의 우두머리(니세에몬)였던 아버지, 소이치로는 대단히 위대한 너구리였지만 어느날 어이없게도 '금요구락부'라는 인간들 모임의 송년회에서 '너구리 냄비' 신세가 돼 돌아가셨고 화가 나면 "나가 뒈져라" 거친 욕설도 퍼붓는 어머니지만 다른 너구리들이 자식들을 바보라고 손가락질해도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믿어줄만큼 자애롭다. 하지만 '검은 옷의 왕자님' 이란 미청년으로 변신해 당구를 즐기는가하면 다카라즈카 가극 티켓을 자식들에게 사달라고 할만큼 좋아하는 등 철은 좀 없다.특히나 엄마는 천둥을 너무 무서워해서 천둥만 치면 변신이 풀려 인간에서 너구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천둥만 치면 바보형제들이 인간으로 변신해 당구 치러 나간 엄마를 찾아다니고 또 같이 있어주느라 정신이 없다.장남 야이치로는 평소에는 진짜 멀쩡한데 위기의 순간마다 허둥거리기 일쑤고 지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니세에몬'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에바스가와 소운(작은 아버지)와 신경전 중이다. 차남 야지로는 한때 술을 즐겼고 가짜 에이잔 전철로 변신해 데이트족들을 벌벌 떨게도 했지만 몇년전 개구리가 돼서 우물에 숨어버린 뒤로 다시 너구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삼남 야시부로는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데 변신을 자유자재로 할 줄 알지만 함부로 모습을 바꾸면 안된다는 너구리 풍조를 어기고 툭하면 변신을 해서 혼나기 일쑤고 인생의 모토가 오로지 재미여서 아무 생각없이 사는 너구리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막내 야시로는 소년으로밖에 변신을 못하는데다 그나마도 놀라기만 하면 변신이 풀려 꼬리를 드러내놓기 일쑤고 야사부로 가족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에바스가와 소운의 소유인 가짜 덴키브란(너구리들이 즐겨 먹는 술) 공장에 수습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이 책의 주조연급이라 할 수 있는 벤텐과 아카다마 선생의 이야기도 잠깐 하자면 아카다마 선생은 '뇨이가다케 야쿠시보' 로 불리는데 한때는 대단한 힘을 가진 텐구였지만 작년까지 뇨이가다케를 관리하다 구라마 텐구들과의 전투에서 참담하게 패한데다 벤텐과 야사부로가 변신한 '가짜 마왕 삼나무 사건' 이후로 몸이 상해 텐구로서의 능력도 거의 잃은지 오래고 지금은 다다미 넉 장 반 넓이밖에 안되는 좁은 연립주택에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않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다.한때 제자였던 야시부로가 사다주는 아카다마 포트와인과 면봉, 화장지, 도시락을 먹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여제자였던 벤텐(금요구락부 7명중의 한명)이 자신을 뻥 차고 나간 뒤로 벤텐이 돌아오기만을 이제나저제나 목놓아 기다리는 불쌍한 노인네가 다 됐다.텐구로서의 신통력도 거의 다 잃은지 오래지만 그나마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바람신 천둥신 부채' 와 '야쿠시보의 안방(텐구들이 이용하는 탈것 가운데 하나로 작은 다실 모양이다)' 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제자 '벤텐'에게 다 줘버렸다. 벤텐은 한때는 인간이었는데 아카다마 선생에게 납치돼와서 텐구 수업을 받고 지금은 금요구락부의 일원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훌륭한 아버지와 철은 없어보이지만 역시 훌륭한 어머니, 자기들이 바보피가 흐르는지 스스로도 잘 아는 바보 4형제, 그리고 아름답지만 차가운 여자인 반텐구(인간이 텐구로 변했기에)인 벤텐과 그녀 없이는 살아가는게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철딱서니 없어보이는 텐구인 아카다마 선생이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극적재미를 더해준다면 이 책에서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에바스가와 소운의 두 아들, 금각과 은각이었다. 통구일엽, 권토중래 등 뜻도 모르면서 네 글자로 된 명찰을 늘 목에 걸고 다니는 금각과 은각은 호랑이로 변신한 시모가모 가의 장남, 야이치로에게 엉덩이를 물려 수로에 던져진 뒤로 그들의 초특급 울트라 캡숑으로 소중한 엉덩이를 쇠팬티로 보호해보려고 했지만 쇠팬티가 억지로 벗겨져 야사부로에게 엉덩이를 또 깨물리고 가모가와 강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굴욕을 당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오호~ 보통이 아닌데' 싶을만큼 사악하고 똑똑한 짓들을 하는가싶었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 바보는 바보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최고로 바보스러웠다. 둘이 나오는 장면에선 미리 웃음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로 개성이 철철 넘치는 바보캐릭터였다.

"... 전철로 둔갑한 너구리가 밤의 거리를 질주하는 클라이맥스는 최고다" - 책의 잡지-
띠지에도 적혀있듯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우물안 개구리인 둘째 형, 야지로가 전철로 둔갑해 거리를 정신없이 질주하는 모습은 흡사 이웃집 토토로에서 사츠키와 메이가 아픈 엄마를 만나러 고양이 버스에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 연상돼서 나도 같이 교토의 밤거리를 정신없이 신나게 달리는 기분이 들만큼 짜릿했다. 

너구리 냄비 요리를 맛있게 먹을만큼  너구리를 좋아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벤텐은 사악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야사부로를 도와주며 때로는 인간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여줬다.인간이였던 스즈키 사토미가 텐구가 돼서 더 아름다워진건 텐구가 돼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역시 인간은 인간다울 때가 가장 아름다워보이는 법이니까. 재미만 추구하는 바보 너구리들, 사랑만 쫓는 어리석고 늙은 텐구인 아카다마 선생 역시 정상은 아닌 듯 했지만 우리 인생에서 사랑과 재미만큼 중요한게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음날은 또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하나?' 이렇게 먹고 살 걱정을 해야한다면 사랑과 재미는 우리들 고민에서 저 멀리, 뒤로 뒤로 밀려나겠지만 교토의 너구리들이 더이상 끼니 걱정 안해도 될만큼 풍요로워진 세상에서는 야사부로가 추구하는 재미와 아카다마 선생이 추구하는 사랑이 가장 중요한 듯 하다. 한마디로 등 따숩고 배부르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지만 그거야 못먹고 못입던 시절 이야기고 지금에야 사랑과 재미가 인생의 목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건 바로 가족애였다. 각자 볼일 보느라 바빴던 아들들이 천둥을 무서워하는 어머니와 같이 있어주기 위해 하던 일 팽개치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모습도 우물 안 개구리였던 둘째 형, 야지로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전철로 둔갑해 거리를 정신없이 질주하는 모습은 가슴이 찡하다 못해 감동 백배였다. 
"내 자식 일이다. 내가 이해해주지 않으면 그 애가 너무 가엽지." -P250  中 야사부로 어머니의 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해도 가족이기 때문에, 피를 나눴기에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너구리 가족의 이야기가 어쩜 이렇게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는지. 그저 재미나게 읽었을 뿐인데 남는게 너무 많은 책이었다. 한마리만 걸려도 대박이다 생각하고 낚싯줄을 감아 올렸는데 연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고 횡재한 기분이다. 친한 동생이 재밌다는 이야기에 기대를 잔뜩 하고 봤는데도 기대보다 더 재밌었다. 오쿠다 히데오, 요시모토 바나나에 이어 내가 좋아하는 일본작가가 또 한명 생겼단 점도 아주 큰 수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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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1
러쉰 케이리예 지음, 정영문 옮김 / 리잼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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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는 외국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눈에 익은 그림책입니다. 2009년 <볼로냐도서축제>에서 상을 받았고, 
한국 <제1회 CJ그림책축제>에 초청되어 전시되기도 했고,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에 ‘교활한 재단사와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 - 리젬 출판사 서평 中 에서 - 

화려한 수상경력이 말해주듯 이 책은 우선 그림이 눈길을 확 사로잡는 책입니다.
칠흑같이 검은 바탕에 검정색과 노란색과 갈색 정도만 쓰고
그 색깔들의 농도만 조절해 그린 듯한 그림인데
표지에 그려진 재단사의 왼팔을 보면 알 수 있듯
소매와 팔조차 잘 맞지 않을 정도로 막 그린 그림 같으면서도
아주 묘하게 끌리는 그림입니다.

책을 다 읽은후 처음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뒷 표지 마지막 부분에 
’이 책에서 생각의 꼬리를 잡는 법’ 이란 제목 하에 3가지 질문이 실려있는데
솔직히 어른인 저조차 단 한가지 질문에도 속시원히 대답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껏 어린이철학책을 비롯해 꽤 난해하다는 현대소설을 읽고도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던 터라
아이책을 읽고 질문에 대답을 못한단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더라구요.

전날 새벽 5시까지 책을 읽느라 3시간밖에 못잔 탓이려니
답을 못한 나름의 변명거리를 찾으면서 다시한번 정독을 해봤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아이책이라 만만히 보고 ’몇페이지 안되니 금방 읽겠네.’
너무 가벼이 여겼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깊은 의미가 담겨있더라구요.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나귀를 타고 온 레자드 씨가 아주 조용한 동네 주점에서 
이 동네에는 옷을 만들면서 손님이 가지고 온 옷감을 
아무도 모르게 훔쳐가는 재단사가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손님 앞에서 옷감을 자르지만 손님들의 눈을 딴 데로 돌려서 
옷감을 쓱싹 잘라간다는 소리에  레자드 씨는 자신은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동네사람들과 내기를 합니다.
그 재단사는 다른 재단사들과 다르다며 
레자드 씨도 별 수 없을거란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레자드 씨는
재단사가 자기 옷감을 훔쳐가면 당신들이 내 당나귀를 가져가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당신들 당나귀 중 한마리를 가져가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고선
무서운 재단사에게 찾아갑니다.
레자드 씨는 마을사람의 당나귀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아님 자기 당나귀를 잃을까요?

재단사가 자기들 옷감을 훔쳐간걸 뻔히 안다면서도 
재단사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동네사람들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것(재단사가 옷감을 훔쳐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라는 
레자드 씨 물음에
"그렇소!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 것이오." 라 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 파란색 대화는 P 16 에서 발췌 - 

그 동네 재단사가 이상하다면 다른 동네 재단사에게 맡겨도 되고
재단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옷감을 도둑맞은 동네사람들이 합심해서 재단사를 혼내줄 수도 있을텐데
어쩔 수 없었다는식으로 너무도 쉽게 체념하는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거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도 그 동네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요.
잘못인줄 뻔히 다 알지만 다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또 하고 후회하고 
그 다음에 또 똑같은 실수를 하니까요. 
분명 누가 잘못하고 있는걸 알지만 
나 하나가 따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나 싶은 마음에
따져묻는 것조차 귀찮아할 때도 많았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옷감을 자르는데도 재단사의 현란한 입담에 혹해
번번이 옷감을 도둑맞는지조차 몰랐던 
자신들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잘못을 인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상황을 고치려 애써보지도 않는 동네사람들이
참 답답하긴 했지만 저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저 역시 동네사람들을 탓할 처지는 못되는 듯 합니다.

자신만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거라 자신했던 레자드 씨 역시
동네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으니 
재단사가 지나치게 똑똑한 걸까요? 
아님 동네사람들과 레자드 씨가 지나치게 멍청한 걸까요? 

이 책에서 사실 제대로 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재단사는 남의 옷감을 계속 훔치고
동네 사람들은 재단사가 자기들 옷감을 번번이 훔치는데도
누구 하나 따져 물을 생각조차 안하고
레자드 씨는 자신도 동네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면서 괜한 자신감에 차서
당나귀를 잃는 우(愚)를 범했으니까요.

우리들이 사는 세상도 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와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피해를 보면서도 대항해 볼 엄두도 못내고
누군가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다는 괜한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지금 자신이 가진 것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엔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재단사의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는 속담처럼
레자드 씨나 동네 사람들처럼 재단사의 현란한 말솜씨에 혹해 정신 똑바로 안차리다보면
우리도 그들같이 언제 당할지 모르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한시라도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겠네요.

처음엔 아이책을 이해 못했단 창피함에 뭐 이런 책이 다 있냐고 투덜거렸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림도 내용도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제가 난해하다 여겼던 3가지 물음에 대한 답이 끝까지 적혀있지 않아 
꼭 정답 없는 시험지를 푼 기분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은 점도 없지않았지만
우리 인생에 답이 없듯이 
이 책 역시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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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장난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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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상대방의 말과 행동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만큼 비참해질 수 있을까?
이 두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아주 확실히 보여주기라도 하듯
잔인한 아이들과 그 아이들로 인해 아주 철저히 망가지고 비참해지는 
열네살 소녀, 스베트라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놀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는 정말 죽을만큼 괴로운데
가해자는 ’그저 재미로 그랬을 뿐이다’  쉽게 생각해버리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물론 용서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피해자는 한 명인데 가해자는 나를 제외한 반전체다. 
피해자는 가난한데 가해자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식들이다.
이런 조건 앞에서 피해자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그런 괴롭힘과 놀림을 당해도 쌀만큼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그나마 덜 억울하겠지만
그저 가해자들과 가정형편이 다르고 다른 나라에서 왔단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사이버 스토킹에 시달려야한다면 
나라도 스베트라나처럼 무기력하게 당하다 자살을 결심하게 될 것만 같다.

굳이 스베트라나의 잘못을 따져보자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실업학교에서 명문학교로 전학왔다는거, 
우크라이나에서 살다 독일로 이민 온 것,
스베트라나의 엄마가 
스베트라나가 다니는 학교 기숙사의 청소부로 일하신다는 것밖에 없다.
물론 이런걸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잘못이지만.

아주 곰곰이 생각해보면
스베트라나에게 같은 반 친구들이 적개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조금은 있다.
성적이 월등히 좋은 스베트라나가 전학 온 이후로 
선생님들은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기 시작했고 평가도 더 엄하게 하신다.
스베트라나가 전학오기 전까지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던 아이들의 진급에 
급작스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니 스베트라나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한가지, 자기들은 부모님의 무관심과 불화로 기숙사에 내팽개쳐진 신세인데
스베트라나는 엄마,아빠와 같이 사는 통학생이다.
스베트라나는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할만큼 가난하고 그들은 부자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사랑 받는 스베트라나가 부러울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런 두가지 이유가 있다해도
스베트라나의 반친구들의 못된 장난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급식시간에 자리가 없다면서 못앉게 하고 
스베트라나의 옷차림과 행동 등 모든 것에 시비를 걸고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 비공개 카페에 스베트라나와 다른 아이의 합성사진을 올려
험담을 늘어놓고 수시로 문자를 보내 괴롭힌다.

자기들은 부모님이 사준 명품밖에 자랑할게 없는데
스베트라나는 자신의 힘으로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항상 최고의 점수를 내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미울 수도 있겠지만 
자기들이 저지른 장난으로 스베트라나가 망가져가는걸 보면서
조금이라도 미안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해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분명 잘못한 사람은 반친구들이지만
자기가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자신한테서 정말 양배추 수프 냄새가 나진 않는지
’옷차림이 멋져지면 혹시 아이들이 따스하게 대해주지 않을까?’
이런 순진한 생각으로 해서는 안될 일까지 저지르며 스베트라나는 점점 망가져만 간다.

얼마전 읽은 『빅 마우스 앤드 어글리 걸』에서도
한때 인기짱이었던 맷이 단 한번의 말장난으로 
아이들의 집단따돌림으로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빅 마우스 앤드 어글리 걸』에서 맷에게는
언제나 그의 편이 돼주고 힘이 돼주는 여자농구부 주장 어슐러가 있었다.
스베트라나에게도 마르시아와 라비라는 좋은 친구가 있긴 했지만
마르시아는  스베트라나를 괴롭혀서는 안되는줄 알면서도 
반친구들의 못된 장난에 침묵과 무관심으로 동조했고
라비는 한때는 누구보다 든든한 친구였지만 
인터넷 비공개카페서 본 합성사진 한장으로 
스베트라나를 오해하고 너무도 쉽게 등을 돌렸다. 
(후에 라비가 스베트라나를 도와주려 하긴 했지만)
스베트라나에게도 어슐러처럼 
정의를 위해 끝까지 같이 싸워주는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스베트라나의 학교생활이 조금은 견디기 쉬웠을텐데 싶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폭력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모든게 자기탓 인양 체념하고 점점 무기력해져서 삶의 끈까지 놓아버리려는
사람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어딘가 있을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실업학교에서 독일 명문학교 ’에를렌호프 김나지움’ 으로 장학생으로 전학오게 됐을때 
스베트라나와 그녀의 부모님이 느꼈던 자부심과 희망이 
옷차림과 부모님의 직업 등 정말 어쩔 수 없는 조건 때문에 
수치심으로 바뀌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나도 혹시 옷차림과 직업으로 
누군가를 쉽게 평가하고 얕잡아본적은 없었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내가 무심코 올린 글, 내가 무심코 한 말과 행동들이 
어느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군가의 삶의 의지를 꺾어놓지는 않았는지 
진지하게 뒤돌아볼 때이다.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겠다.
누구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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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읽은건 이번이 2번째다.얼마전 3,40대 아줌마,아저씨들의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해낸 '오 해피데이' 를 읽었는데 오쿠다 히데오는 분명 아저씨인데 아줌마 마음을 어쩜 저렇게 잘 알까 싶어작가의 성별이 의심스러울 정도였었다.짤막하고 간결한 문체, 분명 그냥 생각나는대로 툭툭 내뱉은 말인 것 같은데 그 사람 마음이 딱 저랬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공감을 불러일으켰었다. 그의 작품은 오 해피데이 1편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에게 반해버려서 그의 작품을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읽어보지 못한 그의 작품이 아직도 너무 많아서 행복할 지경이다.기대하면 실망도 크다지만 2번째로 만나본 스무살 도쿄 역시 멋졌다.

다무라 히사오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그에게 6일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1979년 6월 2일, 1978년 4월 4일, 1980년 12월 9일, 1981년 9월 30일,1985년 1월 15일, 1989년 11월 10일, 날짜로 따지면 고작 6일이지만 나이로 따지면 19살에서 29살까지,히사오의 청년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도쿄의 재수학원에 등록하고 히사오의 고향인 나고야에서 도쿄로 올라온 첫날,친구를 찾아 무작정 도쿄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하루(1978년 4월 4일)부터 시작해 히사오의 대학 1년 연극부 시절,  같은 과 여자친구 고야마 에리한테 한 말실수로 하루종일 그녀를 찾아헤매는 하루(1979년 6월 2일)를 거쳐 카피라이터인 히사오가 잘 아는 카메라맨, 디자이너와 공동사무실을 마련한지 2년째, 최고의 단골 클라이언트 고다 사장에게 하루종일 불려다니느라 바쁜 하루(1989년 11월 10일)까지 보여준다.간단히 정리하자면 재수, 대학 신입, 입사 첫해,입사 2년째, 엄마친구 딸과의 맞선, 공동사무실을 연지 2년째의 하루를 다루고 있다. 재수생일땐 시골 촌놈(나고야 촌뜨기)이 친구 찾아 도쿄를 헤매고 다니느라 정신 없고 대학 신입생땐 자기를 흠모하는 여자마음을 몰라준 미안한 마음에 그 여자를 찾아헤매느라 정신없다.입사 첫해엔 말만 카피라이터이지 가장 말단 사원이라 잡일하느라 정신없고 입사 2년째엔 경력과 실력이 좀 된다고 후배들 무시하느라 정신없다.

하루를 일년같이 산다면 바로 히사오의 인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실 부지런하다기보다는 요령이 없어 손발이 고생하는 형국이었지만 노력만큼은 진짜 가상했고 그 고생담은 눈물겹도록 짠하다.어찌나 정신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쁘게 움직이는지 히사오 가는 곳을 눈으로만 쫓아도 내 숨이 다 찰 정도였다.나고야 토박이인 히사오가 도쿄에 첫 상경한 날,단지 심심하단 이유로 친구 찾아 무작정 도쿄 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만 해도 재수생이 공부는 안하고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그저 자유로워졌다고 즐거워하는걸 보고 정말 철이 없어보여서 저 청년이 앞으로 이 험한 인생을 어찌 살아갈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 회사의 도산으로 대학 중퇴를 하는 바람에 친구들보다 사회진출이 몇년은 빨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카피라이터로서 착실히 실력을 쌓아가다 동업자들과 공동사무실까지 차리게 된걸 보니 정말 기특해서 내 아들이라면 엉덩이라도 토닥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80년대 일본사회의 10년을 포괄하는 중요한 사회 문화적인 사건들이 개인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둥 마는 둥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불의의 총격으로 사망한 존 레넌과 그의 마지막 애럼 <더블 판타지>, 고라쿠엔 구장에 5만 5천명이 운집한 3인조 여가수 그룹 캔디스의 돌연한 해산 콘서트,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나고야가 서울에 밀렸던 날, 스포츠에 열광하는 여성팬이 등장한 것도 이 시대였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밖에도 무수히 언급된 문화인과 크고 작은 사건들을 연도를 따라 정리하면 당대의 사회와 문화의 큰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파악되지 않을까. .....중략.....이 책 <스무 살, 도쿄>는 1959년생 작가의 이력와 맞물려서 반쯤은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P 389 양윤옥 역자 후기 中에서-

히사오의 이야기 속에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국내외 사건들을 언급해서 히사오의 상황을 적절히 비유해낸 점도 작가의 뛰어난 역량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특히 나고야 출신인 히사오가 당연히 나고야가 올림픽 개최지가 될 줄 알았다가 서울로 정해지자 낙담하는 모습과 자칭타칭 최고의 카피라이터라 생각했던 히사오가 웨스트의 사이조씨에게 너무 자의식에 빠져있으니 정신 차리라고 된통 깨지는 상황이 너무 적절하게 맞물려서 어떻게 이런 비유가 가능할까 신기할 정도였다. '나고야가 최고니까 당연히 올림픽 개최지가 돼야한다.' '나고야 출신인 나도 카피라이터로서는 최고다' 자의식에 빠져 두가지 사실 모두 당연하다 여겼던 히사오의 믿음이 같은날 동시에 무너지면서 그동안 깔봤던 후배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는 설정이 기가 막히도록 멋졌다. 

한상운 장편소설 제목처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란 표현이 오쿠다 히데오의 집필스타일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준 문장인 듯 하다.있는대로 멋부려 쓰지 않았는데도 문장 곳곳에서 밑줄 긋고 싶을만큼 멋진 인생관과 웃음이 쏟아져나온다.연애도 초보, 사회경험도 초보였던 히사오가 뭐든지 실수 투성이에 바쁘기만 했지 실속은 없는 하루하루를,요령은 없지만 그저 열심히 살아내면서 청년시절을 마감하고 중년으로 접어들기 직전까지의 인생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 히사오의 대학 1년, 연극부 시절인 스무 살, 도쿄로 정해진건 그 시절이 히사오 인생에서 가장 걱정 없이 즐거웠던 시절이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20살, 동갑내기 과여자친구의 토라진 맘을 달래려 하루종일 뛰어다닌게 아무리 억울하고 힘들었다 한들 19살, 재수시절처럼 공부하는 것만큼 힘들지도 않았을테고 21살, 회사에 첫 입사해 잡일하는 것만큼 힘들지도 않았을테고 29살, 되도않는소리를 해대는 클라이언트 비위를 맞춰주느라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니 20살, 그 시절만큼 걱정없이 즐거운 시절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도 돌이켜보니 대학 2학년때가 제일 즐거웠었던 것 같다.미팅소개팅에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다니느라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이 모자랐던 꽃다운 스무살,그 시절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하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건 앞으로 다시는 못 올 시절이기에 더 값지고 그리운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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