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1
러쉰 케이리예 지음, 정영문 옮김 / 리잼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는 외국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눈에 익은 그림책입니다. 2009년 <볼로냐도서축제>에서 상을 받았고, 
한국 <제1회 CJ그림책축제>에 초청되어 전시되기도 했고,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에 ‘교활한 재단사와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 - 리젬 출판사 서평 中 에서 - 

화려한 수상경력이 말해주듯 이 책은 우선 그림이 눈길을 확 사로잡는 책입니다.
칠흑같이 검은 바탕에 검정색과 노란색과 갈색 정도만 쓰고
그 색깔들의 농도만 조절해 그린 듯한 그림인데
표지에 그려진 재단사의 왼팔을 보면 알 수 있듯
소매와 팔조차 잘 맞지 않을 정도로 막 그린 그림 같으면서도
아주 묘하게 끌리는 그림입니다.

책을 다 읽은후 처음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뒷 표지 마지막 부분에 
’이 책에서 생각의 꼬리를 잡는 법’ 이란 제목 하에 3가지 질문이 실려있는데
솔직히 어른인 저조차 단 한가지 질문에도 속시원히 대답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껏 어린이철학책을 비롯해 꽤 난해하다는 현대소설을 읽고도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던 터라
아이책을 읽고 질문에 대답을 못한단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더라구요.

전날 새벽 5시까지 책을 읽느라 3시간밖에 못잔 탓이려니
답을 못한 나름의 변명거리를 찾으면서 다시한번 정독을 해봤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아이책이라 만만히 보고 ’몇페이지 안되니 금방 읽겠네.’
너무 가벼이 여겼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깊은 의미가 담겨있더라구요.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나귀를 타고 온 레자드 씨가 아주 조용한 동네 주점에서 
이 동네에는 옷을 만들면서 손님이 가지고 온 옷감을 
아무도 모르게 훔쳐가는 재단사가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손님 앞에서 옷감을 자르지만 손님들의 눈을 딴 데로 돌려서 
옷감을 쓱싹 잘라간다는 소리에  레자드 씨는 자신은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동네사람들과 내기를 합니다.
그 재단사는 다른 재단사들과 다르다며 
레자드 씨도 별 수 없을거란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레자드 씨는
재단사가 자기 옷감을 훔쳐가면 당신들이 내 당나귀를 가져가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당신들 당나귀 중 한마리를 가져가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고선
무서운 재단사에게 찾아갑니다.
레자드 씨는 마을사람의 당나귀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아님 자기 당나귀를 잃을까요?

재단사가 자기들 옷감을 훔쳐간걸 뻔히 안다면서도 
재단사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동네사람들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것(재단사가 옷감을 훔쳐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라는 
레자드 씨 물음에
"그렇소!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 것이오." 라 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 파란색 대화는 P 16 에서 발췌 - 

그 동네 재단사가 이상하다면 다른 동네 재단사에게 맡겨도 되고
재단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옷감을 도둑맞은 동네사람들이 합심해서 재단사를 혼내줄 수도 있을텐데
어쩔 수 없었다는식으로 너무도 쉽게 체념하는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거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도 그 동네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요.
잘못인줄 뻔히 다 알지만 다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또 하고 후회하고 
그 다음에 또 똑같은 실수를 하니까요. 
분명 누가 잘못하고 있는걸 알지만 
나 하나가 따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나 싶은 마음에
따져묻는 것조차 귀찮아할 때도 많았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옷감을 자르는데도 재단사의 현란한 입담에 혹해
번번이 옷감을 도둑맞는지조차 몰랐던 
자신들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잘못을 인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상황을 고치려 애써보지도 않는 동네사람들이
참 답답하긴 했지만 저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저 역시 동네사람들을 탓할 처지는 못되는 듯 합니다.

자신만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거라 자신했던 레자드 씨 역시
동네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으니 
재단사가 지나치게 똑똑한 걸까요? 
아님 동네사람들과 레자드 씨가 지나치게 멍청한 걸까요? 

이 책에서 사실 제대로 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재단사는 남의 옷감을 계속 훔치고
동네 사람들은 재단사가 자기들 옷감을 번번이 훔치는데도
누구 하나 따져 물을 생각조차 안하고
레자드 씨는 자신도 동네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면서 괜한 자신감에 차서
당나귀를 잃는 우(愚)를 범했으니까요.

우리들이 사는 세상도 무서운 재단사가 사는 동네와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피해를 보면서도 대항해 볼 엄두도 못내고
누군가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다는 괜한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지금 자신이 가진 것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엔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재단사의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는 속담처럼
레자드 씨나 동네 사람들처럼 재단사의 현란한 말솜씨에 혹해 정신 똑바로 안차리다보면
우리도 그들같이 언제 당할지 모르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한시라도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겠네요.

처음엔 아이책을 이해 못했단 창피함에 뭐 이런 책이 다 있냐고 투덜거렸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그림도 내용도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제가 난해하다 여겼던 3가지 물음에 대한 답이 끝까지 적혀있지 않아 
꼭 정답 없는 시험지를 푼 기분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은 점도 없지않았지만
우리 인생에 답이 없듯이 
이 책 역시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