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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김호기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사실 난 에세이 같은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같이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한 사람한테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주 먼나라의 이야기인 듯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그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감동을 받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아가 치밀어오르기 때문이다.
'난 왜 저렇게 살지 못했을까?' 싶어 혼자서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지금 잘난 척 하는거야 뭐야?' 싶어 투덜대며 샘을 내기도 하고...
그런데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를 읽고는 에세이란 장르 자체가 좋아지려고 한다.
질투하면 혼날 것만 같다.
누가 봐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참 잘 살아내서 질투를 할래야 할 수가 없다.
무작정 김호기씨한테 달려가 무작정 "언니~" 하고 콧소리 내며 불러보고
어리광도 실컷 부려보고 싶어진다.
이 언니~ 참 대책없이 멋지다!
참 열심히 똑소리나게 잘 살아내서 손바닥이 새빨개지도록 열렬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언니한테 달려가 어리광 부리면
그 푸근함으로 날 감싸안아주고 엉덩이를 토닥여줄 것도 같고
비 오는 날엔 그 푸짐한 언니표 파전도 척척 부쳐줄 것만 같다.
3남 2녀중 막내.
한 집에서 1년이상 살아본 적이 없을만큼 이사 다니기 바빴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레슨비를 내고 교습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거의 독학하다시피 해 대학을 갔고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정단원이 된다.
하지만 8년간의 행복한 시향 생활도 왼손가락 이상으로 그만둬야했고
무작정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악기제작학교인 "크레모나 학교"에서
바이올린 제작 마에스트라 자격증을 따고 금의환향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꿈에 다가서지 못하는 절절한 안타까움과
그 속에서도 끝없이 피어내는 희망, 주변사람들과의 정 넘치는 교감,
돌아가신 어머니와 죽은 강아지들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 등이 가득 담겨있다.
학창시절 독학으로 힘겹게 이뤄낸 꿈이 8년만에 무너져내렸다면?
평생의 보물인 자기 바이올린까지 팔아 유학 생활비로 충당해야했다면?
나라면 어땠을까?
그 자리에서 한없이 무너져내렸을뿐
그녀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는 도저히 내지 못했을거다.
이탈리어도 전혀 모르는 상태, 당장 다음날 생활비를 걱정해야할만큼 힘겨운 유학생활.
일가친척 하나 없는 타국에서 이뤄낸 그녀의 값진 인생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진다.
멋부리지 않았지만 은근히 멋이 묻어나는 문장들, 그녀의 멋진 인생관이 곳곳에 묻어있어
책을 더럽히고 싶진 않은 마음에, 머릿속에 그 문장들을 담으며 읽어내느라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는데도 이 책을 읽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
페이지 중간중간 실린 빛바랜 그녀의 유학생활 사진과 멋진 글귀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끝내주는 미인은 아니지만 첫인상이 참 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웃음이 이쁜 그녀의 사진,
바이올린 사진에 더한 멋진 인생관이 가득 담긴 그녀의 글귀들이
한번쯤 더 들여다보고 싶을만큼 눈길을 잡아끈다.
그녀가 매력적인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멋진 성과와 피나는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없는 형편이지만 그걸 쪼개고 쪼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눠줄줄 아는 넉넉한 인심과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고 만족할 줄 아는 그녀의 멋진 인생관도
그녀를 멋져 보이게 하는데 아주 톡톡히 한몫을 한다.
바이올린의 주재료인 나무 하나를 사고, 전공서적을 사는데도
집었다 놨다 해야할만큼 넉넉치 않은 속에서도
친구들을 불러다 배불리 먹일 줄 아는 그녀의 푸근함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샘이 날 정도로 완벽한 인간관계 속엔 그녀가 말했듯
남을 향한 따스한 배려가 있었음을 나 역시 가슴 속 깊이 기억해야겠다.
김호기씨만 따로 불러다 맛난 걸 해줬던 집주인 할머니,
자기 학과 공부에 방해되는 줄 모르고 김호기씨의 공부를 도와줬던 친구 마리안씨,
유학생활 떠나는 그녀에게 하얀 봉투를 건네주면 어학공부에 도움되게
TV를 사보라던 친구 경미씨까지,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편애라고 했을만큼
친구들뿐 아니라 교수님과 집주인 할머니, 주변상인들에게까지 질투나는 사랑을 받았던
그녀를 은근히 질투했던게 그녀의 이 말을 듣고보니 많이 미안해진다.
"주위에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내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묻는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적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냐고."
- P 263 中 에서 -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었던 후덕한 인심과 배려가 그녀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베풀었을때의 행복감과 몇배의 이자가 붙어 되돌아왔을때의 푸근함으로 다가왔으리란걸
제대로 한번 베풀어보지도 않고 질투만 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어줬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 대책없이 멋지고, 인간성 정말 끝내준,
참 잘 살아낸 한 여성의 성공 풀 스토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녀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또 그녀처럼 베풀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참 근사한 책! 다시 한번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