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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키친 사랑을 굽다
리자 팔머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로맨틱 무비 한편을 본 것처럼 가슴이 설레이는 책이다.
멋진 일에 근사한 남자까지 찾게된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사랑과 일, 부모님들까지 모든 것에 불만투성이었던 그녀가
만족스런 일과 근사한 사랑을 찾아내고 가족과 관계회복까지 하는 내용이니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만한 더없이 달콤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엘리자베스가 구워내는 달콤한 케이크처럼.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정말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조건의 여자다.
아버지는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유명작가,
어머니는 포스터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유일한 상속녀,
오빠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유명작가,
남자친구 윌은 세계 각국을 누비는 기자,
엘리자베스 자신은 5성급 유명 레스토랑의 수석 파티시에이다.
이 정도로 완벽하다 못해 질투가 날만큼의 조건을 갖춘 여자가
시도때도 없이 투덜거린다.
처음엔 사실 듣기가 조금 거북할 정도였다.
뭐하나 부족할 것 없는 여자가 "이쯤이야 기본이고 난 더 많은 걸 원해."
이렇게 투덜대는 넋두리를 들어주는 기분이라
읽으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전교 1등만 하는 아이가 전과목 통틀어 1개 틀려놓고
세상이 무너진듯 울며불며 난리치는걸 지켜볼 때 딱 이런 느낌이리라.
"고작 레스토랑 메뉴판에나 이름을 올릴 뿐이다.(P 15 中 에서)" 라고
투덜대는 엘리자베스의 입을 살짝 꼬집어주고 싶을만큼 그녀가 얄미웠다. ^^;;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녀가 왜 현실에 만족못했는지 이해가 가서
그녀를 괜스레 미워했던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오빠 라스칼을 늘 못마땅해한다.
아버지가 이루어낸 일들이 워낙에 엄청나다보니
아버지의 아들딸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이 받았을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아버지와의 끊임없는 비교에 힘들고 지쳤을텐데 그런 사정은 전혀 봐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이정도 했으니 내 아들딸인데 너희도 이정도는 해야지 하는 식으로
당신이 이룬 만큼은 자식들도 꼭 이루어야한다고 아들딸을 끊임없이 다그친다.
엄마는 상류층가문 출신답게 체면치레만 중시한다.
여느 엄마들처럼 자식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기보다는
자식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자선파티에 무엇을 내놓을건지를 궁금해하고
집안 인테리어 바꾸는데만 신경을 쓰는 듯하다.
라스칼이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해 힘들어하는데도
그걸 아주 뒤늦게서야 알아차릴 정도로 무신경하기까지 하다.
남자친구 윌은 엘리자베스에겐 가족보다 편한 존재지만 늘 곁에 없다.
어쩌다 한번씩 만나서 식사하고 사랑을 나눌뿐
그녀가 그를 필요로 할때는 항상 어딘가 먼 곳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일도 불만이다.
유명 레스토랑의 수석 파티시에.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도 많고
이 정도 위치까지 오기 쉽지 않단 것도 알지만
평일에는 새벽 가까운 시각까지 일을 해야하고 인간관계라고 해봤자
자기 일을 보조해주는 줄리와 와인을 마시는 정도.
그나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에서일 뿐이지
그녀가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중 이틀을 쉬는데 이틀동안엔
그녀가 그동안 못봤던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레스토랑을 개업하겠다는 야무진 꿈이 있긴 하지만
애초엔 5개년 계획이었던 것이 어느새 11개년 계획으로 늘어났다.
엄마, 아빠는 차갑고 애인은 필요할때 옆에 없고 일은 피곤하고 꿈은 멀어져만 가고~
모든 것이 녹록치 않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 인생의 전부였던 윌을 대신해줄 사랑이 찾아온다.
엄마가 개최한 자선파티에서 만난 다니엘 설리반.
자신이 요리를 가르쳐주는 홈베이킹 개인교습권을 낙찰받은 다니엘 설리반과
수업을 거듭하면서 다니엘이 윌을 대신할만큼 근사한 사람이란 확신이 들었고
그에게 점점 빠져든다.
UCLA 농구팀 부코치인만큼 훤칠한 키에 남성다움도 매력적이었겠지만
자신을 페이지 가문의 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여자로 대해주고
무엇보다 체면치레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행동하고 말하는데도
그녀를 편하게 받아주는 그에게 강하게 끌린다.
그동안은 낙찰받은 수강생들의 수업이 1회로 끝났지만
다니엘과 계속 만나고 싶은 생각에 그녀는 수업을 몇회 더 늘리고
거기에 한번도 해본적 없는 야외수업을 핑계로 데이트까지 즐긴다.
수업일수를 늘리고 야외수업을 가장한 데이트까지,
순발력도 대단하고 정말 꼬집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매력이 철철 넘친다.
자선 파티, 휘황찬란한 대저택, 고가의 차들,
가난한 형편의 다니엘이 엘리자베스를 보며 느꼈듯이
나 역시 그녀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질투도 났다.
하지만 비록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어도
일도 사랑도 자기에게 맞춤한 듯 꼭 맞아 떨어지는 걸 찾아내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어 나 역시 그녀와 같이 기쁘고 같이 설레이는 시간이었다.
새벽 2시, 힘들어하는 엘리자베스가 밤늦게 전화했는데도 화내기는 커녕,
"이리로 와요.’" 따듯이 말해주고
속옷 차림에 이불 한장 두르고서 문을 열어주며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하고 말해주는 남자.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로지 잘난 척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최고의 화려한 디저트보다는
소박하면서도 먹음직한 디저트를 만드는 데 더 주력하게 됐다."
(P172 中 에서) 는 그녀의 말처럼
최고보다는
자신도 만족하고 남들도 두루두루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랑과 일을 찾아낸 그녀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