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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 - 좋아하는 마음이 살아갈 힘이 될 거야
이승은 지음, 위성환 사진 / 버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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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를 추다보면 모르는 사람과도 춤을 추게 된다. 서로 마주 보거나, 얼굴을 맞대거나, 가슴을 맞대거나... 상대와 무언가는 맞닿으면서 움직이는 게 탱고인 까닭에, 모르는 사람과의 춤은 언제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어렸을 때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에 갈 때의 마음, 처음 여권을 만들어 외국을 나갈 때의 긴장감. 낯선 것과 대면할 때 흥분감 뒤에는 뭔가 잘못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도 있다.
어떤 사람과 춤을 췄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라면 어쩌지? 이 마음을 살짝 물리고, 한 번 춰 보는 거지 뭐! 저 상대가 초보이건 이방인이건 어디 숨어 있던 보석같은 존재건, 맞닥뜨려보려는 마음. 그런 마음을 "환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환대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이 책에서 봤다. 그리고, 환대할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하다. 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말의 순서를 바꾸는 게 옳다. 환대하기에 건강하다.

춤에 대한 책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궤적이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 아니다. 모든 책이 저자만의 시선을 따라가는 역할을 하는 거니, 이 책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한 책이다.

책의 끝무렵에 에레라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에레라는 예술가들을 이렇게 말한다. "진짜 예술가는 종일 고립되어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야. 온갖 제약 속에서도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이지." 생활을 하면서도 예술을 할 수 있음을, 그래야 함을 아주 간결하게, 또렷하게 말해준다. 이런 말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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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병원 인문학 - 30년 내과 전문의가 말하는 병, 치료 그리고 삶
이여민 지음 / 북드라망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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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샘이 두 번째 책을 내셨다. 

제목은 <동네 병원 인문학> 내과를 하시면서 만났던 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푸신 책이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면 정말 순식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처방전을 받고 나와야 하기에 물어보고 싶은 것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가 좀 그렇다.) 그런데 지인 중에 의사가 있으면 아프지 않을 때도 몸에 대해, 혹은 조금 불편한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듣는 이야기가 사실 생활에 유익할 때가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적은 책이다. 


감이당, 남산강학원에서 만났을 때 첫 책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벌써 두 번째 책이다. 금강경에 대한 책보다 이 책이 더 가깝게 와닿았는데, 이는 여민샘의 생활과 완전히 밀착된 글이기 때문이리라. 


갑상선에 대한 꼭지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열 받은 몸의 평화를 회복하려면? 열을 내리려면 이전과는 다르게 '적당히' 살아야 한다. 여기서 '적당히'는 나아갈 방향은 있지만 지금 당장 꼭 그래야 한다는 집착을 부리지 않고, 내 몸의 속도가 주위 사람들과 조화로운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한다. (145쪽)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언제나 지금 당장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해야하는 것으로 여겼다. 내 몸이 감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사후에 고민할 문제라 여겼다. 탈이 나면 그 때가 돌봐야 하는 때가 온 거라고 여긴 거다. 그런데, 여민샘은 그러지 말라고, 내 몸의 속도가 균형을 이루라고 조언한다. 또 병에 대한 시각도 단지 '병원에 가서 치료되면 끝'인 무엇이 아니라고 말한다. 


병은 사회적 페르소나에 맞추어 너무 열심히 살아 고장 난 몸을 점검하라는 '알림 사인'이다. (중략) '갑상선'에 문제가 생긴 것은 몸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에게 '적당히 살아도 돼'라고 말함을 알았으면 한다. (146쪽)


참 빡빡하게 산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데도 뭔가 모자라다고 느끼는. 주위에서 대충 좀 살라고 하는 말도 듣기는 한다. 벌여놓은 것은 많고, 주어담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몸에 붙어버리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텐데, 아직 붙기 전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 아직도 몰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걸 따라가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좀 속도를 줄여보자고 중얼거려 본다. 


#이여민 #동네병원인문학 #북드라망 #남산강학원 #감이당 

열 받은 몸의 평화를 회복하려면? 열을 내리려면 이전과는 다르게 ‘적당히‘ 살아야 한다. 여기서 ‘적당히‘는 나아갈 방향은 있지만 지금 당장 꼭 그래야 한다는 집착을 부리지 않고, 내 몸의 속도가 주위 사람들과 조화로운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한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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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코리아
정주식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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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담집과 또 다른 느낌이다. 여럿이서 말을 섞는 과정에서 보이는 각자의 특성. 스머프를 보는 느낌이랄까? 아즈라엘과 가가멜이 있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질문을 두고, 여러 스머프들이 논의하는 모습. 파파스머프, 똘똘이, 투덜이... 누가 어떤 스머프일지는 각자 상상의 몫이다.
2. 은유샘이 토론에 참가하면서 사람살이에 좀 가까와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소한의 시민 북토크에 갔을 때, 중년 여성의 지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패치가 한 조각 덧붙여지면서 세상의 여러가지 색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많이 좋았다.
3. 인구문제 꼭지에서 남성 넷이서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 이상했다. 신PD님은 자리에 없었을까? 이런 잠깐의 기울어짐도 일종의 스냅샷으로 봐야할까?
4. 진보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정주식님이 마지막에 정리한 글이 곰곰히 생각해 볼 항목이다.
"공정과 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평등은 좋은 일자리를 나누는 데 관심이 많지만 공정은 누가 정규직이 되느냐에 관심이 많다. 평등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 데 관심이 많지만 공정은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이런 말을 듣다 보면 '그럼 공정보다는 평등이 좋다는 이야기야?'라고 너무 단선적으로 달려가려는 내 모습을 확인한다. 나의 단순함이란... 어떤 맥락에서 공정이 등장했는지에 대한 살핌이 필요하다. 또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봐야할 일이고.
5. 나는 이 책의 등장을 예상했다. 이런 류의 텍스트가 가지는 유용성이 있으니까, 또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보다 인쇄된 형태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한 번은 적중했다. 다만 꾸준하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늘까에 대해서는 살짝 의구심이 든다.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의 독자가 확보되느냐가 관건이니까. 그래서 좀 불편하지만(페이지 인쇄 시 일부 텍스트가 가려지는) 토론의 즐거움을 구독을 재개했다. 그와는 별개로 이 책이 많이 팔려 일년에 한 권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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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의 의지 - 모든 가치의 가치전도 시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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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새롭게 번역본을 내어주신 이진우교수님과 출판사에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읽다읽다 너무하다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차라리 보지 말 걸이란 생각이 자꾸 들게 만드는 수준의 번역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281쪽 326번의 첫 두 문장은 이렇다. 

덕은 악덕만큼이나 위험하다. 사람들이 덕을 외부로부터 권위와 법으로서 자신들을 지배하게 놔두고 권위와 법을 자신에게서 우선 만들어내지 않는 한 그렇다. 


두 번째 문장은 비문이다. 뒷부분의 '만들어내지는'의 객체가 권위와 법인가, 덕인가? 문맥상 덕이어야 하는데 권위와 법을 만들어내야 하는 걸로 읽힌다. 

참고로 청하에서 나온 번역본(강수남 번역)은 해당 부분을 이렇게 옮겼다. 


덕은, 사람이 그것을 권위나 율법으로서 외부로부터 우리를 지배하게끔 맡겨, 자기 자신 속에서 먼저 그것을 낳지 않는 한, 악덕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번역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편안한 번역보다, 이해할 수 있는 번역투가 훨씬훨씬훨씬 읽어내는데는 낫다.


책을 산 고객의 불만이라기 보다 책을 읽어내는 시민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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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bid3 2026-02-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 문제는 독일어가 마다땅인 사람들끼리 싸우던 말던 그건 관심 밖의 일임 (연구자면 중요하겠지만)
문제는 이 책은 번역이고 나발이고 따질 이유가 없는 것이 니체가 정식으로 발매한 책이 아님
니체의 여동생이 맘대로 낸 책임. 뭐 맑스와 엥엘스처럼 사상적인 동질성을 가진 친구라면 또 모를까 (자본2, 3 처럼), 니체의 여동생과 니체는 생전에도 사이가 극도로 안좋았고, 사상 자체도 완벽하게 달랐음.
즉 이 책은 사실 읽을 가치도 그 이전에 번역할 가치도 없는 책임.
학계에서도 이 책은 니체 책으로 여기지도 않음. 뭐 남은 것은 유고겠지만 유고야 니체의 개인 기록이니 연구자나 읽어야 할 사항이고. 니체는 1888년에 ‘니체 대 바그너‘가 그의 마지막 책임.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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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문장만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용에게 공주가 잡혀가는 게 /정/설/인데, 공주가 용이라니.
저자는 왕자 혹은 기사가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는 서사를 다른 방식으로 읽어낸다. 한 인물에는 다양한 캐릭터(용+공주)가 잠재되어 있는데, 용과 같이 이 세상을 위험에 빠트릴(거라고 여겨지는) 요소는 제거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세상에 순응하는 (통상적인) 공주적인 요소만을 인정하는 걸, 공주를 구하는 서사로 드러난 것이란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거다. 나 또한 샤방샤방한 공주는 반갑고 같이 있고 싶지만, 사납고 길들이기 어려운 용은 물리쳐야 할 대상이지 같이 있고 싶은 존재는 절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런데, 만일 그 둘(둘 뿐일까?)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면 어쩔? 달달한 것만 빼먹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코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런 세상을 부여잡고 싶은 치기는 버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용을 어떻게 하지? 조이스 선생님은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기사>의 이야기를 통해 용을 대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몸에 영양을 주는 우유, 지식을 일러줄 책, 관용과 이해를 전달하는 방식인 안아주기. 이 셋을 충분히 제공받는 용은 내면의 부정적인 힘을 드러내는 괴물이 되지 않고 여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린다고 한다. 집에 두 용과 같이 사는 나로서는 정말 유용한 꿀팁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너무 이론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마냥 이야기로만 되어있어 재미로만 읽히게 하지도 않았다. 그림책을 이렇게 읽어낼 수 있는 역량으로 글을 풀었으니... 정말 밭에 내리는 단비 같은 책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딸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인데... 어떻게 하면 읽을까? 아이가 읽는 책들 사이에 놔두는 방법 말고는 아는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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