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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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극은 농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한 순진한 여자 친구의 호감을 얻고 싶은 마음에 보낸 엽서에 적은 몇마디의 우스갯소리. 이로 인해 루드비크는 자신이 믿어 왔던 공산당과 대학에서 제적되었고, 친구 제마네크로부터 배신을 당했으며, 군에 징집되어 오랜 기간 광산에서의 노역을 짊어져야 했다. 루드비크는 자신의 이 모든 불행을 선량한 루치에로부터 위로 받고자 했으며, 헬레나를 능욕함으로써 제마네크로 대표되는 시대의 불합리에 복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루치에에게 과거의 아픈 상처를 되살리는 것으로, 제마네크에게는 정부와의 연애행각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로 귀결되고 말았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대체로 유사한 색깔이 있다. 몇몇 주인공들의 입장을 오가며 대립된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이며, 쌀쌀한 문체며, 그러나 중간 중간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단락하며, 큼직하게 던지는 철학들. 이 책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다소 유사한 글귀들이 눈에 띄었지만 어차피 작가가 동일인이니 그럴만도 하다, 스타일이 유사해서 그렇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의 핵심 소재이니 농담과 관련해 몇마디를 해보자면, 사람 사이의 대화, 그중 농담은 화자와 청자간의 공감이 특히 중요한 것 같다. 말하는 이는 상대방과의 서먹함을 줄이고자,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도하지만, 정작 듣는 당사자가 불편해지거나 심지어는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농담 또는 진솔된 대화는 최대한 지양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개인적으로 몇일 동안 가슴앓이를 하는 중이다. 심한 농담 또는 기분나쁜 대화를 해서가 아니라 그간 열어두었던 마음에 너무 많은 생채기를 입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냉담하게 돌아오는 타인의 언행에서 그동안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엔 내가 그렇지 않았는데,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들인데, 다 부질없고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다 되돌리고, 주어 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몹시 아프다.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분노, 짜증들, 심지어 몇일간 잠에서도 벌떡 깨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는 왜이리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지, 왜이리 이해타산적이 되지 못했던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타인도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대할 수 있었는지, 장말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다만 항변하자면 난 진실로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고 싶었고, 그만큼 마음을 열어둘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이젠 닫을 때가 되었다. 너무 늦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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