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악몽을 꾸었다. 나를 앞서 걷던 하얀 개 두 마리가 갑자기 나를 덮치는 꿈이었다. 프로이트가 꿈은 소원 성취라 했는데, 과연 내가 무엇을, 아니 어떤 상황을 바란 것일까. 짐작 가는 점이 있지만 내 스스로 굳이 꺼내 생각하기에는 민망하고 슬프다.

여하튼 한밤중 잠에서 깨어, 몇일전부터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독서록을 마저 적어본다. 요즘에는 부쩍 삶에서 균형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 많이 초조함을 느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상황이 그런 것도 아닌데, 삶의 무게 추가 한 쪽으로 치우쳐졌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치우쳐있는 지점에서의 성과가 일상에서의 모든 기분을 좌우하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이에 삶도 피폐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작년까지 잘 버텨내고 중심도 잘 잡고 있었기에, 올들어 취한 몇가지 선택들이 내심 매우 후회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지나간일 어쩔수 없는 것이기에, 지금부터라도 예전의 자리를 찾아 조금씩 옆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삶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 쉽지 않기에 나는 <남아 있는 나날>의 주인공 스티븐슨에 연민과 공감을 동시에 느꼈다. 스티븐슨은 다른 것들보다 직업적 소명의식, 전문적 직업인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우선 순위에 둔 사람이다. 켄턴에 대한 애틋함, 부친의 임종에 따른 황망함 등은 직업적 품위를 위해서 필요시 억누를 수 있는 감정들이어야 했다. 서두의 비유대로라면, 그의 삶은 일에 일방적으로 치우쳐져 있었던 셈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모든 행동이 옳은 방향이라 믿었고 주인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으로 귀착될 것으로 알았다. 이처럼 그의 성품은 너무도 순수했고 우직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말미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커다란, 쓰린 회한 뿐이었다.

“(집사의)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57쪽)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 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않을 수 없어요.” (299쪽)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근래 들어 이처럼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체나 구성의 책도 없었기에, 나의 독서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를 비로소 깨달은 셈이다. 아마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성 싶다. 그리고 감수성도 더욱 풍부해졌으리라.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절제된 언어, 정황의 서술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필력은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책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읽는 도중에 몇번의 가슴 저림과 흥분,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불면증도 경험할 정도였다. 어떤 상이 그 책의 우수성을 반드시 공증하는 것은 아니나, 노벨상 수상자의 대표작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제가 이 집에서 일해 온 지 여러 해가 되었건만, 떠난다는 소식 을 듣고도 겨우 축하한다는 얘기밖에 못하시나요?˝
“켄턴 양,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을 뿐이오 거듭 말하지만 지금 위층에서 중차대한 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속히 내 자리로 돌아가 봐야 하오.”
“스티븐스 씨, 당신이 제 지인과 저에게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271쪽)

(부친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누가 내 팔꿈치를 건드리기에 돌아보니 달링턴 나리님이셨다.
“스티븐스, 괜찮은가?˝
“그럼요, 나리 완벽합니다.˝
“자네 지금 울고 있는 사람 같네”
나는 웃으면서 손수건을 꺼내 얼른 얼굴을 훔쳤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라 힘든 하루였던 모양입니다.
“맞아, 정말 힘든 일이었어.˝
(137쪽)

˝스티븐스 씨. 당신은 지금 제게 남편을 사랑하느냐 안하느냐를 묻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럴 리가요, 벤 부인, 내가 어떻게 감히.......˝
“어쨌든 꼭 답변해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스티븐스 씨, 당신도 말 씀하셨듯이 이제 우린 오래도록 다시 못볼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요,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아니었어요. 처음 오랫동안은 아니었어요. 그 옛날 달링턴 홀을 떠나올 때만 해도 제가 정말 영원히 떠나게 될거라곤 생각지 못했답니다. 그저 스티븐스 씨 당신을 약 올리기 위한 또 하나의 책략쯤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막상 여기로 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후 오랫동안 저는 무척이나 불행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러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전쟁이 지나가고 캐서린이 장성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남편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구하고든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한테 익숙해지게 마련이죠. 남편은 자상하고 착실한 사람이에요. 그래요, 스티븐스 씨, 이제 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293쪽)

책의 매력에 빠져나오지 못해 그후 영화도 보았지만 책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영화라는 매체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끝으로 책 말미의 작품해설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누가 이런 식의 괴변적인 확대 해석을 했나 싶었더니, 얼마전 내가 비슷한 관점으로 가치절하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의 해설자였다. 스티븐슨을 아렌트의 “아이하만”과 비교한다는 것, 그의 잘못을 “철저한 무사유”에서 끌어낸다는 것은 너무 과한 면이 있다. 그런식으로 집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범죄자가 먹을줄 모르고, 또는 입을줄 모르고 양식과 의복을 만들어낸 당시의 모든 사람이 범죄 조력자인 셈이지 않겠는가. 작품 해설에도 사유를 좀더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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