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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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루를 정리하며 반복해온 저녁 산책길이 지난주부터 확연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조용히 익어가는 초목의 내음과 살곁에 와닿는 선선한 바람에, 작별의 말 없이 떠나보낸 계절에 대한 아쉬움과 어느새 성큼 다가온 새로운 계절에 황망함이 동시에 드는 것이다. 곧 있으면 이 잎들도 모두 지상에 내려 앉고, 따라서 나도 또 한번의 상실감에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며, 아울러 쌀쌀한 대기가 마치 사회가 내품는 무관심의 은유인냥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그녀와 내가 떠올랐다. 손이 유독 차가웠던 그녀, 반대로 내부에서 끓어 오른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나. 그랬기에 써늘한 계절에 그녀는 항상 내 손을 꼭 잡으려 했었고, 또 그 손을 찾아 내 호주머니 속을 더듬어 댔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른 나이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 생활, 그 냉혹함에 스스로 얼어 붙고 있었고, 그래서 부족한 온기를 나에게서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반대로 그때 나는 가진 것 없는자의 태생적 분노와 열기로 스스로 전소되지 않기 위하여 직감적으로 그녀의 냉기를 더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337쪽)

그때의 그녀와 나는 지금 어떻게 변했는가. 아마도 당시 우리의 삶의 모습은 테레자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각자에게 지나치게 버거운 무게의 삶. 인생이 영원토록 회귀하는가의 철학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는 무관하게, 단 한 번뿐이라도 삶이란 그리 만만치 않음을 어린 나이에 이미 직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이 시점에 나는 어떻게 바뀌어 있는가. 삶의 경중에 대한 생각은 그때와 변함없으되, 변한 것은 그 인식이 직감이 아니라 현실로서 실감하고 있다는 것, 토마시의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의 무게와 냉기가 그때의 온기를 모조리 덮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그녀만이 중요했다. 여섯 우연의 소산인 그녀, 외과 과장의 좌골신경통에서 태어난 꽃 한 송이, 모든 ˝es muss sein!˝의 피안에 있던 그녀, 유일하게 그가 진정으로 애착을 갖는 그녀.˝ (353쪽)

분노와 열정은 의무와 냉정으로 완전히 탈바꿈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 없는 자가 가지기 마련인 선량함, 올바름(correctness)의 느낌은 착각이었음을, 결핍의 억울함을 더욱 선량한 그녀, 타인으로부터 보상받고 싶어했던 것임을, 그래서 나라는 인간은 착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며 단지 이기적이었을 뿐임을, 그런 자성의 목소리에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항상 그를 비난했다.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지만,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단순한 자만심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그녀는 얼마나 교활했던가! 그녀는 그를 시련에 빠트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불렀고 결국 그를 이곳까지 불러들인 셈이다. (...) 테레자의 약함은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아 그녀 품에서 토끼로 변할 때까지 매번 그에게 타협을 강요했던 공격적인 약함이었다.˝ (501~502쪽)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 그리고 이런 점도 있다. 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 (482쪽)

아마도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사이였을 것이다. 그땐 일독을 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해하기에는 삶의 경험이 미천했을테니까. 몇년전 2회독을, 금년초에 다시 일독을 했고, 지난주 일요일 문득 생각이나서 다시 펼쳐 들었다.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다보니 이전에는 매우 얕게 이해했었고 놓친 부분도 꽤 많았음을 깨달았다. 어제 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참 책을 끌어 안고 있었다. 무거움에 눌려 가벼움을 희구했던 테레자, 가벼움의 삶을 누리다 테레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점차 무거움을 짊어지는 토마시, 배반을 연속한 자신의 삶이 결국 참을 수 없도록 덧없던 것이었음을 깨닫는 사비나, 무거움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사비나를 선택한 프란츠, 그리고 토마시와 테레자에게 사랑과 행복의 참의미를 깨닫게 해준 애완견 카레닌까지. 극중 모든 사람이 실은 인생의 중력에 버거워했음을 이해했고 그래서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밀란 쿤데라의 고백도 이를 다시 확인해 주었다.

˝이미 말했듯 소설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문장, 그리고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근본적이며 인간적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유에서 태어난다. (...)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에 매혹을 느낀다. (...)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355~356쪽)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한 번 뿐인가, 영원히 반복되느냐와는 무관하게,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버거운 것임을, 그래서 내가 전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님을 확인하고 위로 아닌 위로까지 받을 수 있었음에 고맙게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역사도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다. (...)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57~358쪽)

끝으로 번역과 관련해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한 문장씩 대조해 본 것은 아니고 그럴 능력도 안되지만 전체적으로 번역이 매우 매끄럽고 수려했던 점은 역자에게 감사드린다. 그러나 첫번째 페이지(9쪽)의 문제는 꼭 지적하고 싶다. 내 생각으로는 이 책의 핵심 단락인데,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원문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문맥으로만 보더라도 분명 어색하다. 영원회귀를 뒤집어 생각하는 부분인데, 쿤데라의 생각은 번역문처럼 단정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 부분에서 말하고 싶은 점은 단지 영원회귀와 한 번 뿐인 삶과의 대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부분은 아래와 같이 조금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

(원번역문)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후략)

(수정번역)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이란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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