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오늘은 최근 회사가 무궁한 아량으로 미천한 나에게 쥐어준 도서상품권을 이용해 몇일전 구입했던 까뮈 전집을 읽기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두꺼운 책 부피에 어느 정도 잠시 마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어 이 책을 먼저 읽는다. 오늘 평할 이 책도 회사 연수중 받은 것으로 책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책중 하나였다.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한지 비참해 하던 차에 호기심이 동해서 휴일 아침에 빠르게 읽어 나갔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목요일 밤에 좀 많이 훌쩍였다. 갑자기 비애감이 폭우처럼 가슴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근래 마음이 많이 불안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목요일 밤은 좀 심했다. 스스로 인정을 좀 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는 무시했었지만 내 깊은 무의식중에는 분명 압박감이 있었던 것이다. 수면장애며, 두근거리는 심장하며, 손떨림하며. 그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갑자기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왜 나는 남들과 이리 다를까? 왜 이리 예민하고 상처도 쉽게 받을까? 열심히 최선을 다한 일에도 조마조마하고 후회할 부분을 굳이 찾아내려 할까? 책에서 말하듯 자존감이 낮아서 일까?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 판단 기준을 매우 높게 설정한다. (...)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사려 깊어야 한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깊이 배려 해야 한다. 책임감과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관심을 가져여 한다‘ (...) 높은 기준은 낮은 자존감과 연결된 경우가 많다. 높은 기준은 낮은 자존감을 보상하기 위한 방편이다.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당신은 그것을 보상할 전략을 찾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깊은 내면은 당신이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고서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를 갈망한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용감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64~78쪽)

나 스스로 나의 삶을 궁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든다. 비근한 예로 요즘 직장 후배들이나 동료들이 휴가 때 쉽게 떠나는 해외 여행을, 나는 출장이외의 목적으로, 사비로 떠나 본 적도 없다. 경제적 문제는 아니다.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고, 집도 있고, 가용할 돈도 넉넉히 있지만 그런 여행을 위해서 그렇게 목돈을 선뜻 한 번에 쓸려고 하면 내 깜냥으로는 수없이 많은 고민의 밤과 손떨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애시당초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심지어 최근 갑자기 마음이 동한 쿤데라 양장 전집도 손이 떨려 결제하고 있지 못하는 나이니. 어찌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빈궁했던 생활습관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내가 남들과는 확실히 달라서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지만 그런 자각이 요즘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우리의 삶은 불가능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바람을 인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일이다. 특히 실제의 삶이 바라는 삶과 큰 차이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상처를 깊이 감춰둔 채 무감각하고 우울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슬픔을 직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분노는 슬픔으로 바뀐다. 슬픔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슬픔은 기다려야하는 과정이다. 슬픔의 감정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사랑과 배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애정과 친절을 베풀지 못한다. 당신이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사람들을 곁으로 불러들이지만 분노는 멀어지게 한다.˝ (147~149쪽)

오늘 아침도 이 책을 읽으며 갑자기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런 류의 책을 읽다가 감성적으로 흐를 가능성은 전무했겠지만, 그만큼 요즘에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그간 애써 외면해왔던 사실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가 된 것이다. 그런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제넘게 보여왔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연민들도 하나 둘 씩 거둬들일 필요도 있겠다. ‘내가 대체 뭐라고‘....... 내가 많이 지쳤다. 결국 인생은 혼자만이 감당하게될 쓸쓸한 여행이 아니겠는가.


˝죄책감을 자신의 무력함과 슬픔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 자신의. 무기력함과 삶의 불확실성을 직시할 때, 지나친 죄책감으로 고통당하지 않을 수 있다. ˝(156~157쪽)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는 것은 때때로 내가 남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일생 동안 자기 자신과 화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과제다. 어릴 때 우리는 삶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기에 대해 온갖 아이디어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장 하면서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바라던 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정말 잘하고 싶었지만 꿈은 쉽게 좌절된다. 그럴 때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연민의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말 더 잘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어. 그렇지만 이것도 괜찮아˝라고.˝ (202~20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