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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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올 땐 구름이 조금 끼어 있는 정도였는데, 이젠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기세다. 태풍이 다가오는 중이라서 그런지 몇일 무더위가 이어졌고, 몇일 후면 어찌되었건 한동안의 고난은 일단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야 과학적인 예보 체계가 있다지만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근간의 날씨에 어떻게 대했을지 궁금하다. 짐작컨대, 너무 덥다고 비라도 오길 바랬을 터이고 막상 태풍이 닥쳐 다 키워놓은 작물이 쓰러지는 모습에 본인들의 인내심 부족을 후회했을 성싶다. 이런 와중에 그리모(Helene Grimaud)가 연주하는 브람스 파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갑자기 울컥해졌다. 연주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연주자 본인의 탄식과, 신음과 거친 숨소리. 예술은 창작자의 고뇌에서 비롯되고 청자는 그로부터 위안을 받는 법.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 이런 감정의 전달과정을 보더라도....... 여기까지가 휴일 아침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는 도중 머리속에 떠오른 단상(斷想)들이었다.

성경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노동이란 죄를 범한 인간에 신이 내린 형벌이다. 매일같이, 영겁의 세월동안 반복될 것 같은 무의미를 향해서 시시포스처럼 회사라는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내 자신의 입장에서는 백번 천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 가끔 나 조차도 일이 많고 바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의식 저변에는 일 자체보다는 그만큼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우쭐함이 깔려 있을 터이다. 그러한 점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일자체는 누가 말했듯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는 개인적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20~21쪽) ˝의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위해 살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20쪽)

실상 나 자신도 가끔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버는 목적이 쉬기 위해서, 결핍으로 궁색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망각하고 휴가도 인간관계도 적당한 씀씀이도 일 때문에 희생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모든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노동의 결과물을 일정량 소비하게 되어 있다. ...... 먹고 자는 데 따르는 대가로 뭔가를 제공해야만 한다. 이 정도 선이라면 근로의 의무를 받아들여 마땅하다. 그러나 오직 이 정도까지만이다.˝(23쪽)

최근에는 여러 고민거리가 가시지않고 삶의 의욕도 바닥이 나서 오직 일에만 집중했다. 잊기 위해서 일분일초도 일에서 눈을 떼지 않는 생활이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같은 사무실 사람들의 의심과 견제의 눈초리에 온 몸이 데였고, 허리 통증도 심해져 주말엔 한의원으로 출근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인생은 살아가기 쉽지 않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사실을 회피할 순 없었다.

˝인생 전체를 달콤하고 유쾌하게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불유쾌한 부분들에 적합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238쪽)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33쪽)

이러다보니 내 심성도 많이 왜곡되어 가고 있음을 많이 깨닫는다. 이유 모를 짜증과 분노가 아무 관련없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일어나는 형국을 보니 말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소심한 성격 탓에 외부로 표출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 어쩌겠는가. 다행이 내가 마르크스나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큰 인물은 아니니 사회에 해악은 끼치지는 않은 점에 위안이라면 위안을 할까.

˝마르크스와 공산주의는 너무도 많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한다 해도 적의가 터져나오지 않는 여유있는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164쪽)

˝파시즘은 자유방임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처럼 정돈된 믿음 체계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감정적 항변에 불과하다. 현대 경제의 발달로 고통받는 소상공인 같은 중산층들의 감정과 권력을 사랑한 나머지 과대망상증에 걸려 버린 무정부주의적 산업계 우두머리들의 감정이 그 축을 이루고 있다˝(168쪽)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의 독서 분량과 짜증지수는 정확히 양의 상관관계를 이루어 왔다. 책이 없었더라면 난 지금까지 살고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요즘에는 다시 독서량이 많이 늘었다. 한편 바람직해 보이지만 그만큼 내가 느끼는 삶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커졌다는 반증이기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흡처럼 책을 놓을 수 없다. 러셀의 책을 읽는 와중에 나처럼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며 책에 의지하는 동료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말이지, 가급적 어려우면서 제일 쓸데 없는 책을 선택해.˝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편(37~52쪽)을 읽은 후 나온 충고였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 이러한 지식(일견 무용한 지식)은 인간 특유의 것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해하고 아는 힘, 도량 있게 느끼는 힘, 올바르게 사고하는 힘을 키워준다. 비개인적인 감정과 결합된 폭넓은 인식으로부터 비로소 지혜가 솟아나오는 것이다˝(51쪽)

˝개인적인 불행이든 공적인 불행이든, 의지와 지성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극복될 수 있다. 의지에는 악을 피하고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포함된다. 지성에는 그 악을 이해하고, 치유가 가능하다면 치유책을 찾아내고, 만일 불가능하다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벗어난 다른 영역, 다른 시대, 행성간의 공간에 놓인 심연들에는 무엇이 놓여 있나를 되돌아봄으로써 그 악을 참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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