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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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갖고서 시작했던 한주도 다시 실망으로 끝난다. 불면증은 반복되고 사람과 주위환경에 대한 희망도 약해졌다. 조금, 아니 많이 실망했다. 그러려니, 남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왔고 이 책을 읽고서 그런 마음이 더 강해지기도 했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섭섭함은 억누를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만으로도 버겁다. 그러니 자신들의 무게까지 내게 얹혀주지 않길 혼자 간절히 바랬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白戰不殆)˝라는 옛말이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데, 읽어본적이 없어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누가했든 이 말에서 새삼스레 선인들의 지혜에 탄복한다. 언제나 위태롭지 않기 위해서는 내 주위를 알고 그다음 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순서가 중요한 것이다.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환경이며, 그 이후에야, 그 속에서 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자아의 정체성이란 독립적인 측면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자아‘ 감정을 키우라는 말)이 결코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반대로 나는 나를 타인과의 관계의 과정에서만 ‘나‘로 느낄 수 있다˝(197쪽)

그래서 항상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과 조건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다하는 것, 설령 실망과 답답함으로 귀결되더라도 그것이 나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불가해함에 맨몸으로 맞서는 것. 그것이 카뮈가 말했던 성실한 인간의 표상이며 프롬이 이 책에서 단언하는 ‘인간 본질‘의 요체인 것이다.

˝나 자신은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이 어느 정도는 인간의 실존에 내재하는 모순에 처해 있다고 본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과 달리 본능이 그의 행동을 주관할 정도는 아니다. 인간은 지능을 넘어 자신을 자각하지만 자연의 명령으로부터 달아나지는 못한다. ...... 이런 모순은 갈등과 두려움을, 더 나은 균형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불균형을 불러온다. 하지만 설사 균형을 찾았다 해도 그 균형에 도달하자마자 새로운 모순이 등장하고, 인간은 다시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끝없이 계속된다.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47~48쪽)

그러나 알기 위한 마음 자세는 이해 대상의 순서와는 역순이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나 꼭 그렇지 않다. 주위를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서 이해와 인식과 사랑하고자 하는 자세가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법이다. 자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데 굳이 정체성을 찾아 무엇에 쓰겠는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투명하다면 타인의 불투명성은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73쪽)

그렇다면 이제 방법만 남는다. 인식하는 능력을 갖추어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에 관해 프롬은 세가지 조건, ˝감탄의 능력˝, ˝집중력˝, ˝갈등과 긴장의 수용력˝을 제시한다.

˝(감탄 능력) 어떤 대상에게 내 안에 존재하는 실제의 힘으로, 그야말로 응답의 능력을 가진 온 힘으로 응답한다면 그 대상은 대상이기를 멈춘다˝(192쪽)

˝(집중력)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에서 산다. 하지만 실제 경험으로서의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식과 응답은 여기 지금에서만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하고 보고 느끼는 것에 전념한다면 말이다˝(194쪽)

˝(갈등 및 긴장의 수용력) 우리는 인간종이 누리거나 언젠가 누리게 될 모든 가능성을 대변하지만 짧은 생애 동안 이 가능성 중에서 미미하게 작은 부분밖에는 실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예방조치를 취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계획과 전혀 무관한 우연에 지배당한다. 우리는 이런 갈등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심오하게 경험하며 이성뿐 아니라 감정으로 수용해야 한다. 부인하거나 지적으로만 경험할 경우 수박 겉핥기식의 피상적인 체험밖에 할 수 없다˝(199~200쪽)

지난주말 이 책을 처음 펼치고 빠르게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흡사 프롬이 내 옆에 앉아서 내 귀에 대고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전율에 몸이 떨렸기 때문이다. 그래 이틀에 걸쳐 찬찬히 나눠 읽어가면서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봤다. 특히 각성하게된 계기는 다음의 문구에서 주로 기인하였다.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101쪽)

과연 내가 원했고 원하는 것이 무얼까?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서 같은 질문만 맴돌았다. 현재까지는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내 삶이 내가 진정 원했던 방식은 아니었다는 것, 말하자면 어쩌다보니 이렇게 흘러왔다는 것이다. 남은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계속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갈 생각이다. 설령 질문만 하다가 생이 끝나는 한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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