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섹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섹스를 할 때와 똑같은 만족을 느낄 수 있지요." 이것은 승화가 억압 없는 충동의 만족이라는 주장을 예시하기 위해 라캉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승화를 대리 만족과 관련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섹스fucking" 대신에 나는 말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기도 등등을)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어떤 것을 대체하려고 또 다른 종류의 만족을 얻는 방법 말이다. 승화는 잃어버린 성적 만족에 대한 대리 만족이다. 그러나 라캉 정신분석이 주장하는 것은 좀 더 역설적이다. 즉, 행위는 다르지만 그 만족은 정확히 동일하다. 달리 말해, 이러한 주장은 말하는 데서 오는 만족을 "성적 기원"을 언급함으로써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할 때의 만족이 그 자체 "성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우리로 하여금 정확히 섹슈얼리티의 바로 그 본성과 지위에 대한 물음을 급진적으로 열도록 한다. 널리 알려진바 마르크스는 "인간의 해부학은 유인원 해부학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아마 그 반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사하게 우리 또한 말할 때의 만족이 성적 만족의 - P7
열쇠를 쥐고 있으며 그 반대는 아니)다, 혹은 더 간단히 말해 그것이 섹슈얼리티와 그것에 내재된 모순들을 이해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이 향해야 할 단순한 (그렇지만 가장 어려운)물음은, "무엇이 성인가?"가 될 것이다. 내가 주장할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은 섹슈얼리티를 정신분석의 고유한 철학적 문제로 고려하는 것이다. - 존재론, 논리학, 주체이론으로 시작해서 섹슈얼리티라는 용어와 공명하는 모든 것과 함께 말이다. 무엇보다도 (프로이트-라캉 계통의) 정신분석은 아주 강력한 개념적 발명이었고, 이는 철학 내에서 직접적이고 중요하게 공명하는 것들과 함께 해왔다. 철학과 정신분석의 조우는 동시대 철학에서 가장 생산적인작업 현장construction site임이 드러났다. 이런 조우는 고전 철학자와 고전적인 철학적 개념들(주체, 대상, 진리, 재현, 실재 등)을 새롭고 독특하게 읽도록 해왔다. 또한 동시대 철학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열었다. 철학이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자신의 형이상학적 과거, 그리고 그 과거에 속했던 몇몇 고전적 개념들을 폐기하려 할 때, 라캉이 나타났고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준 것이다. 말하자면 문제적인 것은 이런 개념들 자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철학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제적인 것은 그 개념들이 함축하고 연루하는 내재적 모순(혹은 적대antagonism)을 부인하거나 삭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개념들을 단순히 폐기한다면, 모든 중요한 전장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장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 된다. 대칭적이지는 않지만 유사한 방식으로, 정신분석도 (또한 임상적 맥락에서) 철학적 개념들을 붙들고 철학적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걸 얻어냈다. - P8
이 책은 다음의 두 가지 확신에서 뻗어나왔다. 첫째, 정신분석에서 성은 무엇보다도 개념이며, 이 개념으로 현실의 끈질긴 모순을 정식화한다. 둘째, 이 모순은 (이미 잘 정립된 것들이나 존재들 사이에 있는 모순과 같은) 부차적 차원에 제한되거나 환원될 수 없고, 이 존재자들의 바로 그 구조화 속에, 바로 그 존재 속에-모순으로서-이미 연루되어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성은 존재론적 문제이다. 궁극적 현실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내재적 비틀림이자 걸려 넘어지는 장애물로서 말이다. 그러므로 "라캉과 철학에 대한 물음은 바로 여기, 즉 문제들이 가장 고조된 이 지점에서 시작하고 다뤄져야 한다. 보통 성은 심지어 라캉과 그의 개념들을 가장 친절하게 철학적으로 전유한 것들에서마저도 물음으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라캉은 maître(주인)과 m‘être (존재로부터) 사이의 동음이의형을 유희하면서, 존재론을 주인 담론과 관련한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존재론은 "뒤에 바짝 붙어 있음", "언제든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함축하는 것이다(Lacan, 1999, 31).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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