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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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해석전문가》는 부희령 작가가 11년 만에 낸 단편집이다. 6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는데 대체로 최근에 쓰인 소설들이다. 가장 오래된 소설 두 편이 2013년인데, 그 외의 소설들은 다 공개된 지 4년이 안 된 것들이다. 올해 봄에 공개된 소설도 있다. 나는 최근에 쓰인 따끈따끈한 소설이 좋다. 주제 넘은 발언일 수 있지만 작가의 현재성을 반영한다고나 할까, 전작과 비교하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시는구나'하고 감히 작가를 추측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에는 2013년 소설과 2023년 소설이 수록되어있다. 10년의 시간이 담긴 책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단편집의 정체성은 그 표제작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름해석전문가>가 표제작인 이상, 이 소설이 책 전체를 아우를 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별'이다. <구름해석전문가> 역시 초점화자 이경이 이별을 하는 내용이다.

이경은 소설가이자 연인인 선우와 이별을 하기 위해 포카라로 홀로 여행을 떠난다. 선우가 주고 간 노트북과 함께. 남몰래 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경은 포카라에서 만난 상운에게 글을 쓰기 위해 포카라에 왔다고 말했지만 단 한 자도 글을 쓰지 못한다. 노트북의 비밀번호를 모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경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경은 상운과 상운의 일행 진상(상운의 연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과 동행하며 선우와 완전히 이별하는 데 성공한다.

구름을 보기 위해선 구름 위에 있어야 하고 보트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지만 완연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태 등한시 했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경은 선우라는 족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경은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사랑이라는 행위를 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이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이별에 성공한 것이다.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경이 어둠 속 희뿌연 구름에 둘러싸여 있어도 그 어떤 때때보다 빛나는 이유다.

《구름해석전문가》는 어떻게 이별하는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동'을 제시한다. 담장 위로 올라가거나, 어둠 속에서 발을 내딛거나, 산을 오르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어리숙한 다짐이 무너지기도 하고, 나를 자책하게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성장의 가능성을 엿보게 될 것이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책을 읽으며 소설이 축축해서 께름칙하다는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소설 두 편이 산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소설들의 내용도 전혀 유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3인칭 시점이라도 초점화자가 존재하는 한 누군가와 갈등하는 상황에서 독자는 그 화자의 편으로 기울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묘하게 기분 나쁘고 거북하다. 또한 인물들 전부가 나르시스트적 면모가 있어 약간 껄끄럽기도 했다.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이러한 감상은 문학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정하고 안온한 문학에 지친 내게 이 책은 문학과 소설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몇몇 표현은 다소 직설적이라 아쉽기도 했다.(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서술이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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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의 구멍 초월 3
현호정 지음 / 허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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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배경으로 하는 성장소설인 《고고의 구멍》은 우리가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우리의 주인공인 고고가 사는 '마을'은 일년 내내 겨울인 추운 지역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날씨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쌍둥이다. 고고와 노노만 빼고. 태어나길 홀로둥이로 태어난 둘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켤레로 묶여 살아가다 노노가 병에 걸려 죽고 고고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마을사람들은 홀로둥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고는 그렇게 홀로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고고의 가슴에 구멍이 생긴다.

우리는 저마다의 '외로움'이라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고고의 구멍은 자신을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으며, 자신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배제 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했기에 생겼다. 심지어 혼자를 두려워해 홀로둥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쌍둥이만을 고집하는 마을 역시 구멍 때문에 없어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무리 누군가와 함께 있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다고 해도 '외로움'이란 모두의 친구이기 때문에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구멍을 외면하거나 구태여 다른 것으로 채우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고가 그 구멍을 고쳐줄 존재를 찾기 위해 협곡과 바다를 누비고, 심지어 고고에게 소중했던 노노를 만나기도 하지만 고고의 구멍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구멍은 타인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구멍의 존재를 옅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비비낙안이 크레이터를 완전히 메우지 않듯이 말이다. 고고는 구멍을 통해 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날 때 가장 행복하다. 나만의 구멍, 나만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인정할 때야 우리는 비로소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활짝 웃게 된다. 그리고 고고가 웃으며 마을을 구하듯, 우리도 웃으며 우리만의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 속 묘사를 스스로 그려나가야 한다. 대체적으로 그 그림은 독자 개인의 경험과 맞닿아 있어 같은 묘사라도 사람마다 그려낸 세계는 다를 것이다. 소설의 재미란 이런 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아무도 경험해본 적 없고,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환상소설 속 세계는 얼마나 다를까. 직접적인 경험과 기억에 구애를 받지 않고, 소설의 묘사를 따라 그려낸 세계는 얼마나 흥미로울까. 환상소설을 읽는 이유는 독자를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펼쳐주기 때문이 아닐까.

현호정 작가의 《고고의 구멍》은 그런 소설이다. 딱딱하게 고착된 나의 상식을 초기화 시키고 0부터 시작해 모든 걸 새롭게 설계한다. 《고고의 구멍》 속 세계는 나의 좁은 상상력으로는 감히 그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창조적이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 흥미로운 세계에서 나와 비슷한 것, 이 세계와 비슷한 것을 찾았을 때는 정말 기쁘다. 새로운 세계 속에서는 현실세계의 내가 도저히 떠올릴 수 없던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고고의 '구멍'은 '외로움'이었다. 소설은 내게 나의'구멍'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든 상처는 안팎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아문다"는 비비낙안의 말처럼 결국 타인과 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 구멍을 씩씩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구멍을 메우는 첫걸음일 것이다. 각자의 머릿속의 세계가 다르듯, 각자가 생각하는 '구멍'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구멍을 메우는 방식도 말이다. 그 구멍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어떤 것이고, 메우는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현호정이 만든 새로운 세계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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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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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을 완독했다. 사실 문학 서적만 읽는 내게 《인류의 여정》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유니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서점에 갔을 때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그저 어려워 보이니까. 현재 인류를 탐구해온 수많은 학자들이 있고 그들이 써서 한국에 번역된 책들도 무수히 많지만 관심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두꺼운 인류학, 인문학 도서를 봐도 겁 먹지 않고 손을 뻗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인류의 여정》은 흥미로웠고, 어렵지도 않았다.

오데드 갤로어는 인류가 지닌 두 가지 수수께끼, 즉 '성장의 수수께끼'와 '불평등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했다. 인류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인물이 아닌, 그 아래 존재하는 어떤 힘에 집중했다.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전혀 상상치 못했던 것들이라 놀라웠고 그 힘을 믿게 되었다.

책은 수수께끼를 풀 뿐만 아니라 인류가 걸어온 여정을 살피는데 작가의 지식은 감탄할 만큼 방대하다. 또한 누가 무엇을 해서 어떤 일이 발생했다 하는 '세계사'가 아닌 인류는 이런 선택을 했고, 이런 변화를 겪었다처럼 '인류사'를 배우는 것 같아 신선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은 별 생각 없이 책을 펼쳤다가 책에 몰두하게 되는 경험을 겪게 될 것이다.

벽돌 같은 인문학 서적에 대한 진입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 말고도 《인류의 여정》을 통해 내가 겪은 변화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관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경제 뉴스 1면을 장식하는 말은 항상 '경제 불황'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우스갯 소리로 '맨날 불황이래~'하고 넘겼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니 아무나 붙잡고 원망을 토하고 싶을 정도로 비참해진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가 미래를 바라볼 때 비관의 안경을 쓰게 된 게. 비관이 '쿨'해보이고 '힙'해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의 경우엔 낙관하기 어려우니 비관 쪽으로 기울여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데드 갤로어는 『인류의 여정』을 통해 낙관을 이야기한다. 그가 무사태평한 성격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시원으로 돌아가 현재까지 인류의 궤적을 추적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현재 인류가 밟고 있는 진화의 단계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며,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차후 불평등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그는 말한다. 교육과 관용, 평등이 전제가 되어있다면 말이다. 사실 그의 논의가 다소 비약해 보이긴 한다. 작가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해 인구 감소가 그 해결책이라 말하며 미래를 낙관하지만, 한국과 같은 저출산 국가는 인구 증가가 필요하다. 이처럼 작가의 주장이 한국의 상황과 맞지 않아 보이는 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낙관해보려고 한다.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희망적인 인식이 우리의 성취 의욕을 북돋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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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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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이다. 제목과 부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배우자나 자녀 같은 법적인 관계가 없이 솔로로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책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라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두 세명 밖에 되지 않는다. 20대 초반 여성들의 이러한 경향은 사회면 기사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비혼은 인생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고, 내 주변에도 비혼의 삶을 이어가는 30대 여성들이 꽤 있다. 나는 이것이 경제 불황, 가부장제와 성차별 등의 결과인 줄 알았지만 이는 최근의 현상이 아님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은 비혼 중년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년 뿐만 아니라 60대의 노년 여성도 있고 책에서 소개된 비혼 공동체는 70대 노년 여성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1인 가구는 최근에서야 발생한 현상이 아닌 것이다. 또한 현재 1인 가구의 수는 소위 정상 가족이라 불리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보다 더 많다고 한다. 왜 이런 책이 여태 없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홀로 살아가는 중년 여성인 '에이징 솔로'의 현재의 삶에 대해 다룬다. 그들은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숱한 차별의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그들의 현재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통해 그 말이 얼마나 편협하고 어리석은 생각인지 통쾌하게 역설한다. 2부와 3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관계'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와의 연결을 통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약한 동물이다. 2부와 3부에서는 에이징 솔로의 다양한 형태의 연결을 집중한다. 많은 여성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사회와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가족중심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가족을 벗어난 관계망을 상상하도록 돕는다. 4부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제도 현황에 조명한다. 이 장에서는 시대에 맞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를 말한다.

작가의 전작인 『이상한 정상가족』을 보고도 느꼈지만, 이 책 역시 독자의 갇혀 있는 생각을 깨고 상상의 지평을 넓혀준다. 특히 비혼이 비장한 선택이 아닌 가치관과 삶의 맥락 속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대목을 읽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사회의 관습에 갇혀있는지 깨달았다. 사회적 시선부터 제도까지 한국에서 1인 가구를 위한 기반은 마련되어있지 않다. 에이징 솔로는 그런 데서 비롯된 불안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인정하고 대안을 찾는다. 울타리 밖에 있지만 자신만의 울타리를 짓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책은 1인 가구만을 위해 필요한 책이 아니다. 책은 누군가와 법적인 계약을 통해 가정을 꾸린다 해도 인간은 외로울 수 있고,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제도와 관습은 개인이 아닌 혈연가족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다. 가족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개인으로 존중받고 보장받을 수 있어야 비로소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따라서 사회 역시 이 변화의 흐름에 발 맞추어야 한다. 나는 책에 제시된 에이징 솔로의 삶을 통해 어떤 제도가 필요하고 어떤 시각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에이징 솔로』는 진보된 사회에서 변화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따라서 『에이징 솔로』는 사회에 꼭 필요한 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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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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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족과 우정, 사랑을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 세계에 잘 녹여낸 판타지 소설이다.

인상적인 것은 화국인들이 라잔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겪는 묘한 차별이었다. 특히 제비가 라잔 제국의 예술가들과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제비는 꼬리 곰탕이 무척 짜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것이 주방장의 실수인지 고의인지 분간할 수 없다. 소설은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언어, 사회적 대우 등 가시적인 차별 뿐만 아니라 삶 곳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는 차별도 다룬다.

하지만 오롯이 독립군군의 입장에서만 서술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의 초점화자는 제비인데 제비는 독립에 대한 강한 염원이나 의지가 있는 인물이 아니다. 봉숭아의 보호와 사랑 아래 예술을 전념해온,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이다. 소설 중후반부엔 봉숭아가 오로지 독립이라는 대의만을 위한 냉정한 인물처럼 그려지는데 이것이 내겐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마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기에 가능한 서술이 아닐까 싶다. 또한 결말을 포함해서 책을 읽으면서 소위 말하는 '국뽕'이 느껴지지 않았다. 독립군의 정의로움과 숭고한 희생같은 것보다는 개인의 딜레마에 더 집중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여기에 있다. 독립 투쟁을 다룬 소설과 결을 달리한다는 것에 주목해 읽으면 더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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