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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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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역사서를 읽고나면 경이롭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 머나먼 과거에 그런 지혜와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하는 경이로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경이로움이라는 감상은 같다. 그러나 그 느낌이 다르다. 이 책에서 비롯된 경이로움은 어떻게 100년도 안 된 과거에 저렇게 멍청하고 한심한 사람이 한 국가나 군대의 리더일 수 있지, 하는 경이로움이다.

우리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인 사람을 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람만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하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독자에게 이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우리의 롤모델로 흔히 언급되는 성공한 소수 뒤엔 실패한 다수가 있다며 우리가 '정말로 눈여겨 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은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왜 실패했느냐'일 것이라고 이 책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 밝혔다.

저자는 전쟁의 승자와 달리 조명을 받지 못한 패자들 중 도의적 책임을 다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패배자가 된 사람들이 아닌, 재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심한 인명피해와 후유증을 일으킨 장본인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들을 '똥별'이라 부른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속에 총 12명의 '똥별'이 등장한다.(이는 마치 12개의 별자리를 연상하게 하는데, 의도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들의 국적은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하며 대체로 20세기의 두 가지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의 똥별도 당연히 있다. 그들이 어깨에 별을 달고 '똥별'로 전락한 데에는 가지각색의 원인이 있다. 좁은 시각, 사리사욕, 변화에 눈 뜨지 못한 안일함, 무책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오로지 그 '똥별'의 과오라 말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그들을 지도자로 만든 그들이 몸 담고 있던 조직 역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당시의 참담한 상황과 '똥별'들의 오판과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 등을 자세하게 서술해 독자로 하여금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똥별'들에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이 책을 읽고 역사의 의의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인간은 약하디 약하고 멍청하디 멍청한 동물이기에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몇 번이고 실수를 할 것이다. 그 실수로부터 우리를 예방해주는 것이 바로 역사, 즉 인간의 어리석음이 부른 실패에 대한 역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훗날 '똥별'로 기록될 지도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흑역사는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고 후대의 역사가들의 펜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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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진심의 기록 - 숫자 대신 마음으로 쓴 MLB 이야기
전훈칠 지음 / 싱긋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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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관심이 없는, 내 관심사와 전혀 다른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다. 나는 단 한 번도 스포츠를 좋아해본 적이 없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도 큰 관심이 없기에 스포츠에 울고 웃는 사람을 보면 스포츠가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 건지, 무엇이 그들을 미치게 하는지.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MLB를 좋아하는 저자의 에세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진심의 기록』의 부제는 '숫자 대신 마음으로 쓴 MLB 이야기'다. 다른 스포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쟁과 승리가 곧 연봉으로 직결되는 시대에 야구는 숫자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전략의 스포츠가 아닌 숫자가 만든 점수의 스포츠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맞서 부제처럼 이 책에는 MLB에서 활동했던, 혹은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의 실적보다는 그들이 얼마나 야구에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는지 그들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신체적 한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만든 선수, 삶의 끝이라는 절벽에 서있다 야구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선수, 찬란했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은퇴한 선수, 사회적 소수자의 대변인이 된 선수까지 저자가 기록한 그들의 진심은 현재까지도 야구와 야구를 넘어서 우리의 삶에 영감을 준다.

사실 나는 야구 선수는 유명한 한국 선수들나 오타니 쇼헤이 말고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MLB를 잘 알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더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 야구의 룰 정도만 아는 나 역시도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MLB를 아예 모르는 독자들은 적어도 MLB에 어느 구단이 있고 그들 중 누가 가장 실력이 좋았는지 등의 간략한 정보를 배경지식으로 두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의 이력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단지 야구가 좋아서 닥치는 대로 야구 잡지를 읽고, 야구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고, 비로소 스포츠 기자가 되어 야구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야구선수들의 진심과 더불어 작가의 뜨거운 진심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진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이룬 작가가 부럽기도 하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가득한 무언가. 그것을 나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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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 쓰는 법 - 짧은 문장으로 익히는 글쓰기의 기본
벌린 클링켄보그 지음, 박민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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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글'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 짧은 시간 안에 독자의 무료함을 해소해주고, 자극시켜야 하는데 '글'은 읽는 데에도 폼이 많이 들어 시작도 전에 피로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같은 '글'을 매개로 먹고 살고 싶은 사람들은 어째야 한단 말인가. 어떡하긴. 글을 재밌게 쓰면 된다. 나는 작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작가들이 글을 재밌게 쓰도록 해야한다. 재밌는 글이란 말 그대로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문장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하며 더 나아가 그 독자가 쓰고 싶게 만들도록 하는, 그 작가만의 고유한 것이다. 벌린 클링켄보그의 『짧게 잘 쓰는 법』은 작가에게 그런 글을 쓰도록 알려주는 끝내주는 작법서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 교육을 받는다. 그날의 날짜부터 있었던 일, 그래서 내가 느끼거나 깨닫는 점. 100개 정도 되는 격자무늬 안에 우리는 저것들을 채워넣어야 한다. '자유'형식이지만 자유형식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틀에 맞는 형식적인 글쓰기를 아주 어릴 적부터 배워온 것이다. 중, 고등학교 때는 어떠한가. 더욱 심해진다. 논술시험은 시험관의 입맛에 맞도록 틀에 맞추어 적어야 한다.(그 입맛도 정해져있다) 그래서 우리의 글은 다 어디선가는 접해본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나조차 그렇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의 상식을, 몇 십년간 우리를 길들여온 틀을 부수고자 한다.


작가의 작법은 여타 작법서들처럼 매뉴얼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예비 작가들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한다. 문장의 리듬을, 문장의 즐거움을 느끼고 알아채도록 종용한다. 우리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자극하며 전형적인 수식어보다 '나'만의 단어,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도록 한다. 좋은 글이라고 배워온 '좋은 글'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강조한다.

사실 그의 작법이 어떤 효용이 있는지 공감되지 않았다. 차라리 흔한 작법서의 말처럼 첫 문단에는 어떤 주장을 쓰고~ 두 번째 문단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문장을 쓰고~ 마지막 문단은 의의와 한계를 밝혀라! 하는 것이 더욱 와 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 안에 숨어있는 창작욕구가 피어나오려는 것을 알아챘다. '쓰고 싶다!' 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글이 대체불가능할 정도로 좋은 글이라고 늘상 생각해왔는데, 이 책이 그런 책인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작가가 선정한 좋은 글의 일부가 발췌되어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이게 좋은 글이구나! 하는 그런 깨달음. 예를 들어 이런 부분이다.

비스듬히 말린 두건이 물에 흠뻑 젖었다. 나는 두건을 이따금 강물에 적셔 머리에 둘렀다. 물은 화씨 46도다. 그 사원에서와는 달리 청량해 살 만하다. 며칠 전 햇볕 아래에서 얻은 두통이 가셨다. 작열하는 북극의 태양은 빛나기보다는 쏘아대는 듯했다. 티셔츠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마저 기분이 좋다. (…) 고도 때문에 두통이 생겼었나 싶지만 우리가 산에서 내려온 걸 감안하면 겨우 해발 몇백 피트 높이에 있을 뿐이다.(…) 카누 한 대와 카약 두 대로 강을 내려가는 지금, 다행스럽게도 내가 카약에 탈 차례가 아니어서 순록 뿔(카누 중간 부분에 캠핑 용구와 함께 처박혀 있던)에 걸려 있던 낚싯대를 꺼내 강가의 암벽을 향해 내던진다.

-존 맥피, 『그 땅으로 들어가며』

이 글에 대해 작가는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왜 존 맥피는 '시원해'라는 평범한 말을 놔두고 '청량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내가 머물던 사원'이 아니라 '그 사원'이라고 했을까요?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쓰듯 '며칠 전'이라고 하고, '해수면에서'가 아니라 '해발'이라고 했을까요?

괄호 안의 '함께'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세요.

그 단어가 어떻게 우리를 안내해주는지, 어떻게 맥피의 시선을 잡아주는지 느껴지나요?

존 맥피의 글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즐거움'이다. 글의 즐거움이 이렇게나 짜릿한 것이구나, 다시 깨달았다. 내가 왜 저 짧게 인용된 존 맥피의 글에 빠져들었는지 작가는 명확히 집어낸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작가가 줄곧 책에서 이야기했던 문장 하나하나는 정적인 구조물이 아닌, 작가에 의해 살아 있는 것이며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이런 글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매혹되어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이니 이런 좋은 책을 쓰는 거겠지, 하는 생소한 경외심도 든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작가만의 언어로 적힌, 생동감 넘치는 글을 쓰는 것은 무지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끈질기게 앉아 사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것들로부터 벗어나 내게 집중해서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작가는 이 참을성을 요구하는 작업 끝에 글을 쓰는 재미를 낚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나도 그 재미를 언젠가 낚을 수 있겠지.

사실 작법서를 믿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정말 추천하고 싶다.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허황된 이야기로 다가올 것 같아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문장을 읽고 문장 자체가 갖고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작가의 작법을 꽤나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속도도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보다 더디다.이 글도 과연 좋은 글일까? 아니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끈기있게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기. 앞으로 내 과제일 것이다.

오늘도 외친다...

우리 교유서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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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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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당의 5월 서평 도서로 《시를 쓴다는 것》이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마음은 '설렘'이었다. 사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작품은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이야기는 항상 매력적이고, 내게 경외심믈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창작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어떤 마음으로 창작을 하는지, 창작자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등이 말이다. 창작이란 한 인간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터를 잡고, 땅을 갈고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다. 따라서 같은 분야의 창작자라도 창작물은 전혀 다른 형태와 양식으로 탄생한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대체 어떤 모양일까. 그들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관심사였다.


《시를 쓴다는 것》은 다니카와 슌타로의 에세이로, 일본공영방송인 nhk에서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다른 에세이보다는 인터뷰집의 성격과 유사하며, 읽으면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이라 하면 왜인지 모르게 섬세하고 유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다니카와 슌타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호탕하고 유쾌하며 때로는 귀엽고 친근한 아저씨같은 인상이다. 또한 매우 솔직하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솔직해 많이 웃으며 읽었다. 이 에세이는 그의 시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의 인생 전반을 다루는데 책을 읽다보면 그와 친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그가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가 말과 언어를 생각지도 못한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다보면 역시 시인은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시라는 것은 산문과 달라서,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울림이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여러 가지 것을 동원해서 언어라는 놈을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무의미한 것을 시에 씀으로써 거꾸로 그 의미 이전의 세계를 만져서 느끼고 손으로 더듬어...... 존재 자체의 리얼리티 같은, 뭔가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시가 맡은 역할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니카와 슌타로, 『시를 쓴다는 것』 中

시에 대해, 시인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인 나지만 이 에세이는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창작과 시를 마주하는 시인의 '마음'은 아무리 시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인가보다. 시와 언어에 대한 그의 진심은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시가, 문학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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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0
존 보커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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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무교가 된 사람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종교와 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고, 소중한 사람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신'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아마 김연수 소설을 읽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세계, 나의 이성으로는 닿지 않아 내가 믿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초월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이유는 갇혀있는 좁은 사고 때문이라는 것을 지각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에게 미친 '신'의 막대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는데, '신'을 불신하는 것은 그 역사 자체에 콧방귀를 뀌는 셈이니 '신'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나니 궁금해졌다. 그 긴 인류의 역사에서 '신'은 어떻게 존재해왔는지, '신'은 대체 누구이고 사람들은 '신'을 왜 믿는지. 나처럼 이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유서가의 스무번째 첫단추 시리즈인 《신》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의 저자인 존 보커는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이며 많은 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로 활동해왔다. 《신》은 '신학'에 입문하기 위해 몸을 푸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도서인 것 같다. 입문도 아닌 입문하려고 하는 사람, ''신'이 무엇일까?'하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따라서 쉽게 예상하는 것처럼 설명이 추상적이지 않고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책의 설명을 따라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신'에 아예 무지한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려워 이해를 포기하고 글자만 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읽다보니 너무 흥미로워서 금방 몰입이 되었고 그의 설명을 소화할 수 있었다.

책의 본문은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총 7개의 목차로 되어있는데 소제목부터가 독자의 구미를 당기게 만든다. 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 신을 이해해보려 하는 사람들이 품고 있을 근본적인 의문들일 것이다. 첫번째 장은 '신이 존재하는가?'를 다룬다. 다양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데 여기서 그들의 언어에 집중한다. 작가의 논리적이고 치밀한 설명은 아무리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신'이 존재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두번째 장에는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에 주목하는데 나는 이 책에서 이 장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여전히 깔끔히 해결되지 않은 의문도 남아있지만 이 장은 내게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었다. 세번째 장에서 여섯번 째장은 특정한 종교들을 다루며 다양한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고 믿으며 그 믿음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하는지 살펴본다.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장은 "신이 우리에게 어떻게 알려지는가"에 집중한다.

소제목만 들어도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이 작고 얇은 책에 저렇게 재밌고 가치 있는 정보가 가득 담겨있다. 내가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신학과 과학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면 신을 믿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신은 보이지도 않고, 경험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답은 '신'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설명을 듣고 내 사고가 반짝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독자들도 이러한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이게 될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이 책의 대상독자는 '신학'에 입문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신과 종교에 대한 회의는 접어두고, 신을 알고 싶은 사람은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신을 믿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는데 그 심리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그러한 부분은 심리학 도서를 참고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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