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의 구멍 초월 3
현호정 지음 / 허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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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배경으로 하는 성장소설인 《고고의 구멍》은 우리가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우리의 주인공인 고고가 사는 '마을'은 일년 내내 겨울인 추운 지역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날씨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쌍둥이다. 고고와 노노만 빼고. 태어나길 홀로둥이로 태어난 둘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켤레로 묶여 살아가다 노노가 병에 걸려 죽고 고고는 마을에서 쫓겨난다. 마을사람들은 홀로둥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고는 그렇게 홀로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고고의 가슴에 구멍이 생긴다.

우리는 저마다의 '외로움'이라는 구멍을 가지고 있다. 고고의 구멍은 자신을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으며, 자신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배제 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했기에 생겼다. 심지어 혼자를 두려워해 홀로둥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쌍둥이만을 고집하는 마을 역시 구멍 때문에 없어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무리 누군가와 함께 있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다고 해도 '외로움'이란 모두의 친구이기 때문에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구멍을 외면하거나 구태여 다른 것으로 채우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고가 그 구멍을 고쳐줄 존재를 찾기 위해 협곡과 바다를 누비고, 심지어 고고에게 소중했던 노노를 만나기도 하지만 고고의 구멍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구멍은 타인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구멍의 존재를 옅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비비낙안이 크레이터를 완전히 메우지 않듯이 말이다. 고고는 구멍을 통해 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날 때 가장 행복하다. 나만의 구멍, 나만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인정할 때야 우리는 비로소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활짝 웃게 된다. 그리고 고고가 웃으며 마을을 구하듯, 우리도 웃으며 우리만의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 속 묘사를 스스로 그려나가야 한다. 대체적으로 그 그림은 독자 개인의 경험과 맞닿아 있어 같은 묘사라도 사람마다 그려낸 세계는 다를 것이다. 소설의 재미란 이런 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아무도 경험해본 적 없고,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환상소설 속 세계는 얼마나 다를까. 직접적인 경험과 기억에 구애를 받지 않고, 소설의 묘사를 따라 그려낸 세계는 얼마나 흥미로울까. 환상소설을 읽는 이유는 독자를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펼쳐주기 때문이 아닐까.

현호정 작가의 《고고의 구멍》은 그런 소설이다. 딱딱하게 고착된 나의 상식을 초기화 시키고 0부터 시작해 모든 걸 새롭게 설계한다. 《고고의 구멍》 속 세계는 나의 좁은 상상력으로는 감히 그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창조적이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 흥미로운 세계에서 나와 비슷한 것, 이 세계와 비슷한 것을 찾았을 때는 정말 기쁘다. 새로운 세계 속에서는 현실세계의 내가 도저히 떠올릴 수 없던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고고의 '구멍'은 '외로움'이었다. 소설은 내게 나의'구멍'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든 상처는 안팎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아문다"는 비비낙안의 말처럼 결국 타인과 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 구멍을 씩씩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구멍을 메우는 첫걸음일 것이다. 각자의 머릿속의 세계가 다르듯, 각자가 생각하는 '구멍'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구멍을 메우는 방식도 말이다. 그 구멍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어떤 것이고, 메우는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현호정이 만든 새로운 세계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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