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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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때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전혀 쓸모가 없어져 우리의 기억속에서 지워진채 자료로서만 남아있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환경이 바뀌어도 본능은 살아남아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에게 본능이란 태어날 때부터 몸 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든다. 본능에 충실하자는 말이 나쁘게만 들리지 않는 건 그만큼 우리가 가진 본능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것들이 소멸되어 가도 내게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무엇이 있다는 것에 왠지모를 안도감이 느껴지도 하고..



‘옛날’이라는 게 언제인지, 그때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그 붉은 방이 냉동 보존된 과거로 둘러싸인 밀실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결혼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보단 자신과 가장 조건이 맞게 매칭된 상대와 하고 임신은 인공수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성이 초경을 시작하면 의무적으로 산부인과에 가 피임시술을 받아야 하는, 지금 우리 세계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세계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같은 허구의 인물과의 연애는 정상이지만 진짜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그 속에서 주인공인 아마네는 어린시절부터 엄마와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너는 섹스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태생부터 남들과 달랐던 아마네는 그래서 당연시 되고 규정되어 있는 것들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사람과 연애하고 섹스를 하며 정상인 세계에 섞이지 못한채 살아가는데..


정상 속에서 비정상으로 살아가는 고독함은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네는 대다수의 정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인 비정상에도 속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비정상이라 규정하는 엄마를 부정하면서도 정상인 사람들처럼 살아가진 못하는 어딘가에 정체되어 부유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언제나 정상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한 무언가가 항상 필요했다. 그래서 비록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을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가족이라는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가족이 붕괴되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고 철저히 만들어지고 계획된 비정상의 도시에서 소름끼치도록 정상이 되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세상에서도 정상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세상, 그 바깥에 존재하는 세상, 이 실험도시, 어느 세상에서도 나는 소름 끼치도록 정상이었다. 사실은 비정상이 아닐까 싶을 만큼.


 

 

 

<편의점 인간>,<멀리 갈 수 있는 배>를 읽으며 저자는 항상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다수의 정상들과는 다르고 그곳에 속하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정상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고통을 겪는 존재들이었다. <소멸세계>의 아마네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항상 조금 외면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연하지 않은 다른 존재들 역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세계와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런 편견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그녀의 소설은 어찌보면 기괴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 속에서 분명한 배려와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시 되는 것들이 사라져 버린 <소멸세계>에선 우리 역시 비정상이라 규정될 수 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어왔던 것들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우리 역시 언제나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본능이라 믿어 왔던 결혼과 출산, 가족이라는 것이 정말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어느쪽의 기준에 맞추든 모두에게 부합하는 이상세계는 있을 수 없기에, 언제나 그 중간지점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항상 그 지점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계를 꿈꾸는 저자의 마음이 글 속에 위로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진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언제나 그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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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8.12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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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추운 바람이 매섭게 느껴지는 겨울이 다가왔나 보다. 어린시절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귤 까먹으며 보낸 겨울밤이 불현듯 생각나는 걸 보면.. 지금은 그런 온기를 느낄 순 없지만 그래도 포근한 이불속에서 보낼 수 있는 겨울이 온 것이 실감나긴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은 언제 마주해도 아쉽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샘터와 함께 하는 2018년의 마지막 12월 역시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듣지도 않지만 타이거JK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힙합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진짜 랩퍼라는 생각. 그래서 이번 인터뷰를 보며 그의 매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힙합을 정말 사랑하는 진짜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해 동안 먹을 김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둑해 진다. 사실 장을 담그는 것도 한때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김장과는 다르게 장을 직접 담그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분명 힘든 일이지만 가족을 위해 언제나 장을 담그시는 할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된장을 어찌 가족들이 싫어할 수 있을까. 된장을 이용한 샐러드라니 생소하지만 그 맛이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몸의 추위와는 다르게 마음의 한기를 없애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한기를 단숨에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가족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특집은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고 추위가 두렵지 않게 해주는 사랑, 나에게도 마음속의 난로가 있기에 추운 겨울이 두렵지만은 않은 것 아닐까.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바로 그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것 아닐까 싶다. 나의 여행에서도 음식은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왠만하면 음식은 가리지 않기에 그 나라의 음식을 최대한 많이 맛보려 노력한다. 올해 나도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서 먹었던 진짜 쌀국수와 반미, 분짜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확실히 더 이 글이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취미생활을 정말 다양하게 가지고 그 취미생활이 다시 생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롱 보더를 취미로 타다 롱보더 모델로 직업을 전환한 그녀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즐기라는 말보다 일과 취미생활을 항상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그녀의 말이 훨씬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무엇이든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만 한다면 다양한 길이 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일찍이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행해 나가는 청년의 푸드트럭은 그래서 멋지다. 그래서 독특한 레시피와 그녀의 노력이 더해진 남솊키친 푸드트럭이 잘 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많아진 기회만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추운 날씨에 폐지를 줍기 위해 다니시는 노인분들을 마주칠 때면 마음이 아프다. 그분들의 고생과 노력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안타깝다. 그래서 그런 노인분들을 돕기 위한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정말 놀랍다. 멋지고 또 대견한 학생들을 보며 그저 생각에만 그치는 내가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이웃을 챙길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멋진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추워진 날씨만큼 느껴지는 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인지 샘터에도 유독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렸던 것 같다. 그래서 샘터 12월호를 읽으면서는 올 한해를 다시 떠올리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년 12월은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지만 그래도 따뜻한 온기를 샘터로부터 받을 수 있어서 남은 겨울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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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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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 자부하는 나이지만 아이들의 독서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긴 어렵다. 본인 스스로가 재밌고 읽고 싶어서 읽는 책과 강요하고 명령하여 억지로 읽는 책은 천지차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현란한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이 책보다 더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스스로 책을 집어들어 그 매력에 푹 빠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부모로서 미디어와의 접촉은 적당히 끊어주고 책과의 만남을 독려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느끼는 책의 매력, 독서의 재미를 우리 아이들도 꼭 경험하고 또 평생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 하지만 아이들이 바로 내 마음을 알고 따라와 주진 않는다. 자꾸만 책을 밀어내는 아이들을 보다보면 조급해지고 계속 성급하게 책을 들이밀게 되지만 그런 강요는 오히려 역효과만 나기 마련이고, 그래서 부모들은 점점 더 강압적인 독서를 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는 것 아닐까. 



아이 없이, 이야기 속 세계는 존재할 수 없었다. 또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없다면, 아이는 두터운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아이는 세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야만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책읽기의 역설적인 매력을 터득하게 되었다.


 

 

 

자녀가 아직 어린 아이였던 시절,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해지는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등 뭐든지 상관없다.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 아이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되고 부모는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된다. 그뒤로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지만 부모는 긴 시간을 이어져 오는 책읽기에 점점 지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글을 깨치는 순간 책 읽어주기를 멈추고 스스로 책을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맨 먼저 배우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라, 책 읽는 시늉일 뿐이다. 그러한 아이의 자기 과시는 학습에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우선은 어른들을 기쁘게 함으로써 스스로 안도감을 찾으려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점점 책읽기가 끔찍해지는 것은 읽기가 권유가 아닌 명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책 읽기의 세상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재밌게 읽어주던 부모의 목소리에서 딱딱하고 추상적인 글자로의 전환을 아이들은 받아들지 못하고 점점 더 책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소설가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인 다니엘 페나크가 말하는 독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이야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하겠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의 공부를 위한 독서를 강요하고 명령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무엇보다 독서는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책 그 자체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와 함께 부모와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교사로서 각자 다른 개성과 취향의 책 읽기에 관심이 전혀 없던 아이들에게 어린시절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책을 읽어주고 책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었을 때 아이들은 변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기에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독서의 매력에 푹 빠진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은 작가와 나 사이에 형성되는 그 역설적인 친밀감을 발견하는 데 있다. 홀로 쓴 그의 글이 혼자서 소리 없이 읽어 내리는 나의 목소리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시절부터 이렇게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책을 꾸준히 읽긴 했지만 부모님이 억지로 사둔 세계문학전집이나 학교에서 권장하는 필독도서들을 읽는 것은 나의 자발적인 독서가 아니었기에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래서 어느샌가 독서에 손을 놓고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한권 두권 읽다보니 다시 나만의 독서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다를게 있을까. 분명 아이들 스스로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책을 찾아서 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독서를 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니까, 논술 실력을 높여야 하니까 누군가 정해준 책을 억지로 읽어내는 독서에서 그 누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다니엘 페나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라고 말한다. 얼마만큼?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언제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려고 할 때까지. 그리고 독자로서의 권리를 누리라고 말한다. 건너뛰며 읽고,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데서나 읽고,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까지 십계명을 들며 아이들에게도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를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고 문체를 파악하며 내용을 요약하는 학습적인 활동이 아닌 그저 책을 자유롭게 읽고 또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소설을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는 분명 중요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반문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책을 통해 자꾸만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다보면 그 유용함이 빛을 잃고 만다. 나부터도 아이들에게 책을 꾸준히 읽어주고 있지만 사실 힘든 순간도 많다. 매일 똑같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지겹기도 하고 가끔은 책 읽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역시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또 읽게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며 부모로서의 초심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배우고 아이에게 지식을 전해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나처럼 독서의 즐거움과 재미를 알아갈 수 있는 책 읽기를 해주어야 겠다는 나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모로서 수없이 마음을 비우고 다잡는 귀중한 경험. 그와 더불어 나역시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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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 육아에 무너진 여자를 일으킨 독서의 조각들
김슬기 지음 / 웨일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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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기 전엔 엄마의 삶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집안일을 다 해내고, 아이 셋을 키워냈고 또 일을 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엄마의 역할을 해낼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젠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 힘들었던 여러 고비를 넘기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처음 첫째를 낳고 겪었던 혼란을 지금도 잊을 순 없다. 그땐 나도 다 버리고 어디론가 혼자 도망가고 싶다는 자포자기의 마음을 수백, 수천번 가졌었지만 그저 도망치고 깊었을 뿐 날 다독여주고 위로해 줄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저 견뎌낼 뿐이었다. 그렇게 쌓여가던 감정은 한번씩 날 거세게 덮쳐왔고 그럴때면 점점 더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이 편한 나였지만 자발적인 고독과는 달리 비자발적으로 강요된 고독은 참기 힘들었다. 아이에게 묶여 자유롭지 못했기에, 점점 더 쓸쓸하고 외로워졌다. 그래서 집에서, 나혼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어야 했다. 그 결과로 내가 찾아낸 것은 독서였다.


그럴 때, 그런 순간 나를 일으켜 다시 채워준 건 언제나 책이었고, 그 이야기 안에서 나는 나의 감정과 기질을 마주하고 나의 상처를 발견했으며 나의 꿈을 되찾았다.




2011년 11월에 아이를 낳은 저자는 대부분의 초보 엄마들이 그렇듯 멘붕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상의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나마도 미리 알았다면 마음의 준비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더라도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육아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그랬고 많은 엄마들이 그랬듯 저자 역시 산후우울증의 늪에서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아이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내 삶이 사라지고 엄마라는 이름 안에 갇혀 지내는 나날은 행복하지 않다. ‘죽지 못해 사는 지옥’ 의 날들을 보내던 저자는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비친 구원의 빛은 바로 책이었다.


지푸라기처럼 잡은 책은 서서히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다. 한권 한권의 책을 만나며 혼자 보내던 시간을 좋아하던 그녀이지만 책을 매개체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모임을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며 점점 더 바깥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집 앞 카페에서 10시부터 3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 오롯이 자신의 일을 할 시간을 만든다. 그 결과 책을 쓰게 되었고 진짜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서 흔들리는 순간을 잡아주는 것도, 가족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도, 엄마가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도 모두 책을 통해 깨닫고 실천해 나가게 된 것이다. 책이 가진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나아가 한단계 더 발전시키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책에 대한 애정과 새롭게 찾은 자신만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행복한 여성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성공한 엄마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으로 온전한 엄마가 되고 싶다. 조금의 감시도, 참견도, 싸움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와 나를 분리할 수 있는 엄마로 살고 싶다.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며 존중하고 싶다. 자식을 가슴에 붙이고 다니지 않는 엄마, 자신의 부족함을 아이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채우는 엄마.




내가 그토록 찾던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 같다. 저자만큼 많이 읽지도 못했고, 잘 쓰지도 못하는 아직 갈길이 먼 나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경험했고 그것을 나역시 찾게 된 책이라는 것을 통해 이겨내고 나아가 더 발전시켜나가는 저자를 보며 점점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나도 모르게 그려졌던 것 같다. 매번 저자의 블로그를 볼 때마다 꾸준히 노력하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모습이 같은 여성이고 엄마로서 참 멋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젠 나도 그런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책에 소개된 많은 책들도 꼭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한번쯤은 겪었을 산후우울증을 잘 이겨내기 위해선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재밌고 즐거운 일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젠 어느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혼자 힘들게 견뎌내야 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때 이 책을 만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순간 엄마로서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많은 엄마들에겐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비록 책이 아니더라도 그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영위하며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무언가, 나만의 무언가를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지금 잡은 무언가가 진짜 나의 길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걸어본다. 지금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데려다줄 그 어딘가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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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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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신문이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시절엔 그저 기사의 내용을 믿을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젠 수많은 매체를 통해 어디서든 간단하게 전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기에 스스로 정보를 선택하고 선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한번에 알아보긴 힘들다. 그래서 매순간 우린 가짜뉴스에 속게 되고 그로인해 언론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저널리즘은 위기를 맞고 있다. 100% 믿을 수 있는 언론이 현재 과연 존재할까? 수많은 음모론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지금,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래서 힘들기만 하다.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과연 무엇인지,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의심을 하다보면 어느샌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게 된다. 영화 <더 포스트>나 <스포트라이트>에서처럼 진실을 덮기에 급급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진짜 언론의 모습을 바라는 건 이제 무리인 걸까. 가짜도 진짜로 만들 수 있고, 진짜도 가짜로 만들 수 있는 무서운 세상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기만 하다. 



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1992년 이태리,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에 대필작가로 고용된 콜론나는 절대 창간되지 않을 신문을 내는 1년여의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참여하게 된다. 콤멘다토레라는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가진 세력가가 엘리트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새 신문을 창간하기로 했고, 콜론나는 신문이 창간되지 않고 일자리를 잃게될 경우 모든것을 폭로하기 위한 주필의 책을 쓸 대필작가로 고용된 것이다. 하지만 ‘도마니’에 고용된 다른 여섯 기자들은 신문이 절대 창간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모른채 진실은 뒤로하고 특종과 눈길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만을 쓰기 위해 회의하고 논의한다. 그러던 어느날 기자 중 한명인 브라가도초가 살해된다. 그는 무솔리니가 사람들에게 알려진대로 처형당한 것이 아닌 대역을 세워둔 채 어딘가에 숨어 지냈고 그 뒤에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들에 대해 파헤치던 것을 알았던 콜론나 역시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그들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나를 없애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그 사건에 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에 알릴 수도 없다. 그 사건에 관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알고 있다는 뜻이 될 테니까 말이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사상가,기호학자,철학자로 영향력이 컸던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인 <제0호> 속 신문 ‘도마니’의 기자들은 진실보다는 특종과 자극적인 기사들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모든 것은 콤멘다토레를 위해서 쓰이고 그 목적을 위해 엉터리 기획과 말도 안돼는 기사들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진실로 탈바꿈하게 된다. 기자들은 끊임없이 특종을 강요받고, 가려지고 덮어진 거짓을 마주하게 되는 대중은 그로인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그 속에서 무솔리니에 대한 진실을 좇던 브라가도초는 무참히 살해당하고, 그 진실을 전해 들었던 콜론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단지 브라가도초 한 사람이 파고들던 가설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은 채 알려지기도 전에 다시 묻히고 만다. 그래서 언론의 힘이, 아니 그 뒤에서 진실을 숨기고 좌지우지하는 무시무시한 세력들의 거대한 영향력이 크게 와닿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들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가짜이거나 왜곡이었다는 거야. 우리는 25년 동안 계속 그들의 속임수 속에서 살았어. 내가 그랬잖아. 남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사실 움베르토 에코가 얼마나 유명한지도 알고, 전작들이 좋은 작품임을 알지만 그의 책을 펼쳐들기엔 너무나 큰 결심이 필요했다. 나역시 <장미의 이름>을 읽기위해 몇변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기에 <제0호> 역시 걱정이 앞섰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소설이라니 이것만이라도 꼭 읽어내자는 나름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제0호>는 그간의 책들보다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근래에 접했던 저널리즘에 대한 영화와 권력과 언론의 유착으로 국민들을 우롱한 사태를 직접 경험했던 우리로선 특히나 더욱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주제였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언론이 언제나 진실만을 이야기 할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하진 않지만 일말의 저널리즘이 살아 숨쉬고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많은 기사들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이젠 진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마저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권력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언론의 모습이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아등바등 덮기에 급급한 모습은 일말의 기대마저 놓아버리게 만든다. 특히나 ‘도마니’의 기자들을 보면 가장 부패한 언론인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이 책상 앞에 앉아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지는지를 세세하게 볼 수 있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가짜를 진실로 쉽게 믿어버리는 피해를 나역시 언제든지 겪을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 과연 존재 하기는 하는건지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가 지금의 저널리즘에게 울리는 경종은 분명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료를 혼합해서 저마다 칵테일을 만들었어. 그래서 우리 앞에 두 잔의 완벽한 칵테일이 있어.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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