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 육아에 무너진 여자를 일으킨 독서의 조각들
김슬기 지음 / 웨일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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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기 전엔 엄마의 삶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집안일을 다 해내고, 아이 셋을 키워냈고 또 일을 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엄마의 역할을 해낼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젠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 힘들었던 여러 고비를 넘기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처음 첫째를 낳고 겪었던 혼란을 지금도 잊을 순 없다. 그땐 나도 다 버리고 어디론가 혼자 도망가고 싶다는 자포자기의 마음을 수백, 수천번 가졌었지만 그저 도망치고 깊었을 뿐 날 다독여주고 위로해 줄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저 견뎌낼 뿐이었다. 그렇게 쌓여가던 감정은 한번씩 날 거세게 덮쳐왔고 그럴때면 점점 더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이 편한 나였지만 자발적인 고독과는 달리 비자발적으로 강요된 고독은 참기 힘들었다. 아이에게 묶여 자유롭지 못했기에, 점점 더 쓸쓸하고 외로워졌다. 그래서 집에서, 나혼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어야 했다. 그 결과로 내가 찾아낸 것은 독서였다.


그럴 때, 그런 순간 나를 일으켜 다시 채워준 건 언제나 책이었고, 그 이야기 안에서 나는 나의 감정과 기질을 마주하고 나의 상처를 발견했으며 나의 꿈을 되찾았다.




2011년 11월에 아이를 낳은 저자는 대부분의 초보 엄마들이 그렇듯 멘붕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상의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나마도 미리 알았다면 마음의 준비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더라도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육아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그랬고 많은 엄마들이 그랬듯 저자 역시 산후우울증의 늪에서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아이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내 삶이 사라지고 엄마라는 이름 안에 갇혀 지내는 나날은 행복하지 않다. ‘죽지 못해 사는 지옥’ 의 날들을 보내던 저자는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비친 구원의 빛은 바로 책이었다.


지푸라기처럼 잡은 책은 서서히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다. 한권 한권의 책을 만나며 혼자 보내던 시간을 좋아하던 그녀이지만 책을 매개체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모임을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며 점점 더 바깥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집 앞 카페에서 10시부터 3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 오롯이 자신의 일을 할 시간을 만든다. 그 결과 책을 쓰게 되었고 진짜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서 흔들리는 순간을 잡아주는 것도, 가족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도, 엄마가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도 모두 책을 통해 깨닫고 실천해 나가게 된 것이다. 책이 가진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나아가 한단계 더 발전시키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책에 대한 애정과 새롭게 찾은 자신만의 기쁨을 맘껏 누리는 행복한 여성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성공한 엄마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으로 온전한 엄마가 되고 싶다. 조금의 감시도, 참견도, 싸움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와 나를 분리할 수 있는 엄마로 살고 싶다.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며 존중하고 싶다. 자식을 가슴에 붙이고 다니지 않는 엄마, 자신의 부족함을 아이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채우는 엄마.




내가 그토록 찾던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 같다. 저자만큼 많이 읽지도 못했고, 잘 쓰지도 못하는 아직 갈길이 먼 나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경험했고 그것을 나역시 찾게 된 책이라는 것을 통해 이겨내고 나아가 더 발전시켜나가는 저자를 보며 점점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나도 모르게 그려졌던 것 같다. 매번 저자의 블로그를 볼 때마다 꾸준히 노력하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모습이 같은 여성이고 엄마로서 참 멋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젠 나도 그런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책에 소개된 많은 책들도 꼭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한번쯤은 겪었을 산후우울증을 잘 이겨내기 위해선 어떤 것이든 자신에게 재밌고 즐거운 일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젠 어느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혼자 힘들게 견뎌내야 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때 이 책을 만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순간 엄마로서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많은 엄마들에겐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비록 책이 아니더라도 그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영위하며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무언가, 나만의 무언가를 놓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지금 잡은 무언가가 진짜 나의 길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걸어본다. 지금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데려다줄 그 어딘가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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