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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ㅣ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평점 :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 자부하는 나이지만 아이들의 독서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긴 어렵다. 본인 스스로가 재밌고 읽고 싶어서 읽는 책과 강요하고 명령하여 억지로 읽는 책은 천지차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현란한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이 책보다 더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스스로 책을 집어들어 그 매력에 푹 빠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부모로서 미디어와의 접촉은 적당히 끊어주고 책과의 만남을 독려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느끼는 책의 매력, 독서의 재미를 우리 아이들도 꼭 경험하고 또 평생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 하지만 아이들이 바로 내 마음을 알고 따라와 주진 않는다. 자꾸만 책을 밀어내는 아이들을 보다보면 조급해지고 계속 성급하게 책을 들이밀게 되지만 그런 강요는 오히려 역효과만 나기 마련이고, 그래서 부모들은 점점 더 강압적인 독서를 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는 것 아닐까.
아이 없이, 이야기 속 세계는 존재할 수 없었다. 또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없다면, 아이는 두터운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아이는 세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야만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책읽기의 역설적인 매력을 터득하게 되었다.
자녀가 아직 어린 아이였던 시절,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해지는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등 뭐든지 상관없다.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 아이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되고 부모는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된다. 그뒤로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지만 부모는 긴 시간을 이어져 오는 책읽기에 점점 지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글을 깨치는 순간 책 읽어주기를 멈추고 스스로 책을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맨 먼저 배우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라, 책 읽는 시늉일 뿐이다. 그러한 아이의 자기 과시는 학습에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우선은 어른들을 기쁘게 함으로써 스스로 안도감을 찾으려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점점 책읽기가 끔찍해지는 것은 읽기가 권유가 아닌 명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책 읽기의 세상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재밌게 읽어주던 부모의 목소리에서 딱딱하고 추상적인 글자로의 전환을 아이들은 받아들지 못하고 점점 더 책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소설가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인 다니엘 페나크가 말하는 독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이야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하겠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의 공부를 위한 독서를 강요하고 명령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무엇보다 독서는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책 그 자체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와 함께 부모와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교사로서 각자 다른 개성과 취향의 책 읽기에 관심이 전혀 없던 아이들에게 어린시절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책을 읽어주고 책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었을 때 아이들은 변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기에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독서의 매력에 푹 빠진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은 작가와 나 사이에 형성되는 그 역설적인 친밀감을 발견하는 데 있다. 홀로 쓴 그의 글이 혼자서 소리 없이 읽어 내리는 나의 목소리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시절부터 이렇게 책 읽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책을 꾸준히 읽긴 했지만 부모님이 억지로 사둔 세계문학전집이나 학교에서 권장하는 필독도서들을 읽는 것은 나의 자발적인 독서가 아니었기에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래서 어느샌가 독서에 손을 놓고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한권 두권 읽다보니 다시 나만의 독서에 푹 빠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다를게 있을까. 분명 아이들 스스로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책을 찾아서 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독서를 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니까, 논술 실력을 높여야 하니까 누군가 정해준 책을 억지로 읽어내는 독서에서 그 누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다니엘 페나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라고 말한다. 얼마만큼?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언제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으려고 할 때까지. 그리고 독자로서의 권리를 누리라고 말한다. 건너뛰며 읽고,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데서나 읽고,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까지 십계명을 들며 아이들에게도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를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고 문체를 파악하며 내용을 요약하는 학습적인 활동이 아닌 그저 책을 자유롭게 읽고 또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소설을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는 분명 중요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반문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책을 통해 자꾸만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다보면 그 유용함이 빛을 잃고 만다. 나부터도 아이들에게 책을 꾸준히 읽어주고 있지만 사실 힘든 순간도 많다. 매일 똑같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지겹기도 하고 가끔은 책 읽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역시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또 읽게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며 부모로서의 초심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배우고 아이에게 지식을 전해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나처럼 독서의 즐거움과 재미를 알아갈 수 있는 책 읽기를 해주어야 겠다는 나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모로서 수없이 마음을 비우고 다잡는 귀중한 경험. 그와 더불어 나역시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