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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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지옥철, 피튀기는 상사와의 눈치싸움에 어느덧 당연한 일이 되버린 야근, 통장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월급... 그렇게나 힘들고 처절했던 사회생활을 거쳤고 정말 지긋지긋하다며 마음속에 끝도없이 썼던 사직서를 실제로 내며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 둔 순간, 홀가분하게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을 기대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 오는건 그래도 매일 아침 기계적으로라도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안도감이 사라졌기 때문인걸까. 힘든 회사생활을 토로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동조해 주기 보단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는 주부이기에,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일하는 당신이 부럽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어릴적 내가 상상하던 어른의 하루, 커리어 우먼의 모습은 화려하고 멋지기만 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지만, 사실 아이를 기르며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몇배는 더 힘든 일이고 규모가 큰 회사가 아니라면 그만둬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기에 어쩔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사회적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해도 여성들의 회사 생활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며 설레이고 벅찬 감동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대화할 상대가 없는 걸까, 
아니면 원래 아무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성격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여유가 없는 걸까. 



서른둘, 나카코와 시게노부는 평범하디 평범한 회사원이다. 진상 클라이언트에게 끊임없이 시달리고 회사내 여직원들과의 관계에 스트레스 받는 나카코와 본인이 진행하는 공사현장에 대해 항의하는 전화에 시달리며 본인의 생활은 이삿짐을 그대로 쌓아두고 발기부전이 아닐까 의심하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시게노부. 둘은 업무로 우연히 만나게 된 자리에서 성이 같고 생일이 같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흐지부지하게 헤어졌지만 어느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떳떳하지 못한 것은 없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자백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고작 이렇게 서 있는가. 





지금 회사에 다니는 수많은 회사원들이라면 공감가는 직장인 소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자신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품인 것 같다는 생각, 회사 동료들과의 미묘한 신경전, 을의 상황에서 갑의 횡포에 속수무책인 상황..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일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하루하루의 일상이기에 참고 또 참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는 일상. 그 속에서 지쳐가고 메말라가는 멘탈은 점점 더 바스러지기 쉬울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일상의 설레이는 순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쉬는 날에는 그저 잠자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팍팍한 삶이 되기에 나카코는 글을 쓰며 또 깨끗하게 세탁된 자신의 베개커버를 보며 그래도 자유롭다 느끼고, 시게노부처럼 맛있는 스파카쓰를 먹으며 위안을 삼는 그래서 다시 또 출근하는 힘을 얻게 되는 안쓰럽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어서 위로가 되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오늘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다카시에게 했던 것처럼 공감과 위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근차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계라고 생각하고 주저앉았지만, 
음악을 듣는 정도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값싼 육체라는 것도. 



사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과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받다보면 내 인생이 서글퍼지기도 하고 이런 힘든 일을 하려고 그렇게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나 싶어 자괴감에 괴로워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취업난이라는 냉정한 현실에서 회사에 들어온 것만 해도 어디냐며 애써 위로하고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씩 사며 보상을 해주기도 하며 스스로를 북돋워 주었던 것 같다. 여기 나카코와 시게노부 역시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지만 회사원으로서의 고충은 별반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도 별일 없이 무사히 퇴근하길 바랄뿐... 큰 감동이나 큰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큰 공감은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 것 같은 우울한 나의 상황이 비단 나뿐이지만은 않다는 안도감과 함께 더 큰 위로가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자신의 베개커버를 보고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자신은 자유롭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예컨대 그것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새해 연휴에 만날 친구가 있다는 것이 기쁘다거나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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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생활의 즐거움 - 미니멀라이프와 맥시멀라이프의 만남
박윤아 / 소울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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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미니멀라이프의 붐이 일었던 시기가 있었다. 나역시 채우기 바쁜 맥시멀라이프였기에 비우는 삶이란 엄두가 나지도 않았고 사실 귀차니즘이 좀 있는지라 그냥 있는데로 살자는 생각이 더 컸던것 같다. 하지만 채우면 채울수록 좁아지는 생활공간에 자꾸만 더 큰 집으로 이사가기를 원하게 되고 아이들이 둘이되니 어마무시하게 늘어가는 물건들에 더이상 감당이 되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기에, 서서히 버리고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물건을 버리자는 결심을 하고 어떤것을 버려야 할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서 사실 그저 쌓아두기만 할뿐, 진짜 내가 쓰는 물건은 몇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옷이 있어도 결국 내게 잘 맞고 어울리는 옷만 계속 입게 되듯 입지 않는 옷은 결국 계속 옷걸이에 걸린채 진열되어 있을뿐이고 그것은 신발, 주방용품, 책등 모든것이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을 결단있게 한번에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쓸 것 같고 필요할 것 같고 결국 또 사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선뜻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길 수십번..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게 되었지만 그런 과정의 수많은 반복에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미니멀라이프, 맥시멀라이프가 아닌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한의 미니멀라이프는 인생 마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맥시멀라이프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을 느끼게 하기에 적당한 지점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내가 지향하고 싶었던 방향과 어느정도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펼친 책 안에는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무조건 비워두는 것이 아닌 적절한 공백과 군더더기 없는 채움의 모습이 딱 알맞고 보기 좋은 집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빼기 내지 없애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미니멀라이프 속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 잠시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서 시도한 것이기이 편하지도 않았고, 내내 아쉬움과 허전함이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 보이는 목펴로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서 그 순간 내 나름의 사는 방법에 대한 정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미니멀라이프와 맥시멀라이프의 만남이라고. 



집을 꾸미는 것에서부터 음식, 옷, 식물키우기와 같은 전체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코칭과 대부분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드는 생활소품 만드는 법까지 따라해 보고 싶은 팁들이 가득했다. 특히 우리 부부도 화분 키우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다육이에 큰 애정이 있는데 사실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 역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작은 초록식물이 주는 행복을 알기에 저자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이 되기도 했다.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인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강아지나 고양이만 사랑스러운 생명으로 여겼지 움직임이 없는 식물애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일까? 순리대로 배치된 자연을 더는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식물을 집 안으로 들일 때도 내가 책임감 있게 정성으로 키울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사랑과 정성 없이는 생명을 잘 돌볼 수 없으므로. 
 



사실 어느정도 정리만 잘 해도 굳이 있는 것을 버리지 않아도 될텐데 한번 쌓인 짐들은 이상하게 눈이나 손이 가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또 이런 책을 보면 나도 똑같이 사서 꾸미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새로운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중요시 하는건 자연을 손상시키며 가져오지 말것, 그리고 항상 주변에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놓여있는 위치를 바꿔보거나 외형을 약간만 달리 손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기에 비싸고 좋은 물건을 새로 사서 집을 꾸미는 것이 아닌 항상 곁에 있었던 익숙한 것들을 이용해 새롭게 표현해 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집의 인테리어를 다시 한번 바꿔보려던 계획을 세우던 나에게 많은 도움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또 이것저것 사려고 했던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지금 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기분을 내보는 방향으로 급 전환하며 나만의 개성을 집에 표현해 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공간, 같은 식물일지라도 어느 자리에서 무엇과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느낌을 보여주기에 나는 늘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며 공간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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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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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직 소중한 사람을 먼곳으로 떠나보낸 경험은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 역시 멋모르던 시절에 돌아가셔서 그 슬픔이나 아픔을 체감할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기에 상실의 아픔이란 어떤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죽고 또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삶을 살아간다. 나역시 언젠가는 큰 상실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면, 난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난 그렇게 강하지도 그렇다고 억센 사람도 아니기에 그저 무너져 내릴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삶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고 인생을 영위해 나가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고자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그것에 대한 깊은 고찰과 생각을 가지고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진 소설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하는 동일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태양은 위로를 가져다주지 않고, 잠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더 이상 음식은 나에게 만족을 주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숨을 쉬는 것은,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낙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총 3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진다.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인물, 다른 배경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은 3명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아내와 사별한 슬픔을 겪었다는 것이다. 1904년 리스본에서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를 1주일 사이에 모두 떠나 보낸 토마스는 그에 대한 반항과 복수심으로 거꾸로 걷게 된다. 고미술 박물관에서 일하던 그는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가 만든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지만 그 길에서 아이를 차에 치여 죽이게 하고 차를 불태우기도 한다. 결국 찾은 십자고상은 예수의 모습이 아닌 침팬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토마스는 신부에게서 고통으로 인해 완전해진 인간을 보게 되었다. 그가 닮고 싶은 사람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지만,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뭔가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지금 토마스가 하고 있는 일이다. 



1939년 브라간사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는 아내를 잃고, 그뒤 자신의 사무실에서 죽은 아내와 만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에 관한 유사성과 선과 악, 종교와 믿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때 또다른 노부인이 찾아와 남편 시신의 부검을 요청하고 남편의 시신 안에는 새끼곰과 침팬지가 들어 있다. 그 노부인은 남편의 시신 안에 자신을 넣고 꿰매어 달라고 청한다. 



우린 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죠? 우린 죄를 숨기고 죄를 잊고, 죄를 왜곡하고 죄를 포장하고, 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어 해요. 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우리는 복음서에서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 기억하여고 안간힘을 쓰죠.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해 미스터리에서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쓰듯이. 



1980년대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역시 아내와 사별한 후 우연히 가게 된 영장류 연구소에서 침팬지 오도와의 교감으로 오도를 사게 되고 그는 캐나다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이 태어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오도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 가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오도와 함께 산책을 하다 높은 바위에 올라 전설의 동물인 이베리아 코뿔소를 마주치며 바위 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고 오도는 코뿔소와 함께 사라진다. 



두려움. 피터는 불쑥 파고드는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밀려드는 공포감에 시달려본 적이 없디만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두려움이 안에서 녹아내리면서 온몸의 모공을 열어, 호흡이 가쁘고 빨라진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잃었다는 점이다. 그런 큰 상실의 고통을 겪은 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도대체 무엇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게 된 것일까? 사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 불리지만 그 산은 그렇게 높지도, 울창하지도 않다. 힘들게 오르는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고행속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닌, 자신 마음속의 믿음을 가지고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그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일지라도 그속에서 구원을 받고 깨닫게 되는 신념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의 실체를 찾는다는 것은 신기루를 찾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이 존재 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하나의 단편처럼 각기 나뉘어져 있는 이야기이기에 처음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게 현실의 이야기인지 판타지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많았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 대화하기도 하도 사람과 동물인 침팬지가 단 한번의 악수로 교감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며 서서히 맞춰지고 이어지는 퍼즐같은 소설이기에 점점 더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 아무런 관련과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이야기들이 각각의 공통된 요소들과 연결되며 점점 이해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 독특한 구성과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읽기 쉽거나 무작정 재미있는 책이라곤 할 수 없지만 우리 인간이 가지는 삶과 죽음, 그로 인해 생기는 상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고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느정도는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풍경을 여느 때와 똑같지만, 익숙하다고 감동이 사라지진 않는다. 지평선까지 금빛 도는 노란 풀로 뒤덮인 거대한 사바나가 펼쳐지고, 드문드문 검은 바위들이 있다. 늦은 오후가 만개한 하늘을 제외하면 단출하고 아름다운 전망이다. 그들 위쪽으로 공기의 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 안에서 해와 흰 구름이 서로 장난을 한다. 풍성한 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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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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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좋아한다면 대부분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감히 해본다. 내가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그런것은 제쳐두고 나를 감동하게 해준 이 소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인생을 바꿔 줄 만한 멋진 작품을 탄생시키고 싶다는 욕망, 나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설은 어렵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항상 그렇다. 그렇기에 작가 중에서도 소설가는 특히나 더 큰 경외심이 들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소설이 탄생되기 까지 작가의 창작의 고통부터 출판사의 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겹겹이 쌓여 우리에게로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출판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글이 시대의 대작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투고하지만 한번 두번 거절 당하다 보면 점점 자신감은 바닥을 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돌고 돌더라도 어느 출판사에 안착하기만 해도 다행이지만 어디 집 한구석에 먼지 쌓인채 그대로 묵혀져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채 소멸되는 소설 또한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분명 그 중에 보석은 존재하기 마련이기에 그런 선택 받지 못한 소설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면 독자로서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인정을 받는다는 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해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가들은 더욱 그렇다. 작가는 엉성한 감정의 왕국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며, 대개의 경우, 스스로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편집자 델핀과 그의 연인이자 데뷔작이 큰 실패를 한 소설 작가인 프레드는 델핀의 고향집에 들렀을때 선택받지 못한 소설들을 받아 보관하는 도서관에 가게 되고 거기서 우연히 앙리 픽이라는 피자를 만들던 할아버지가 쓴 소설을 발견하고 성공을 예감하며 책을 출간하게 된다. 역시나 그 책은 발매를 하자마자 엄청난 판매를 기록하게 되고 무엇보다 그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큰 화제가 된다. 작가인 앙리 픽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그가 생전 책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삶을 살았기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런 흥미로운 스토리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소설의 성공으로 연관된 사람들의 삶이 바뀌며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고 또한 소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구심을 가진 한물간 루슈라는 기자는 앙리 픽이 그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직감으로 그 증거를 찾으려 고군분투 하며 제기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약간의 실마리도 남겨 두지 않은채 딱 한편의 소설을 남기고, 그것도 출간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그저 선택 받지 못한 소설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에서 잊혀져 가던 소설이 어떻게 쓰였는지 정말 앙리 픽이 쓴 것은 맞는지 진실을 밝혀줄 당사자는 이미 없기에 수많은 추측과 이야기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책의 내용이야 어떻든 책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책에 얽힌 미스터리한 비화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마케팅한 책속 출판사의 모습은 책의 내용보단 디자인이나 화제성만을 중요시하는 요즘 출판사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표지나 강렬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내용은 형편 없었던 경험을 여러번 해본  경험이 있기에 과열된 마케팅 양상이 그리 반가운 현상은 아니다. 또한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에 맡겨진 수많은 소설들이 그렇게 거절 당하고 결국 빛을 보지 못하며 작가들이 하나의 소설을 쓰기 까지의 고통과 그것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 또한 프레드를 통해 실패한 소설이 가져다 주는 상실감 역시 느낄 수 있기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수성이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을 더 크게 느껴지게 했던 것 같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들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단어들은 항상 목적지가 있으며 다른 이의 시선을 열망한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여행 짐을 꾸렸지만 떠나지 않은 것과 같다.

 

 

이 소설은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나의 소설이 출간되는 과정과 수많은 작가와 책들이 등장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앙리 픽의 소설과 연관된 사람들의 인생이 책이 출간됨과 동시에 바뀌어 가며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들 역시 흥미진진하다. 사실 끝으로 갈수록 뭔가 흐지부지한 결말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반전적인 결말은 그간의 미스터리한 일들의 의문점을 해소해 주었다. 분명 미스터리물이지만 무겁거나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간의 사랑과 가족간의 행복과 같은 따뜻한 이야기와 키득거리며 웃게 만드는 저자의 유머가 적절히 녹아 있기에 그 끝은 가슴 훈훈한 따뜻한 메세지를 전달해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책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지 않을 만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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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재취업 처방전 - 내 안의 천재와 접속하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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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라는 말을 접할때 마다, 들을때 마다, 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쓸 수 밖에 없을때 마다 왠지 모를 마음의 불편함과 씁쓸함이 올라오는 건 경력이 단절 되었다는 그 이면에 세상과도 단절 되어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 또한 들기 때문일까. 분명 가정주부로 집안일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회사에서 일할때보다 몇배는 더 힘들지만 사실 그것을 우리 사회는 100% 인정해주진 않기에 충분히 힘들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상대적인 박탈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엔 사회적으로도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해도 아직 경단녀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그간의 경력 단절로 자신감이 급격히 저하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같은 아줌마를 누가 써주겠어하며 시작도 전에 이미 체념하며 작아질대로 작아진 자신감은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을 살린 취업이 아닌 그저 아이들 학원비나 벌고 용돈 정도만 벌 수 있는 간단한 파트타임 일자리에 대부분 일하게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컸다 치더라도 이제 4~50대일텐데 본인 스스로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선뜻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은 언감생심이라는 선을 그은채 나가고자 한다면 그저 그런 일자리밖에 얻을 수 없기에 우리 주부들에게도 자신감을 높이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주부 재취업이 당연한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곧 평균수명 120세 시대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주부들이 이런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개발해서 사회에 나가 당당히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에는 쉰 살도 예순 살도 청춘일 뿐이며 곧 최상의 여건이 마련될 것이니 지금부터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실 재취업에 대한 방법이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주부로 엄마로 지내다 다시 재취업에 성공하였고 특히 경기도의 여성재취업 관련 블로그의 기자로 활동하였기에 자신을 포함한 여러 경단녀들을 만나며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닦아 놓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고자 하는 주부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읽으며 이해되지 않고 적지 않게 당황스런 내용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끝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작지만 뜨거운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당신, 이제껏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오랫동안 ‘부차적 인간’으로, 직장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지원부서’로서 살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영원히 ‘주변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주부들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부라는 타이틀로 지낸 시간들 역시 새로운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이 경력이 단절된 기간이 아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성취한 것이기에 새경녀(새로운 경력을 추가한 여성)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다. 나역시 경단녀라는 단어에 위화감이 있었기에 훨씬 듣기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재능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20대라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기에 본인의 재능이나 흥미를 잘 찾지 못한채 취업난에 그저 아무 회사에 취업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주부들은 회사생활과 집안일, 육아라는 많은 부분을 거치며 생겨난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남편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뒷받침 되는 경우가 많기에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을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취업을 하기전 충분히 자신의 재능과 흥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대화하며 죽을때까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틀에 박힌 관념으로 기존의 ‘괜찮은 일자리’만 바라보며 침을 흘리기보다 내가 나가서 그 일을 ‘괜찮은 일’로 만드는 역할을 주부가 해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고 집안을 꾸려 온 배짱을 활용하면 된다. 지금과는 다른곳을 바라보고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돌려 우리가 ‘각광받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 



나도 첫째가 많이 컸고 둘째는 아직은 어려 당장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다시 일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 나역시 4년이라는 공백기가 생겼고 다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막막하기도 하다.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감을 키워야 겠다는 것보단 그저 어떤 곳에 어떻게 취업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한 고민만을 했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런것을 해소해 주길 바라며 읽기 시작했고 초반엔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저 돈이나 시간에 얽매여 무엇이든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생각보단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해 봐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기에 결론적으론 읽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주부라는, 경단녀라는 틀에 묶여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우리를 응원해주고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누군가로부터 큰 용기를 받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이가 들었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긴 안목으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하자. 가 보지 못했던 그 길을 가자. 우리는 설익은 젊은 시절과는 비겨되지 않을 든든한 ‘배경’과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자기실현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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