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소중한 사람을 먼곳으로 떠나보낸 경험은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 역시 멋모르던 시절에 돌아가셔서 그 슬픔이나 아픔을 체감할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기에 상실의 아픔이란 어떤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죽고 또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삶을 살아간다. 나역시 언젠가는 큰 상실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면, 난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난 그렇게 강하지도 그렇다고 억센 사람도 아니기에 그저 무너져 내릴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삶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고 인생을 영위해 나가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고자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그것에 대한 깊은 고찰과 생각을 가지고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진 소설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하는 동일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태양은 위로를 가져다주지 않고, 잠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더 이상 음식은 나에게 만족을 주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숨을 쉬는 것은,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낙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총 3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진다.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인물, 다른 배경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은 3명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아내와 사별한 슬픔을 겪었다는 것이다. 1904년 리스본에서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를 1주일 사이에 모두 떠나 보낸 토마스는 그에 대한 반항과 복수심으로 거꾸로 걷게 된다. 고미술 박물관에서 일하던 그는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가 만든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지만 그 길에서 아이를 차에 치여 죽이게 하고 차를 불태우기도 한다. 결국 찾은 십자고상은 예수의 모습이 아닌 침팬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토마스는 신부에게서 고통으로 인해 완전해진 인간을 보게 되었다. 그가 닮고 싶은 사람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지만,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뭔가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지금 토마스가 하고 있는 일이다. 



1939년 브라간사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는 아내를 잃고, 그뒤 자신의 사무실에서 죽은 아내와 만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에 관한 유사성과 선과 악, 종교와 믿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때 또다른 노부인이 찾아와 남편 시신의 부검을 요청하고 남편의 시신 안에는 새끼곰과 침팬지가 들어 있다. 그 노부인은 남편의 시신 안에 자신을 넣고 꿰매어 달라고 청한다. 



우린 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죠? 우린 죄를 숨기고 죄를 잊고, 죄를 왜곡하고 죄를 포장하고, 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어 해요. 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우리는 복음서에서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 기억하여고 안간힘을 쓰죠.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해 미스터리에서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쓰듯이. 



1980년대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역시 아내와 사별한 후 우연히 가게 된 영장류 연구소에서 침팬지 오도와의 교감으로 오도를 사게 되고 그는 캐나다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이 태어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오도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 가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오도와 함께 산책을 하다 높은 바위에 올라 전설의 동물인 이베리아 코뿔소를 마주치며 바위 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고 오도는 코뿔소와 함께 사라진다. 



두려움. 피터는 불쑥 파고드는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밀려드는 공포감에 시달려본 적이 없디만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두려움이 안에서 녹아내리면서 온몸의 모공을 열어, 호흡이 가쁘고 빨라진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잃었다는 점이다. 그런 큰 상실의 고통을 겪은 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도대체 무엇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게 된 것일까? 사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 불리지만 그 산은 그렇게 높지도, 울창하지도 않다. 힘들게 오르는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고행속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닌, 자신 마음속의 믿음을 가지고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그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일지라도 그속에서 구원을 받고 깨닫게 되는 신념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의 실체를 찾는다는 것은 신기루를 찾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이 존재 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하나의 단편처럼 각기 나뉘어져 있는 이야기이기에 처음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게 현실의 이야기인지 판타지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많았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 대화하기도 하도 사람과 동물인 침팬지가 단 한번의 악수로 교감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며 서서히 맞춰지고 이어지는 퍼즐같은 소설이기에 점점 더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 아무런 관련과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이야기들이 각각의 공통된 요소들과 연결되며 점점 이해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 독특한 구성과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읽기 쉽거나 무작정 재미있는 책이라곤 할 수 없지만 우리 인간이 가지는 삶과 죽음, 그로 인해 생기는 상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고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느정도는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풍경을 여느 때와 똑같지만, 익숙하다고 감동이 사라지진 않는다. 지평선까지 금빛 도는 노란 풀로 뒤덮인 거대한 사바나가 펼쳐지고, 드문드문 검은 바위들이 있다. 늦은 오후가 만개한 하늘을 제외하면 단출하고 아름다운 전망이다. 그들 위쪽으로 공기의 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 안에서 해와 흰 구름이 서로 장난을 한다. 풍성한 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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