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쓰무라 기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지옥철, 피튀기는 상사와의 눈치싸움에 어느덧 당연한 일이 되버린 야근, 통장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월급... 그렇게나 힘들고 처절했던 사회생활을 거쳤고 정말 지긋지긋하다며 마음속에 끝도없이 썼던 사직서를 실제로 내며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 둔 순간, 홀가분하게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을 기대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 오는건 그래도 매일 아침 기계적으로라도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안도감이 사라졌기 때문인걸까. 힘든 회사생활을 토로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동조해 주기 보단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는 주부이기에,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일하는 당신이 부럽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어릴적 내가 상상하던 어른의 하루, 커리어 우먼의 모습은 화려하고 멋지기만 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지만, 사실 아이를 기르며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몇배는 더 힘든 일이고 규모가 큰 회사가 아니라면 그만둬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기도 하기에 어쩔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사회적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해도 여성들의 회사 생활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며 설레이고 벅찬 감동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대화할 상대가 없는 걸까, 
아니면 원래 아무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성격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여유가 없는 걸까. 



서른둘, 나카코와 시게노부는 평범하디 평범한 회사원이다. 진상 클라이언트에게 끊임없이 시달리고 회사내 여직원들과의 관계에 스트레스 받는 나카코와 본인이 진행하는 공사현장에 대해 항의하는 전화에 시달리며 본인의 생활은 이삿짐을 그대로 쌓아두고 발기부전이 아닐까 의심하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시게노부. 둘은 업무로 우연히 만나게 된 자리에서 성이 같고 생일이 같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흐지부지하게 헤어졌지만 어느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떳떳하지 못한 것은 없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자백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고작 이렇게 서 있는가. 





지금 회사에 다니는 수많은 회사원들이라면 공감가는 직장인 소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자신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품인 것 같다는 생각, 회사 동료들과의 미묘한 신경전, 을의 상황에서 갑의 횡포에 속수무책인 상황..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일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하루하루의 일상이기에 참고 또 참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는 일상. 그 속에서 지쳐가고 메말라가는 멘탈은 점점 더 바스러지기 쉬울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일상의 설레이는 순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쉬는 날에는 그저 잠자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팍팍한 삶이 되기에 나카코는 글을 쓰며 또 깨끗하게 세탁된 자신의 베개커버를 보며 그래도 자유롭다 느끼고, 시게노부처럼 맛있는 스파카쓰를 먹으며 위안을 삼는 그래서 다시 또 출근하는 힘을 얻게 되는 안쓰럽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어서 위로가 되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오늘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다카시에게 했던 것처럼 공감과 위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근차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계라고 생각하고 주저앉았지만, 
음악을 듣는 정도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값싼 육체라는 것도. 



사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과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받다보면 내 인생이 서글퍼지기도 하고 이런 힘든 일을 하려고 그렇게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나 싶어 자괴감에 괴로워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취업난이라는 냉정한 현실에서 회사에 들어온 것만 해도 어디냐며 애써 위로하고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씩 사며 보상을 해주기도 하며 스스로를 북돋워 주었던 것 같다. 여기 나카코와 시게노부 역시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지만 회사원으로서의 고충은 별반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도 별일 없이 무사히 퇴근하길 바랄뿐... 큰 감동이나 큰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큰 공감은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 것 같은 우울한 나의 상황이 비단 나뿐이지만은 않다는 안도감과 함께 더 큰 위로가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세탁된 자신의 베개커버를 보고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자신은 자유롭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예컨대 그것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새해 연휴에 만날 친구가 있다는 것이 기쁘다거나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지만 불행하지도 않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