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해요
조지 섀넌 지음, 유태은 그림, 루시드 폴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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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미세한 얼굴 표정, 따스한 체온, 작은 몸짓으로 알게 되는 누군가의 마음이 구구절절 긴 대화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나 아이가 아기였을 땐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소통하는 법이 절실히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더 자세하게 아이의 모든 것을 살피게 된다. 그러다보면 아이와 대화를 나누진 못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나의 마음을 아이에게 전해주기 위해 선택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전해져 소통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손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온갖 손짓 써가며 웃게 해주고 꼭 잡은 두 손으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서 사랑을 떠올리게 되는 손이란 말로는 힘들지도 모르는 것들을 단순하지만 깊게 전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책의 시작은 해가 뜨는 아침. 그 아침을 열어주는 것은 손이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구구절절 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떠오른 해를 맞으며 모두가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도록 조심스레 커튼을 걷어주는 손에 담긴 그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이유다.

 

 

슬픈 일도, 즐거운 일도 말보다 손을 통해 먼저 전해지는 일이 많다는 걸 이 그림책을 보며 다시 느끼게 된다. 아이와 함께 했던 순간 순간 손이 해주었던 것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떠올리게 된다.

 

 

엄마의 따뜻한 손이 어루만져 주었던 어린 아이의 아픔, 거칠고 투박한 아빠의 손이 묵묵히 날 붙잡아 주며 키웠던 의지. 그렇게 부모의 사랑은 끊임없이 전해지고 전해져 아이를 자라게 하고 아이는 그 무엇보다 큰 힘을 얻게 된다.

 

보면서 가장 뭉클했던 부분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주던 순간에도 나의 사랑은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상 속 모든 순간 속에서 의식하지 않아도 나의 손이 그런 일을 해주고 있었구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언제나 함께했던 손. 쑥스러워 건내지 못하는 말,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말들도 작은 손놀림 하나와 그저 함께하는 순간으로도 대신할 수 있는 마법같은 시간을 전해준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과 어깨에 살포시 놓인 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따뜻한 그림을 통해 전해지는 가족의 사랑이 너무나 뭉클했던 그림책. 평소 아름다운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은 루시드폴의 감성이 더해져 더 따스하게 다가온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상의 행동들에서도 손을 통해 내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느끼기도 했다. 특히 엄마라면 아이를 낳고 처음 아이가 그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움켜 쥐었을 때의 감동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힘들지만 그 작은 손짓 하나만으로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던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을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꾸만 잊고 지내게 된다. 꼭 잡은 두 손 놓지 말자며 다짐했던 남편과의 애틋했던 시간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행복했던 기억들을 다시금 내게 돌려주기 위해 손은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저장해 두었던것 아닐까. 오늘은 아이들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아 주고, 남편의 어깨에 살포시 손 올리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 나의 온기를 전해주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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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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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내 나이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굳이 나이에 신경 쓰며 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 앞자리가 3이 되고 또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나이가 가지는 의미나 감흥이 예전만큼 크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 나이라고 해서 꼭 이런 외모, 꼭 그런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살고자 마음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이 나이까지 아직 결혼하지 않고 혼자였다면 이런 생각을 갖진 못했을 것 같다. 자의든 타의든 한살 한살 먹어가는 나이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각자에게 달린 일이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천차만별의 삶, 그 속에서 나와 별다를 것 없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찾게 되는 작은 공통점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수많은 우리에게 영오의 삶이 너무나도 찰싹 달라붙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후의 몸무게는 33킬로그램.

영오는 3시 3분이나 3시 33분에 시계를 보게 되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33번 버스가 싫었고 텔레비전에서 33번 채널을 삭제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셋이라는 나이가 싫다.

잊지 못했나 보다.


 

작은 출판사에서 국어 편집자로 일하는 영오는 사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고 서먹해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며 아버지가 남긴 월세 보증금과 밥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첩을 유품으로 받게 된다. 그 수첩에 적힌 것은 들어본 적 없는 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첫번째로 써진 홍강주는 아버지가 경비원으로 일하던 중학교의 수학교사다. 소개팅 아닌 소개팅을 시작으로 연애는 사치라 여기던 영오의 삶에 서서히 강주가 자리잡게 되고, 둘은 수첩에 써진 나머지 두 사람을 함께 찾아 나선다. 한편 영오가 만든 문제집을 풀다 문제가 재밌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기 시작해 이젠 매일 연락을 하는 중학생 미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으로 엄마에게 쫓겨나 그간 방치해둔 개나리 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괴팍한 옆집 할아버지 두출과 버찌라는 고양이를 통해 가까워지고 눈치 빠르고 계산 빠른 미지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해주며 우정을 쌓게 된다.

서른셋인 오영오와 열일곱 공미지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지내지만 특이한 것은 언제나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한번도 본 적 없는데다 나이차이까지 어찌보면 우정이라는 것이 생길 수 없을 것 같은 두사람이지만 다른듯 닮은 서로에게 끌릴 수 밖에 없었다 보다. 둘 다 스스로를 가두며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기에 그들에겐 억지로라도 이끌어내 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상황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영오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할아버지와의 우정을 쌓아가는 미지. 서툴고 힘들었던 둘에게 혼자서는 채울 수 없었을 삶의 반쪽을 채워준 사람들 덕분에 닫혀있던 마음을 서서히 풀어날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달 동안 영오의 인생에 새겨진 이 이름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까.

홍강주부터 명보라까지? 아니면 영오부터 공미지까지?

이 다섯 사람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동그라미.

이들은 점으로 시작해 선으로 이어졌다.

점은 선이 된다. 선은 점을 포함한다.


 

이번 생은 누구나 다 처음이기에 서툴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그로인해 받은 상처를 끌어안고 그저 머물고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사람도 많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어 벽을 쌓고 또 쌓으며 점점 두꺼워져 가는 그 벽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두껍고 버거웠던 그 벽이 작은 노크 한번으로 조금씩 실금이 가고 어느 순간 눈 녹듯 녹아버려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누군가가 나를 끄집어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영오는 그렇게 살아생전 원망했던 아버지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고 미지는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던 두출 할아버지를 통해 죄책감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어 줄 존재가 다가온다면 얼마든지 풀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읽다보면 뻔하기도 하고 예상 가능한 전개에 지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적절하게 재밌고 유쾌한 요소들이 많고 또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된 배경과 소재이기에 맞장구치며 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공감과 감동이 밀려오게 만드는 ‘생계밀착형 감동 소설’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전혀 상관도 없고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서히 연결되며 다시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그 모습에서 나또한 겪었던 혼란과 아픔들이 생각났고 나를 일으켜 세웠던 존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며 점점 벽을 치고 혼자의 세계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을 모든 아픈 영혼들에게 어딘가에는 분명 나의 0.5인, 날 채워줄 절반이 있다는 것은 아마 큰 위로가 되어 모두에게 새겨지지 않을까 싶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그 대신 사람들이 있다.

나의 0.5, 내 절반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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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유지별이 지음 / 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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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에서 스무살, 단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시기. 어른이 된다는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여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시기. 어느새 그 시간들이 멀어져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이기에 나에겐 그립고 또 아련한 시간이다. 지나고 나면 모든게 다 아쉽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게 기록해 두었다면 좋았겠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록 다시 열어보면 민망하기도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의 내 감정, 내 생각을 가장 잘 담아둘 수 있는 건 분명 나밖에 없으니까. 가장 찬란했던 그 시기를 너무나 예쁘게 기록해 둔 <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를 읽기전에 우선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이유다.

 

 

네이버 그라폴리오 인기 작가 유지별이의 첫 책으로 학창시절의 추억과 이제 막 시작하는 스무살의 부푼 기대감을 예쁜 그림과 감각적인 글로 담아내고 있다. 따뜻한 봄과 함께 시작된 고3의 마지막 새학기, 푸른 잎사귀 사이로 빛나던 여름의 추억, 선선해진 가을 치른 수능을 끝으로 헤어지게 된 친구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돌아와 새롭게 시작되는 스무살의 봄까지 집 안에서, 오가는 버스에서, 창문 밖 풍경 속에 있던 소소한 일상들이 모두 글이 되고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림만의 아련한 느낌으로 되살아 난다.


 

오늘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줄씩 기록하는 것,

그것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아~ 읽다보면 나의 19,20살이 어땠는지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별 다를 것 없이 매일 매일이 똑같았지만 그럼에도 내일에 대한 기대와 나름의 꿈을 안고 하루 하루를 버텼던 나와 그 속에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던 존재들이 다시금 떠오르곤 했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다를바 없었을 학교 생활과 비슷하게 했던 생각들, 의문들이 그저 기억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이렇게 글과 그림으로 남겨두고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아마 똑같은 장면이어도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면 이런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웬지 흐릿한 그림 속에 내 과거의 시간을 투영해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스무살만의 감성으로 적어낸 짧은 글들. 모든 것이 합쳐져 청춘의 한 자락을 끄집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미 낭만을 잊고 찌들대로 찌든 어른인건지 읽다보면 좀 오글거리는 부분들이 있긴 했다. 분명 내가 이제 갓 스무살 초반의 청춘이었다면 공감하며 글귀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콕콕 박힐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미 너무 현실의 쓰라림을 많이 겪었나 보다. 그래도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서두르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라는 진심어린 위로를 보내는 작가의 말은 지금도 급하게 아등바등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모두에게도 와닿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잘 간직해 뒀다 우리 아이들이 이 나이가 되었을 때 읽어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때는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과 시작이라는 하나의 교차점에 서있을 방황하는 청춘들에겐 언제나 이 같은 책이 주는 위로가 크게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지금의 작지만 소중한 순간 순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둔다면 언젠가는 내게 큰 힘이 되어 돌아오는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저자에겐 이 책이 그런 존재가 되어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힘내자. 조금만 더.

하지만 너무 무리하진 말자.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있잖아.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천천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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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자에게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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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보니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다. 사소하게 했던 말 한마디도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하고 짜증이라도 낸 날엔 후회하며 눈물 흘리게 만드는 너무나 소중한 나의 아이, 나의 가족에게 물리적, 정신적인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사회가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불운한 어린시절로 인해 망가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이겨내고 견뎌내라고만 하는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 상처가 얼마나 클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은 자꾸만 피하게 된다.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도, 감당해 낼 자신도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폭력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졌다.

 

 

아스트리드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가부장적인 남자였다. 어머니는 남편을 ‘보스’라고 불러야 했고, 어린 남매들에게까지 폭력이 가해졌다. 그 중 장남인 빔은 시간이 갈수록 가장 아버지와 비슷해졌고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드러내며 결국 하이네켄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 교도소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 납치 사건뿐만 아니라 협박, 갈취, 그리고 자신에게 해가 되는 걸림돌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는 살인마가 되었다. 게다가 그 타깃은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동생 소냐의 남편인 코르를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조카들에게까지 총구를 겨누는 그를 보며, 아스트리드와 소냐는 오빠를 배신하고 그가 모든 죗값을 치르도록 하기 위해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빔은 그 많은 살해를 사주하고도 뻔뻔스럽게 법망을 피해가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부리며 악행을 저지른다. 가장 큰 피해자이자 잠정적 살해대상인 아스트리드는 어린시절엔 아빠로 인해, 커서는 오빠로 인해 언제나 폭력과 억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를 나눈 형제인 오빠이고 가족이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철저히 희생하고 오빠를 돕는 조력자로 살아왔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른 가족들에 대한 끊임없는 갈취와 살해 협박이다. 오빠가 그녀에게 억지로 짊어지게 한 짐을 내려놓기까지 엄청난 아픔과 고통이 뒤따랐지만 목숨을 담보로 결국 오빠를 수감시키고 이때까지 밝혀지지 않은 오빠의 죄를 모두 증언하게 된다. 하지만 오빠는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오빠인 빔은 교도소에서 아스트리드의 살해를 지시한다.

 

오빠가 자신의 가족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깨달았다.

우리의 적은 바깥세상이 아니었다.

오빠가 우리 적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악마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모두 그에겐 하나의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읽는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그저 당하는 아스트리드와 다른 가족들이 답답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그 상황들에 연민이 생기기도 하는 정말 복잡한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뿌리엔 어린시절의 가정폭력과 학대가 기반이 되어 있고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학습된 것들이 본능처럼 각인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한 가족의 삶을 무참히 파괴하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빔도 그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그가 저지른 범죄들은 너무 극악무도하다. 끊을 수 없는 존재인 가족이라는 사람이 살인자이고 나조차도 죽이려 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강하게 극복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 나였더라도 아스트리드처럼 이용 당하고 고통을 겪어도 쉽사리 놓아버릴 순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너무나 담담하게 풀어내는 고통의 순간들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속단할 수 없는 그런 일들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또다른 사랑하는 가족을 배신하며 자신의 목숨을 거는 그녀를 그 누구도 비난할 순 없을 것 같다. 평생을 살해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할 그녀의 삶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끝까지 멈추지 않을 그녀의 용기있는 이야기들에 큰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나는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오빠 때문에 죽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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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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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귀여운 캐릭터들로 가득한 보노보노지만 그 내용이 귀엽지만은 않은 독특한 만화로 기억되는 보노보노! 내겐 애니메이션이 훨씬 익숙해서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보노보노의 귀여움은 책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보노보노를 모티브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며 다시금 재조명 되는 덕에 보노보노 원작 만화 중 가장 좋은 에피소드를 엄선해서 담은 이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오랫만에 어린시절에 봤던 만화를 보며 추억이 방울방울 생기고 귀여운 친구들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며 시작된 보노보노와의 만남!

 

 

 

 

1984년부터 연재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보노보노. 그 긴 시간만큼 쌓인 이야기들이 어마어마할테지만 이 책은 그 중 저자가 엄선한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작품을 한데 모은 책이기에 가장 보노보노다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 많은 보노보노와 작지만 씩씩한 포로리, 화도 잘 내고 폭력적(?)이지만 속 깊은 너부리까지. 세명의 친구들과 못지않게 독특한 많은 친구들이 사는 숲속에서 어떤 큰 사건이나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진 않는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항상 새로운 물음들을 떠올리는 보노보노를 위해 친구들은 함께 고민하고 부딪히며 답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과정이 때론 좀 우습고 귀엽기도 하지만 깊은 철학이 담겨 있어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 속을 휙휙 헤집는 묘한 매력이 가득한 이야기가 바로 보노보노가 아닐까.

 

그런 건 마음의 문제야, 마음.

자, 내일 모레 일이 지금 여기에 있어?

모레 일 따위, 네 머릿속에만 있다고.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끊임없이 바라본다는 것,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겐 힘든 일이다. 뭐든 적당히 넘기고 익숙한 것에 자꾸만 손이 가기 마련인데 보노보노는 어찌나 궁금한 것도 많은지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그런 보노보노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주는 포로리와 좀 괴팍해도 절대 모른체 하지 않는 너부리까지~ 숲 속의 삼총사들은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사실 보노보노를 꽤 어린 시절부터 봤는데 항상 애니메이션으로만 보다 원작을 보니 더 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너부리의 끊임없는 발차기와 엉뚱한 보노보노와 포로리의 행동들이 더해져 또 웃으며 가볍게 읽을 수도 있는 어른들을 위한 만화가 바로 보노보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엔 보노보노가 참 답답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니까 맨날 너부리가 짜증을 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보노보노를 보게 되니 순수하고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철학자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니 같은 만화를 보고도 언제 어느때에 보느냐에 따라 참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 별 것 없는 숲 속 동물들의 삶에서도 이렇게나 많은 물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복잡하게 살아가는 우리도 너무 큰 행복을 쫓기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포로리야, 부서질 수는 있어도 진짜로 사라진 건 아니지 않을까?

점점 작아질지 몰라도, 그래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십 년이 지나도, 그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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