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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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몇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것을 말하자면 먹는 순간의 즐거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예전엔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맛집을 찾아 다니거나 집에서 예쁘게 요리해서 먹는다는건 참으로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확실히 내가 어떤 재료와 어떤 맛을 좋아하고 어떻게 조리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맛,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을 보며 음식이 주는 행복감을 조금씩 느껴갔던 것 같다. 음식에는 그 음식을 먹던 순간의 느낌과 기억이 함께 담겨 있어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을 떠올리면 음식이 먼저 떠오르게 될 정도로 이젠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미된 음식을 통해 단지 먹기 위해서만이 아닌 다시 한번 그때로 되돌아 가고픈 희망을 나타내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음식은 언제든 다시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요리하는 것도 하루하루의 즐거움 가운데 중대한 요소다. 다른 집안일은 그저 필요하니까 할 뿐이지만 요리를 하는 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라고 말하는 일본 최고의 미식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인 모리 마리. 그녀는 소위 온실속의 화초처럼 정말 귀하게 사랑받으며 자랐다. 하녀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부잣집 공주님이었던 그녀는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인 모리 오가이는 그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마리는 최고, 마리는 최고, 눈도 최고, 눈썹도 최고, 코도 최고...”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니 엄청난 고슴도치 부모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과는 달리 두 번의 결혼 생활은 모두 파국으로 끝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재능은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은 생활을 안정적이고 풍족하게 해주지 못했다. 싱크대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고 다른 집안일엔 전혀 소질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요리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그녀는 미식가이자 대식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돈 드는 짓만 하는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귀족이었던 그녀의 식생활은 과연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그녀는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서양 요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글마다 듬뿍 묻어난다. 어린 시절 먹었던 서양식 양배추말이나 가루로 탄 코코아가 아닌 진짜 초콜릿을 녹여 만든 초콜릿, 프랑스에서 먹던 싱싱한 굴, 로스트 비프. 그녀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맛있는 레스토랑의 요리들과 처음 시댁식구들에게 요리해 호평을 받은 연어와 화이트 소스, 친구인 요코에게 만들어 준 된장 초무침, 달콤한 브레드 버터푸딩과 크로켓 토마토주스조림까지 단순한 방법으로 본격적인 요리의 느낌을 내는 방식으로 너무도 간단하지만 간단하면서도 솜씨가 필요한 요리를 만드는 그녀의 음식은 많은 사람들과 그녀 스스로를 만족시켜 주며 과연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하고 깐깐한 성격은 음식에 관해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햄버그가 맘에 들지 않아 “이게 아냐. 이건 싫어!”라고 씩씩거리며 우걱우걱 햄버그를 입에 밀어 넣고 화난 채 식사를 하고, 오믈렛에 토마토케첩이 뿌려져 나오면 깊은 분노를 느끼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그 모든것의 밑바탕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된다. 그녀의 글 대부분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경을 담고 있고,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맛보게 해준 많은 요리들이 그녀의 미식가적인 면모를 더욱 키워주었다. 전쟁으로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모두 잃어버린 것에 대해 끊임없이 안타까워 하고, 아버지가 무릎에 앉혀주고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계속 되뇌이는 걸 보면 그녀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음식으로 연결된 그녀의 행복했던 유년시절과 암울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화려하고 풍족하진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하고 그것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그녀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요리의 맛은 봄이나 여름 등 계절의 변화, 그날그날의 날씨 상태, 선선하거나 덥거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먹는 사람의 기분에도 변화가 있으므로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개,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융통성 없이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사실 결혼을 하며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게 되었고, 대부분 레시피에 의존해 만들어야 했기에 만들기에 급급했고 예쁘게 담아내는 것까진 엄두도 못냈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며 레시피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요리들이 늘어나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나가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을 땐 요리가 참 재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플레이팅에도 많은 중점을 두기도 하며 점점 발전하는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기억은 평생을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모리 마리 역시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아버지를 음식을 통해 추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그녀가 음식을 통해 찾아가는 자신만의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보며 읽는내내 그녀처럼 확고한 취향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자신이 처한 암울한 처지보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추구하며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음식, 그것도 예전 시대의 음식들이라 사실 낯선 것도 많았고 상상이 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묘사하는 수많은 음식들은 읽다보면 절로 침이 고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음식을 사랑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좋아했던 따끈한 홍차 한잔과 달콤한 디저트를 함께 곁들인다면 더욱 풍미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훌륭한 식도락가다. 넘치게 훌륭해서 훌륭함이 거스름돈을 내줄 정도다. 젊은 사람이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누가 노인이라 부를 때 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먹는 걸 좋아하기로는 여전히 아이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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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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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다는 것, 늙어 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슬퍼지기 마련이다. 어렸을 땐 그렇게나 빨리 어른이 되길 바라며 한해 한해 늦게만 흘러가는 시간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뭘 몰랐구나 싶다. 이젠 하루, 한달, 일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새 내가 서른 중반이 되어 가고 있으니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에 놀랄때가 많다. 분명 누구나 다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이상하게 나의 시간만 빨리 흘러가는 듯해 야속하기도 하다. 늙어감이란 우리에게 그렇게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게 하니 자연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가 없나 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보다 부모님의 나이 듦이 더 힘들고 안타깝다. 날 지켜주고 보살펴 주시던 부모님의 노년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 한켠이 아리고 아파오기에 더욱 늙어감을 부정하고 싶고 피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찌 피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서 과연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기에, 마흔을 목전에 둔 내게도 준비가 필요하다. 
 

 

 

<미움받을 용기>로 심리학 열풍을 일으켰던 기시미 이치로는 오십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고 그 재활 과정에서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인지증으로 투병하여 간병을 하며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어머니 역시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노년과 자신이 겪은 죽음의 문턱에서 저자는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 나이 든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병상에서도 독일어 공부를 하시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하려는 의욕을 보이신 어머니와 ‘잊어버린 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며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며 좌절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 그리고 저자 스스로 깨달은 나이 듦에 대한 철학과 노년의 생활을 행복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조언을 담고 있다. 



늙어가는 용기, 나이 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용기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 바꾸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로운 일이고, 무엇이든 배우고 익히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모두 변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늙어갈수록 점점 퇴화된다고 생각한다. 퇴화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사라지게 되며 내게 주어진 노년의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아마 대부분 일터에서 은퇴하는 순간부터 노후가 시작된다고 생각하기에 노년이란 일선에서 물러난 퇴물이 되어 생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성공을 좇아 쉴새없이 일하다 그 목표가 사라졌을 때 생기는 허무함과 공허함을 많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나이 듦이란 퇴화가 아닌 변화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배우고 경험하고 축적해 온 것을 전부 집약하여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기에 어떤 평가를 받든 개의치 않고 배우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젊은 시절보다 사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에 노년의 삶에서 배움이란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갈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것이 두려워 그럴때마다 스스로를 짐처럼 생각하고 부담스러워하며 사람들과 가족들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며 공헌감을 느끼며 행복해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떤 상태든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살아 있는 것만으로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지레 짐작하고 겁먹는 것 또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살아 있는 ‘지금’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한다면 인간의 가치는 살아 있는 것에 있고 인생의 목표란 성공이 아닌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 다른 각도에 초점을 맞추고 과거를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을 탓하며 후회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 더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더 성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젊었던 과거를 그리워만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채 맞이한 노년을 내 인생의 마지막 단계로 생각하며 그저 흘러보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제 백세시대이고 의학의 발달로 자신이 관리만 잘 한다면 얼마든지 젊었을 때보다 더 활기차고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렇기에 젊었을 때부터 먼 일이라 치부하지 말고 나이 듦에 대해, 나의 노년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이 필요하다. 준비 없이 맞이한 노후가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그간 열심히 살아온 나의 시간들이 빛바랜 과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나이 듦을 부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젊었던 과거의 일들을 단칼에 끊어낼 필요도 없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나누지 않고 지금 나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한다면 자연스럽게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나이가 들수록 내일이라는 날이 언제라도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매일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충분히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면 노후의 삶도 얼마든지 생기 넘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역시 노후엔 느긋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자주 했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노후를 계획하고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아직 먼 일이라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을 노년의 시간을 안절부절하며 맞이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로부터 행복을 얻으려 하지 말고, 가족의 행복을 바란다면 나부터가 행복해야 한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기대어 살며 짐이라는 생각에 비관하며 살지 않기 위해선 나 스스로 행복한 노후의 삶을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젊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 찾아 오겠지만, 나이 들어 맞이하는 변화는 젊었을 때라면 절대 느끼지 못할 또 다른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 기쁨이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비록 방향은 다를지라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노후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다면, 절대 나이 듦이 두렵거나 피하고 싶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숲을 만들고, 다음 세대의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과거를 생각하고 후회하거나, 미래를 생각하고 불안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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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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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라는 자기만의 시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나만을 위한 휴식, 가족들과의 단란한 여행, 연인과의 낭만적인 시간. 계획한 것인든 즉흥적인 것이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제 우리에겐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꿈같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이렇게나 행복해질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멀어져 잠깐이라도 일상의 고단함과 아픔을 잊을 수 있도록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어떻게든 떠나고자 하는 것일테다. 여행으로 갖게 된 추억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 힘겨운 시간이 찾아왔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그 기억이 행복하고 많을수록 그만큼 더 탄탄한 버팀목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 서로 다른 각자의 사연과 아픔일지라도 끄집어 내어 나누고 함께 하다 보면 어느새 해답을 얻게 되고 치유가 된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이 들어보지도 못한 낯설고 먼 곳일지라도 말이다. 

 

아일랜드 서부에 위치한 바다가 보이는 마을인 스토니브리지. 스토니브리지는 말그대로 시골이다. 지루한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에게 그곳을 빠져나갈 어떤 기회가 찾아온다면, 앞뒤 재지 않고 우선은 그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치키 역시 자유롭고 넓은 세상으로의 동경으로 아일랜드로 여행 온 윌터 스타를 따라 뉴욕으로 갔지만, 그녀가 생각했던대로의 삶이 펼쳐지진 않는다. 그간 가족들에겐 결혼을 했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자존심 강한 치키가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이런저런 힘겨움 속에서도 그녀는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꾸려 나가지만, 고향인 스토니브리지로의 귀환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처럼 다가온다. 스무살에 고향을 떠나 어느새 중년이 된 치키에게 어느날 스토니브리지의 대서양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위치한 미스 퀴니의 오래된 대저택인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고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날씨가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센 스토니브리지에 호텔이라니, 사람들은 모두 성공은 불가능하다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스톤하우스를 만들어 나간다. 치키와 미스 퀴니 둘 만으로 호텔을 만들기엔 버겁다고 느낄 무렵, 치키의 친구인 눌라는 더블린에서 홀로 아들 리거를 키우지만 리거는 점점 비뚤어져 소년원을 들락거리고 결국 큰 사고를 쳐 도망치듯 치키에게로 보내진다. 하지만 리거는 치키와 미스 퀴니와 함께하며 어느새 자신의 미래를 착실히 일구어 나가는 청년으로 성장해 스톤하우스의 지배인이 된다. 치키의 조카인 올라는 런던에서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도시 생활에 지치고 상처 받아 잠시 고향에 머물 생각으로 스톤하우스에 합류한다. 저마다 사연 많은 직원들의 열정으로 문을 연 절벽위의 호텔 스톤하우스, 개장 첫주 호텔을 찾은 다양한 손님들은 과연 어떤 사연을 가진채 스톤하우스에 오게 되었을까?



“너는 이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 거야.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말이지.”
“저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은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치키. “


 

마마보이 남자친구덕에 깐깐하고 고집스러운 예비 시어머니와 여행을 오게 된 위니. 유명한 배우지만 회의에 갈 비행기를 놓쳐 충동적으로 오게 된 존. 크루즈를 타고 여행하며 환자를 돌보는 멋진 직업을 가진 의사지만 왠지모르게 힘겨워 보이는 헨리와 니콜라. 큰 회사의 후계자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안데르스. 이벤트 선물 응모하기가 취미이자 특기로 이번 여행 또한 당첨되어 왔지만 불만 가득한 윌 부부. 학교 교장이었지만 과거 큰 아픔을 겪고 마음을 굳게 닫은 차가운 넬. 도서관 사서지만 사랑에 큰 상처를 받은 프리다까지. 사연도 제각각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어쨋든 그들은 일주일동안 스톤하우스에 함께 머무는 첫 손님들이다. 오게 된 사연도, 각자의 아픔도 다르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호텔, 그리고 치키의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로 그들은 모두 조금씩 치유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손님들은 일주일이 지난 뒤 각자가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과 문제를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고 행복한 답을 찾아 스톤하우스를 떠날 수 있을까.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 하지만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도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여행을 갔을 때 어디에 묶느냐는 너무 중요하다. 각자 선호하는 타입은 다를지라도 어쨋든 힘든 여정을 마무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숙소가 아니라면 그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 힘들어 진다. 그래서 아마 사전에 아무 정보가 없는 곳을 덜컥 찾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 속의 손님들은 그런것을 따지기엔 각자가 가지고 있던 아픔과 고통이 너무나 컸다. 사실 나만큼 기구한 운명은 없을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힘든일이 생기는지 자책하다 보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생각을 정리하고 환기시키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스톤하우스는 외지고 먼 곳, 꼬치꼬치 내 사연을 캐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적당한 거리감,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거리낌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라는 가장 적절한 요소들을 지닌 훌륭한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게 된 이유도, 풀어야 할 인생도 다 다르지만 어쨋든 모두가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 스톤하우스! 거기에 저자가 사랑한 아일랜드의 풍경과 아름다운 음악, 맛있고 정성스런 음식까지 어우러져 나역시 일주일의 휴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그곳에서 보낸 길지 않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진짜 자신의 삶을 찾고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이 된다면, 누구라도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을까? 아마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마지막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꼭 나처럼 말이다. 



말 그대로 낭만적인 감정이나 별빛이 마법처럼 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좀더 깊은 무엇이었다.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 혹은 기분좋은 평화의 느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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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8.1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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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가 저물어 간다. 어느새 한해를 돌아보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니, 그간 소망했던 것과 목표했던 많은 것들을 얼마나 이루었는지 결국 또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2018년이 끝난 것은 아니기에, 남은 시간만은 더 뜻깊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운 오리가 한순간에 백조가 될 순 없어도, 밉게만 느껴지던 1년여의 시간도 마지막 1,2개월의 행복한 시간으로만 기억된다면 얼마든지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추워진 날씨만큼 쓸쓸해진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시간이 있다면 후회도 미련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온기를 듬뿍 담고 있는 샘터와 함께말이다. 

 

골든마우스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 메인 방송도 아닌 지방방송에서 25년이라는 시간동안 라디오를 진행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사랑받는 관록의 DJ지만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진정한 라디오 스타!

 

 

나도 부산에서 자라서 항상 고기보단 생선이 훨씬 더 친숙했고 고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 할머니의 부엌 레시피가 더욱 맛있게 다가왔다. 진짜 화려하진 않지만 가족들의 입맛과 식성에 맞춰 푸짐하게 차려내는 할머니의 밥상. 항상 입맛 다시며 보곤 하지만 이번호는 특히 더 우리 외할머니의 음식이 그리워지게 해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눔을 항상 실천하시는 할머니의 삶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미운 오리가 되고 싶진 않지만, 어쨋든 그로인해 노력하고 발전하다보면 어느새 멋진 백조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실수 앞에 움츠러 들지 않고 당당하게 백조가 되어 가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나도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 아닐까. 제철 음식만 잘 먹어도 따로 보양식이 필요 없고, 찬 바람이 불어오면 뜨끈한 음식들이 절로 생각난다. 어느새 새로 김장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시댁에서 다함께 김장을 하는데 큰 행사중의 하나다. 매번 시어머니가 손수 다 키우신 재료들로 김장을 하니 김치 걱정은 하지 않는다. 김장이 쉽진 않지만 그럼에도 방금 갓 담은 시원한 김치에 따뜻한 수육 한점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근래 눈에 띄는 그림들이 있는데 배성태 작가님의 그림 역시 요즘 자주 보게 되는 그림 중의 하나이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대사와 분위기가 너무 따뜻해서 자꾸만 보게 되는 그림. 이번 샘터에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다. 기사를 읽다보니 그림 속에 작가님의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 하나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며 이야기 한다는 작가님은 그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이런 감성적이고 따뜻한 그림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 같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나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나였지만 이젠 나보다 부모님의 건강에 가장 예민하고 신경 쓰게 된다. 그런 부모님이 크게 아프시다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파랑새의 희망수기처럼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거리낌없이 희생하고 서로를 아끼는 가족이 있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요즘 사진은 예전처럼 한장 한장 신중하게 찍을 필요가 없기에 그 의미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상을 손쉽게 기록하고 남길 수 있어서 이젠 무엇이든 먼저 사진으로 찍는 것이 익숙해 졌다. 다들 인생사진을 건지기 위해 많은 스팟을 찾아 다니지만, 정말 인생사진을 위한 전시회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단지 보여주기 위한 사진 찍기에만 치중해 진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추워진 날씨에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이야기들로 가득한 샘터를 읽으니, 따스한 햇살 한줄기를 맞으며 느긋한 가을의 오후를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샘터게 실려있는 나와 멀리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더 크게 공감하고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마음 속에 많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다음호도 큰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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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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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소리없이 증발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지겨운 일, 나를 지치게 하는 인간 관계를 벗어나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쉬워 보이지만 사실 너무나 힘든 일이다. 나라는 사람과 연관된 모든 연결 고리를 아무 미련 없이 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떠나버리도 싶다가도 가족들이며 직장이며 이것저것 발목 잡는 많은 것들이 떠올라 다시 고이 접어 마음 한켠에 쌓아 두고선, 힘들때마다 한번씩 꺼내 그저 상상하기만 하는 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다시 좌절하게 되지만 막상 실행할 용기조차 생기지 않기에 다시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꺼이 은둔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비범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예수, 싯다르타, 에디슨, 반고흐, 소로등 그들은 은둔자의 길을 선택하고도 위대한 업적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은둔자는 히키코모리처럼 사회성이 부족해 스스로를 가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27년간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한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그런 은둔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단순히 그를 취재한 취재기가 아니다. 



나이트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어떤 비밀을 폭로했을까? 아니면 그냥 미친 걸까? 만약 처벌한다면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 그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긴 한 걸까?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핀클은 아주 잘 나가던 저널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는 슬럼프에 빠져 휴직을 하게 되었고, 그 힘든 시간동안 우연히 읽게 된 은둔자 나이트에 대한 기사를 통해 이 책은 시작되었다. 저자 역시 힘들때면 숲을 찾아 도피여행을 갈 정도로 숲과 캠핑을 사랑했고 독서를 즐겨했다. 그래서 27년간 숲속에서 은둔하며 살았고 책을 많이 읽는 나이트에게 묘한 연민과 동지애, 그리고 동경심을 가지게 했다. 이미 충분히 화제가 되었고 많은 사람과 언론이 나이트를 취재하고자 했지만 나이트는 공개적으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를 직접 인터뷰하고 싶었고 무작정 편지 한통을 보냈는데 그에게서 답장이 오기 시작하며 취재는 시작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나이트를 9번이나 면회했고, 그의 재판마다 참관하며 그의 야영지가 있는 메인 주를 일곱 차례 답사하기도 했다.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나이트를 이해하게 되고, 또 나이트 역시 저자에게만은 마음을 열어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2013년 4월 4일, 이른바 ‘미국판 로빈슨 크루소’라 불이는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체포되었다. 그는 27년이란 긴 시간동안 미국 메인 주의 노드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타인과의 접촉 없이 홀로 숲속에 살았지만 기발한 방법으로 물을 구하고 식량을 저장하며 자신의 야영지를 꾸렸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음식, 옷, 책등은 인근 야영장과 오두막에서 사람들의 물건을 훔쳐 1,000건이 넘은 절도를 저질러왔다. 그로인해 그는 노스 폰드의 은둔자로 불리며 주민들에게 괴담처럼 떠돌았다.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절도를 저지른만큼 그는 주민과 경찰들에겐 꼭 잡아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끈질긴 추격 끝에 결국 캠프장 안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인해 나이트는 잡히게 된다.


절도죄로 감옥에 수감되며 은둔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27년이란 시간동안 홀로 지냈던 나이트는 여전히 사람들과, 사회와 먼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저자와 마음이 통하게 되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한다. 야영지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물건을 훔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긴 시간동안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하나둘 알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애써 병명을 찾으려 한다. 그렇지만 그를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쨋든 법원은 그를 다시 사회로 나가게 만든다. 하지만 살아온 날들을 통틀어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했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던 그가 과연 사회에 다시 녹아들어 갈 수 있을까? 



그가 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더 심하게 고통받는 대신 달아났다. 그것은 저항이라기보다 탐색이었다. 그는 인류를 피해 떠난 난민과 같았다. 숲은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었다.

 

도시에서 보던 피곤한 불빛과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초록 기운이 가득한 숲으로 가는 순간, 우리의 몸은 자연스럽게 편안해진다. 사람들이 왜 귀농을 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 정착하겠는가. 우리가 태어나고 진화한 곳이 자연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연으로부터 그런 기운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이트는 그대로 숲에 머물었다. 지친 우리가 요즘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나이트 역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한 것이다. 나이트가 물건을 훔치며 지내지 않았다면 아마 더 긴 시간을 숲 속에서 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쨋든 그는 범죄를 저질렀고,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해서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민이라도 정체 모를 누군가 침입해 물건을 훔쳐간다면 그 공포가 엄청날 것이란 생각이 드니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이트는 어쩌면 신비에 둘러 쌓인 숲속의 은둔자로 죽을때까지 숲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역시 스스로도 숲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다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잡혔고,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쨋든 나는 그가 더이상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린 단 하루도 누군가와 만나지 않거나 말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고, 잠시 잠깐 사색에 잠기는 일조차 힘들기만 한데, 27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산다는게 가능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나이트가 물건을 훔치고, 또 경찰에게 잡히며 저자를 통해 하나씩 밝혀지는 은둔자의 삶이 한편의 범죄 스릴러 같기도 하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자연인의 생활을 따라가며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해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혹한의 겨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굶주림과 싸우면서도 그가 은둔 생활을 고수했던 것을 보면서 단지 도시의 삶이 좋은지, 숲속의 삶이 좋은지 보단 각각의 개인에게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일탈을 꿈꾸고 숲으로의 캠핑을 좋아하고 로망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이 책의 저자처럼 나이트의 삶을 동경하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잔혹하다고 나이트는 분명히 말했다.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고 강한 자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은 모두가 지고 마는 인정사정없는 끝없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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