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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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소리없이 증발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지겨운 일, 나를 지치게 하는 인간 관계를 벗어나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쉬워 보이지만 사실 너무나 힘든 일이다. 나라는 사람과 연관된 모든 연결 고리를 아무 미련 없이 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떠나버리도 싶다가도 가족들이며 직장이며 이것저것 발목 잡는 많은 것들이 떠올라 다시 고이 접어 마음 한켠에 쌓아 두고선, 힘들때마다 한번씩 꺼내 그저 상상하기만 하는 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다시 좌절하게 되지만 막상 실행할 용기조차 생기지 않기에 다시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꺼이 은둔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비범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예수, 싯다르타, 에디슨, 반고흐, 소로등 그들은 은둔자의 길을 선택하고도 위대한 업적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은둔자는 히키코모리처럼 사회성이 부족해 스스로를 가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27년간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한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그런 은둔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단순히 그를 취재한 취재기가 아니다. 



나이트는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어떤 비밀을 폭로했을까? 아니면 그냥 미친 걸까? 만약 처벌한다면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 그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긴 한 걸까?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핀클은 아주 잘 나가던 저널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는 슬럼프에 빠져 휴직을 하게 되었고, 그 힘든 시간동안 우연히 읽게 된 은둔자 나이트에 대한 기사를 통해 이 책은 시작되었다. 저자 역시 힘들때면 숲을 찾아 도피여행을 갈 정도로 숲과 캠핑을 사랑했고 독서를 즐겨했다. 그래서 27년간 숲속에서 은둔하며 살았고 책을 많이 읽는 나이트에게 묘한 연민과 동지애, 그리고 동경심을 가지게 했다. 이미 충분히 화제가 되었고 많은 사람과 언론이 나이트를 취재하고자 했지만 나이트는 공개적으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를 직접 인터뷰하고 싶었고 무작정 편지 한통을 보냈는데 그에게서 답장이 오기 시작하며 취재는 시작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나이트를 9번이나 면회했고, 그의 재판마다 참관하며 그의 야영지가 있는 메인 주를 일곱 차례 답사하기도 했다.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나이트를 이해하게 되고, 또 나이트 역시 저자에게만은 마음을 열어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2013년 4월 4일, 이른바 ‘미국판 로빈슨 크루소’라 불이는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체포되었다. 그는 27년이란 긴 시간동안 미국 메인 주의 노드 숲속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타인과의 접촉 없이 홀로 숲속에 살았지만 기발한 방법으로 물을 구하고 식량을 저장하며 자신의 야영지를 꾸렸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음식, 옷, 책등은 인근 야영장과 오두막에서 사람들의 물건을 훔쳐 1,000건이 넘은 절도를 저질러왔다. 그로인해 그는 노스 폰드의 은둔자로 불리며 주민들에게 괴담처럼 떠돌았다. 오랜시간동안 수많은 절도를 저지른만큼 그는 주민과 경찰들에겐 꼭 잡아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끈질긴 추격 끝에 결국 캠프장 안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로 인해 나이트는 잡히게 된다.


절도죄로 감옥에 수감되며 은둔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27년이란 시간동안 홀로 지냈던 나이트는 여전히 사람들과, 사회와 먼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저자와 마음이 통하게 되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한다. 야영지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왜 물건을 훔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긴 시간동안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을 하나둘 알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애써 병명을 찾으려 한다. 그렇지만 그를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쨋든 법원은 그를 다시 사회로 나가게 만든다. 하지만 살아온 날들을 통틀어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했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던 그가 과연 사회에 다시 녹아들어 갈 수 있을까? 



그가 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더 심하게 고통받는 대신 달아났다. 그것은 저항이라기보다 탐색이었다. 그는 인류를 피해 떠난 난민과 같았다. 숲은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었다.

 

도시에서 보던 피곤한 불빛과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초록 기운이 가득한 숲으로 가는 순간, 우리의 몸은 자연스럽게 편안해진다. 사람들이 왜 귀농을 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을 찾아 정착하겠는가. 우리가 태어나고 진화한 곳이 자연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연으로부터 그런 기운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이트는 그대로 숲에 머물었다. 지친 우리가 요즘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나이트 역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한 것이다. 나이트가 물건을 훔치며 지내지 않았다면 아마 더 긴 시간을 숲 속에서 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쨋든 그는 범죄를 저질렀고,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해서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민이라도 정체 모를 누군가 침입해 물건을 훔쳐간다면 그 공포가 엄청날 것이란 생각이 드니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이트는 어쩌면 신비에 둘러 쌓인 숲속의 은둔자로 죽을때까지 숲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역시 스스로도 숲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다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잡혔고,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쨋든 나는 그가 더이상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린 단 하루도 누군가와 만나지 않거나 말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고, 잠시 잠깐 사색에 잠기는 일조차 힘들기만 한데, 27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산다는게 가능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나이트가 물건을 훔치고, 또 경찰에게 잡히며 저자를 통해 하나씩 밝혀지는 은둔자의 삶이 한편의 범죄 스릴러 같기도 하고,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자연인의 생활을 따라가며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해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혹한의 겨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굶주림과 싸우면서도 그가 은둔 생활을 고수했던 것을 보면서 단지 도시의 삶이 좋은지, 숲속의 삶이 좋은지 보단 각각의 개인에게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일탈을 꿈꾸고 숲으로의 캠핑을 좋아하고 로망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이 책의 저자처럼 나이트의 삶을 동경하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잔혹하다고 나이트는 분명히 말했다.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하고 강한 자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은 모두가 지고 마는 인정사정없는 끝없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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