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감각 -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
이나라.티에리 베제쿠르 지음, 류은소라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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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도시의 모습은 단조롭고 또 무미건조하다.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거리의 풍경에서 어떤 감각이나 감동을 느끼기엔 그곳에서의 삶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에 그 도시가 가진 이야기를 캐치해 내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빠듯하기만 하다. 나 역시 매일 지나다니는 거리의 가게가 문을 닫았네, 새로 오픈했네 이런 소소한 변화만을 감지할 뿐, 그곳에 어떤 의미와 상징이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한발짝 떨어져 그 도시를 여행하거나 새롭게 둥지를 튼 사람들에게서는 아마 더 새로운 느낌과 감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서로의 나라에서 살아보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느꼈던 도시의 느낌, 너무나 다른 두 도시의 모습이 어떤 시선으로 담겨 있을까?


누구나 동경하는 도시 파리. 그곳에 가면 미각을 일깨워 줄 화려한 요리들과 뭔가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로맨틱한 느낌을 넘어선 우리가 가진 낭만에 대한 판타지로 가득한 도시이다. 파리 에펠탑을 바라보며 프랑스 와인과 달팽이 요리를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가 동경하는 파리에 직접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파리는 어떨까, 그리고 정말 여행을 다녀오거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파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파리라는 도시, 파리라는 판타지, 아마도 21세기위 지구인 중 '파리'라는 단어에 결부되어 있는 판타지와 상상, 이미지의 세례를 조금도 받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고 환상을 가지고 간 파리는 어느정도의 실망감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아직 파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나 역시 파리하면 떠오르는 판타지와 로망이 가득하기에 부푼 마음으로 아름다운 모습의 파리만을 뒤쫓아 간다면, 불친절한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느꼈던 모습과의 괴리감에 정말 크게 낙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파리의 화려한 모습보다 저자가 이야기 해준것처럼 관광지로서의 모습이 아닌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파리 사람들이 건물 창 앞에 매단 화분의 꽃, 정원이나 작은 광장 하단의 꽃, 테이블 위의 꽃 그리고 내 유년의 꽃이 지닌 저마다 다른 모습과 의미와 쓰임에 대해 생각했다. 

똑같은 도시지만 서울과 파리가 상징하는 느낌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현대적이고 인구 밀집도 높은, 좀 복잡하지만 또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서울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이미지이다. 관광지로서의 서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기에 한류 바람을 타고 서울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정말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좁디 좁은 땅에 많은 인구와 중요기관이 모두 몰려 있다 보니 어딜 가도 복잡한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다. 


다른나라 사람들이 보는 서울이란 어떤 곳일까? 두명의 저자 중 남편인, 프랑스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서울의 모습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무심코 지나가던 것들, 길가의 간판이나 안내문 하나도 그냥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던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것에 대한 양국의 태도나 생각을 대조적으로 이야기 하기에 정말 살아온 곳에 따라 얼마나 다른 가치관과 시선을 가지게 되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한국에서의 삶은 고객으로서는 편하다. 소비할 돈과 즐길 시간을 가진 자, 고객에게는 천국이다.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떠난 새로운 도시에서의 느낌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살던곳에서 누렸던 편리함이나 가치들이 그곳에선 전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처음에 느꼈던 놀라움이나 실망감이 클지라도 또 그곳에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녹아들어 익숙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점에서 저자 부부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두 도시에서 생활하기에 각각의 도시가 가지는 매력이나 풍경을 가장 잘 느끼고 표현해 줄 수 있었던 것 깉다. 서울에 사는 우리가 궁금한 파리도, 파리에 사는 그들이 궁금한 서울도 어떤 모습이든 다 사람 사는 도시이기에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걸 잘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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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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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 무당이라는 이미지는 썩 좋은 이미지로 생각 되진 않는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겠냐만은 귀신이나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쉬이 접해볼 수 있는 사람이지도 않거니와 긍정적인 이미지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신내림이니 굿이니 하는 것은 더욱 신빙성이 없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 조선시대에선 어땠을까? 
여성의 지위가 높지도 않았을진데 무녀라니, 사람들의 인식이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그런 무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만나자마자 많은 기대가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시대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낯설기도 하고 또 설레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붉은 나비 같기도 하고 붉은 꽃 같기도 한 오묘하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표지를 홀린듯이 펼친 순간, 
다가서기 힘들지만 매력적인 신비한 이야기가 펼쳐지겠다는 기대감이 함께 밀려왔다. 



저들이 불경하다 낙인찍을수록 무녀의 신이함은 번쩍인다는 것을, 
저들이 음사라 손가락질할수록 무격의 신령은 영광스럽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양반과 사대부들의 세상, 기근에 시달리고 양반들에게 천대 받는 백성들은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양반은 상놈이 되고 상놈은 양반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이루어 주겠다는 미륵의 개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용을 다루어 비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용녀 원향과 미륵에게 점지 된 여환은 큰비가 내려 도성이 모두 쓸려버리고 그곳에 자신이 왕이 되어 새로운 미륵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그렇게 큰비가 내리기 전, 도성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나고 도성에 가게 되지만 원향의 미륵과 여환의 미륵은 서로 다르고 그로 인해 함께 하던 그들의 여정도 서로 다른 길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이 염원하는 큰비는 내려줄 것인가? 미륵의 시대는 당도할 수 있을까?


그 옛날 사람들에게 물, 비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농사는 그들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에 물이 없다면 그것은 곧 죽음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무속인의 힘을 빌어 기우제를 지내며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가장 최악의 순간에 무녀들을 찾아가며 그들의 힘을 빌려보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박해를 받는 것이 또 무녀였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을 했던 것처럼 분명 그들의 영험한 힘에 의지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돼면 처참히 버려지게 된다. 
그런 무녀들의 힘들었던 인생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한 인간으로써, 또 한 여자로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세상의 그림자를 안고 죽어야 했던 무녀의 큰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무녀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 세상에 잇숙해지지 않기 위해, 
원향은 그렇게 무無의 시간을 살았다.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 했던 건 무녀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표현이었다. 
기구한 원향의 사연이며 많은 무녀들의 이야기와 무녀들의 굿 장면등 꼭 조선시대 무녀들의 곁에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본것 처럼 세밀한 표현과 낯선 단어들이 나오며 그 시대적 배경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작가가 타임슬립을 한 것은 아닌지, 아니라면 정말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접해야 했을 수많은 방대한 지식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띵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정보와 상상력이 결합된 소설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큰비는? 온것인가 오지 않은 것인가? 
사실 정말 큰비가 어마무시하게 내려서 부패한 세상이 뒤집어지는 통쾌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허무하게도 그들의 역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큰비라는 것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실질적으로 보여지는, 그들이 원했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원향과 여환 모두 각자에게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가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다면 그것을 큰비가 내렸다 지나간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은 나도 팍팍한 현실에, 말도 안돼는 빈부격차에 이 사회가 싫고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비관적인 현실에서 누군가 이상향을 제시하며 함께 그런 시대를 만들자고 얘기한다면, 그냥 콧방귀 끼며 무시할 수 있을까? 나약해진 심신에 그런 달콤한 이야기는 분명 더 빠르게 스며들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준 세상에서 수동적으로 변화를 바라고만 있다면 아마 그에겐 그 어떤 변화도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바꿔 줄 큰비는, 누군가가 내려주는 것이 아닌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도록 시원하게, 올바른 정도를 깨우칠 수 있도록 알아서 내려주지 않을까. 



우리 인간들은, 알 수 없는 힘이 시간의 흐름 위에 우리를 올려놓은 그 시간을 살아갈 뿐인 것을, 
각자의 시간 위에서 그 시간을 타고 흐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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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 사랑은 얼마큼 자랐을까 - 고등학교 현직 교사의 교단 산문집
배철호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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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교사가 되기도 힘들지만, 힘들게 그 자리까지 오게 된 교사들이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도 힘든 현실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적만 해도 선생님은 굉장히 크고도 높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대든다거나 말대꾸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하고 또 무서운 선생님도 너무 많았다. 
요즘 같으면 뉴스에 나오겠지만 맞기도 참 많이 맞았다. 
그만큼 선생님이란 존재는 어렵기도 하고 또 존경스럽기도 한,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 학교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들은 곧 첫째를 학교에 보내게 될 학부모의 입장에선 너무나 우려스럽기만 하다. 
학교폭력, 교권의 붕괴, 입시전쟁등.. 
과연 그 옛날 내가 생각하던 학교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점점 더 잔혹해지는 아이들의 왕따나 폭력, 게다가 요즘은 성폭행도 빈번히 생기고 있다니 딸을 둔 엄마로서는 너무나 걱정스럽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와 경쟁에 시달리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과도한 업무와 아이들의 거친 반항에 힘들고 또 지쳐있기에 
서로에 대한 날이 날카롭게 서 있는채로 함께 부딪히고 시간을 지내다 보면 좋은 관계의 형성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학원에 고액 과외까지 사교육이 워낙 기승이다 보니 실제 학교의 선생님들보다 
사교육 현장의 선생님들이 더 우상시 되기도 하니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교단에서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해온 저자의 글을 보면, 
분명 부정적인 그 이면엔 훨씬 더 긍정적이고 좋은 면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향한 애정어린 진심이 묻어 나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그 옛날 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선생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문학 선생님으로 아이들의 감수성이 더욱 충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나 엇나가는 행동의 
일명 불량학생들을 개도시키는 그 방향이나 방법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주변의 훌륭한 많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보며 
역시 아직은 실망하거나 부정적으로 단정짓기엔 좋은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아직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고등학교 교단에 몸 담으며 고등학생이라면 가장 중요한
입시에 대해 알기 쉽고도 소상하게 이야기 하고 있기에 그런 부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학부모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대학 입시도 너무나 복잡하고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내가 취해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것이기에 항상 그 정보의 중심에서 일하는 현직 교사의 이야기와 훌륭한 예시는
대학입시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나로서도 우리 아이가 입시전쟁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어떤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침 햇살은 어둠이 울어야 깨어나고 밝아 온다. 
싱그럽고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아이들도 정성스레 키우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는
어둠 같은 어른들의 고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오월 이맘때면 해 본다. 

 

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인연이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이라면, 그 다음이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선생님에게는 믿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존재이다. 
분명 아이들이 방황하는 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돌봐주지 않은채 그저 불량학생라 단정지어 버리고 방치한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그저 자신을 좀 봐달라고, 관심를 가져달라고 온몸으로 이야기 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른들이 보듬어 주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더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요즘은 맞벌이 부모들이 많아 아이들에게 시간과 관심을 충분히 쏟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준다면 분명 집에서 받은 상처도 충분히 아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얼마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많은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을 수 있기에. 
이 세상에 훌륭한 선생님들이 더욱 많아져서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무수히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침묵과 반항은 상대가 알아주길 원한다는 신호이며, 알아줬을 때 치료와 치유가 이루어짐도 배웠다. 

결국 좋은 학교는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내 자식의 입장과 처지에서 바라보는 부모의 눈길, 
진한 사랑이 묻어나는 선생님의 따스한 눈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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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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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 가게라니, 참으로 어색하다. 
요즘은 마트가 가장 보편화된 식료품점의 형태이기에
식료품 가게라는건 뭔가 그 옛날 우리나라의 구멍가게가 생각나기도 한다. 
분명 크지 않은 오래된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의 이야기 일텐데, 
그에게 어떤 미스터리한 일이 생기게 되는 걸까?


작은 식료품 가게의 주인인 만체보는 아랍계인으로 오랫동안 파리에 살고 있지만 
이방인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속에 변화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밤, 묘령의 여인 캣으로부터 자신의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는지 그를 감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만체보의 식료품 가게 건너편에 사는 캣의 작가 남편을 감시하게 되며 
만체보의 무료하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그는 그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며 
자신의 주변에서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던 많은 일들의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또다른 인물인 '나'는 카페에서 일하던 중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을 받게 되며 
어떤 정보도 없이 낯선 사람을 따라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을 정해진 시간에 하며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온다. 
결국 마지막에 그에게 일을 의뢰한 벨리비에씨를 찾아가 자신이 가졌던 의문에 대해 확인하고자한다. 
과연 만체보는 그가 감시하던 작가의 외도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까? 
'나'는 자신에게 알수 없는 일을 의뢰한 벨리비에씨의 의도를 알아내게 될까?




만체보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 없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아내인 파티마에게 꽉 잡혀 산다. 
담배 하나도 자신이 피고 싶은 만큼 피지 못하지만 만체보는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지내왔다. 
가족들을 위해 머나먼 타지에서 파리로 정착해 왔지만 그곳의 사람들 속에서 그는 아직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그는 모두가 동경하는 파리에 살지만 그 역시 관광객들과 다를 바 없는 위치다. 
그러던 만체보에게 주어진 흥미로운 임무는 그의 일상을 바꾸게 된다. 
이때까지 그가 반복적으로 해오던 일들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당연시 여기던 가족들의 일상에도 의문을 가지며 진실에 대해 알아내고자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만체보가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아무 의심 없이 정해진 시간에 행해지던 많은 일들이 그가 새롭게 맞게 된 '사립탐정' 일로 인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며 의문을 품게 되고 가족들의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이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참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지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가지며 살고, 
챗바퀴 돌듯 정해진 일상이 매일 반복되니 말이다. 
만체보씨처럼 일상의 작은 변화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뀔수도 있지만 
지루한 그 일상마저 깨질까 다들 조심스럽기만 하니, 
무기력했던 만체보씨의 변화와 그 과정이 더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름 모를 사람의 손 인사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 도시에서 만체보의 인사는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파리에서는 수신인과 발신인이 정확치 않은 메시지가 수없이 오갔다. 



만체보와 대조를 이루며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는 '나'의 이야기는 
도대체 왜 각자 다른 이야기가 따로 전개되는 걸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만체보씨와의 연관성은 커녕 전혀 다른 이야기로만 느껴졌으니까. 
사실 제목이며 표지를 봤을때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나'의 이야기는 정말 미스터리했다. 
의미 없는 이메일, 매일 일이 끝나고 전해지는 꽃. 자신이 무슨일을 하는지도 모르는체 
혼자 이메일을 전달하고 꽃을 받으며 '나'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결국 이어질 것 같지 않던 두 이야기가 신기하게 합쳐지는 그 순간, 
우리가 궁금해 했던 비밀과 이야기의 실마리가 술술 풀리며 각자의 이야기로 전개해야 했던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몸은 달아날 준비를 했다. 
남이 강요한 내 모습에서, 
나 자신에게서, 
스스로 만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파리는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 보는 도시, 낭만이 넘치는 도시라 불리는 로맨틱한 곳이다. 
그런 파리를 배경으로 하지만 만체보씨가 살고 있는 그곳이 파리라는 사실을 나는 계속 잊고 있었다. 
아마 만체보씨가 아랍계 사람이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자 역시 같은 처지이기에 만체보씨를 빌어 자신의 상황을 투영시켜 이야기를 써낸 것이지 않을까 싶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쉴새 없이 이어지기에 도저히 중간 중간 끊어 읽을 수가 없어 쉼없이 읽었던 것 같다. 
이야기가 풀리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만체보씨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정말 통쾌했던 것 같다. 
미스터리하지만 유머러스 하기도 하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도 너무 어둡게만 쓰진 않는, 
나처럼 스릴러 소설은 너무 무서워서 읽지 못하지만 묘한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추천해 주고 싶다. 



체스에서는 흑과 백이 중요하거든. 인생에서처럼 말이다. 
승자는 한사람뿐이야. 흑이나 백 중 하나지. 인생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체스에서는 몇 번을 움직였는지, 그 작은 움직임의 총량에 따라 승자가 결정돼. 인생에서처럼. 
회도 많이 주어지고 실수하는 건 당연해. 한두 번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적이지만... 
거듭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패배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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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
김여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또 지독한 이별을 겪으며 헤어지기도 한다. 
그것을 수없이 반복하다 사랑의 결실을 맺으며 더이상 연애세포가 생성되지 않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나 역시 이제 사랑이란건 가슴 터질듯한 그런 사랑이 아닌 아이들을 향한, 
가족을 향한 따뜻한 감정이 주가 된 사랑이 더 익숙해 졌다. 
죽을듯이 힘들고 슬펐던 이별을 겪었던게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럴때마다 눈물을 훔치며 마음속에 맺힌 수많은 말과 감정을 일기로 또는 글로 풀어내곤 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들을 그렇게 터뜨려 버려야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눈물자국 묻은 일기 또는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본 기억,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그 옛날 싸이월드가 유행이었던 그 시절, 감수성 가득 담긴 글을 쓰곤 했는데 
지금 보면 아마 이불킥 백만번은 하겠지.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질 걸 알면서도, 아니면 또 더 의식해서 내 마음을 비꼬고 비틀며 
암호처럼 썼던 글들이지만 나는 그 짧은 글귀를 보아도 그당시 나의 심정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이 읽기를 바라며 쓰기도 하고, 그냥 이 세상이 원망스러워서 푸념식으로 쓰기도 하고.. 
친구든 가족이든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결국 나 혼자 쓰는 글이지만 
누군가 읽고 같이 공감해 준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큰 위로가 되니 
아마 저자도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이런 글들을 써온 것이 아닐까. 



지겹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반복되는 이 과정. 
경험이 많아지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고들 하는데, 잘 모르겠다. 
가끔은 아무도 나에게 깨달음이 될 만한 것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이 들땐 힘이 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도대체 힘이 되는 일들이 뭘까? 운동? 놀기? 여행? 

사실 정말 고통스럽고 힘이 들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이 그 힘듦을 떨쳐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뜻한 이불속은 아마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서늘한 공기 속에 후끈한 이불속에 누워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울기도 울고, 생각도 하고..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기분을 그대로 휘갈겨 쓰기도 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내가 처음 했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잊혀지기도 한다. 

난 그렇게 나만의 이불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이겨내곤 했다. 


아마도 저자는 많은 사랑을 해보고 또 이별도 겪어봤나 보다. 

분명 아름다운 사랑만 해왔다면 이런 글들이 써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희망적이거나 밝은 글들은 아니다. 뭔가 깊은 새벽녘이 더 잘 어울리든 글들. 

처음 읽었을때 알쏭달쏭한 글들도 여러번 되새기며 읽으니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처해졌던 상황이 조금은 짐작이 되기도 했다. 

나는 언제적 느껴봤던 감정들인지 잊고 지냈던 젊은날의 감수성 넘치던 내가 생각나서 뭔가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많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많다는 것. 
이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걸까 
나를 허비하지 않는 걸까. 
나는 성장 중인 걸까 멈춰 있는 걸까.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헤어짐을 겪으며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이라는게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고, 
치열하게 다 토해내며 이겨낼 수도 술의 힘을 빌어 바보같은 짓을 수십번 반복해야 잊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순간의 감정을 글로 써내려 간다면 훗날 다시 그 글들을 읽게 되었을때 그 순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같은 실수, 상처 받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나만의 극복 방법이었던 것 처럼 저자 역시 
힘든 순간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많이 써내려가며 그 순간들을 수집해 뒀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쓴 글을 지금 다시 본다면 두 손이 다 오그라들지도 모르겠다. 
비록 나는 아련한 예전을 기억하며 읽었지만 지금 한창 뜨거운 사랑과 차가운 이별을 반복하며 지내는 젊은 청춘들은 
이 책이 그들의 마음에서 격하게 공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을 읽을때면 미숙하지만 정말 사랑이 전부였던 그 시절이 그리워 지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안정적인 내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지금과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과거를 되내이고 또 곱씹으며 그리워 하기도, 
또 안도하기도 하며 현재를 살아나갈테니 말이다. 



나는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 정면을 향해 걸어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나에게는 가만히 서 있는 게 자랑이다.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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