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무녀, 무당이라는 이미지는 썩 좋은 이미지로 생각 되진 않는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겠냐만은 귀신이나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쉬이 접해볼 수 있는 사람이지도 않거니와 긍정적인 이미지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신내림이니 굿이니 하는 것은 더욱 신빙성이 없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 조선시대에선 어땠을까?
여성의 지위가 높지도 않았을진데 무녀라니, 사람들의 인식이 어땠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그런 무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만나자마자 많은 기대가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시대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낯설기도 하고 또 설레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붉은 나비 같기도 하고 붉은 꽃 같기도 한 오묘하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표지를 홀린듯이 펼친 순간,
다가서기 힘들지만 매력적인 신비한 이야기가 펼쳐지겠다는 기대감이 함께 밀려왔다.
저들이 불경하다 낙인찍을수록 무녀의 신이함은 번쩍인다는 것을,
저들이 음사라 손가락질할수록 무격의 신령은 영광스럽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양반과 사대부들의 세상, 기근에 시달리고 양반들에게 천대 받는 백성들은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양반은 상놈이 되고 상놈은 양반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이루어 주겠다는 미륵의 개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용을 다루어 비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용녀 원향과 미륵에게 점지 된 여환은 큰비가 내려 도성이 모두 쓸려버리고 그곳에 자신이 왕이 되어 새로운 미륵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그렇게 큰비가 내리기 전, 도성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나고 도성에 가게 되지만 원향의 미륵과 여환의 미륵은 서로 다르고 그로 인해 함께 하던 그들의 여정도 서로 다른 길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이 염원하는 큰비는 내려줄 것인가? 미륵의 시대는 당도할 수 있을까?
그 옛날 사람들에게 물, 비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농사는 그들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에 물이 없다면 그것은 곧 죽음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무속인의 힘을 빌어 기우제를 지내며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가장 최악의 순간에 무녀들을 찾아가며 그들의 힘을 빌려보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박해를 받는 것이 또 무녀였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을 했던 것처럼 분명 그들의 영험한 힘에 의지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돼면 처참히 버려지게 된다.
그런 무녀들의 힘들었던 인생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한 인간으로써, 또 한 여자로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세상의 그림자를 안고 죽어야 했던 무녀의 큰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무녀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 세상에 잇숙해지지 않기 위해,
원향은 그렇게 무無의 시간을 살았다.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 했던 건 무녀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표현이었다.
기구한 원향의 사연이며 많은 무녀들의 이야기와 무녀들의 굿 장면등 꼭 조선시대 무녀들의 곁에서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본것 처럼 세밀한 표현과 낯선 단어들이 나오며 그 시대적 배경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작가가 타임슬립을 한 것은 아닌지, 아니라면 정말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접해야 했을 수많은 방대한 지식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띵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정보와 상상력이 결합된 소설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큰비는? 온것인가 오지 않은 것인가?
사실 정말 큰비가 어마무시하게 내려서 부패한 세상이 뒤집어지는 통쾌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허무하게도 그들의 역모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큰비라는 것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실질적으로 보여지는, 그들이 원했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원향과 여환 모두 각자에게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가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다면 그것을 큰비가 내렸다 지나간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은 나도 팍팍한 현실에, 말도 안돼는 빈부격차에 이 사회가 싫고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비관적인 현실에서 누군가 이상향을 제시하며 함께 그런 시대를 만들자고 얘기한다면, 그냥 콧방귀 끼며 무시할 수 있을까? 나약해진 심신에 그런 달콤한 이야기는 분명 더 빠르게 스며들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준 세상에서 수동적으로 변화를 바라고만 있다면 아마 그에겐 그 어떤 변화도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바꿔 줄 큰비는, 누군가가 내려주는 것이 아닌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도록 시원하게, 올바른 정도를 깨우칠 수 있도록 알아서 내려주지 않을까.
우리 인간들은, 알 수 없는 힘이 시간의 흐름 위에 우리를 올려놓은 그 시간을 살아갈 뿐인 것을,
각자의 시간 위에서 그 시간을 타고 흐를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