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지능 수업
쑤린 지음, 원녕경 옮김 / 다연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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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있지만 10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며 이사람 저사람 많이 만났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상기되는 상사가 있는 반면 진짜 길에서 만나면 한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유발했던 상사도 있었다. 그렇게 말단 부하직원으로 일하다 점점 한단계씩 올라가며 어느새 내가 수십명을 이끄는 리더 자리에 오르게 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내게 주어진 큰 책임감은 날 너무 힘들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여러가지 위치를 직접 겪으며 리더가 되기 보단 누군가에게 귀속된 수동적인 자리에 안주하고자 했던 나를 보았다. 열정, 야망 이런건 나를 짓눌렀던 책임감의 무게에 바스라지듯 사라져 버렸기에..


또한 내가 그렇게 IQ가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세계를 이끄는 수많은 리더들은 정말 대단한 지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똑똑하고 방대한 지식과 화려한 스펙으로 부하직원들 기를 팍팍 눌러버릴 수 있는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단지 높은 지능만으로는 절대 리더로서 성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글로벌 리더들이 하나같이 주목하고 또 열광했던 것이 바로 감성지능, 우리가 자주 들었던 EQ이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오를 수록 더 냉철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은데 감성지능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목표라는 것이 생길 것이다. 한단계 한단계 올라가며 언젠가는 리더의 자리에도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인정받고 존경 받는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리더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회사의 이익도 창출해야 하고 부하직원을 관리해야 하고 팀 전체의 목표와 더불어 자기 자신의 목표도 이루어내야 하니 녹록한 자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대부분 부하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 소통이 되지 않는 상사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서로의 관계도 또 업무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과의 소통은 높은 지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바로 그것을 위해 EQ가 필요하며 저자는 그런 감성지능을 종합한 관리자적 감성지능을 PEQ라 칭한다. PEQ란 강인한 정신력과 우수한 조화 능력 그리고 부하 직원을 이끄는 감화 능력을 나타낸다. 분명 일을 하며 이익을 내는 방법이나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같은 일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관리자에겐 이런 능력 보다는 사무실을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고 자신과 직원들의 재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하며 업무 이외에도 생활에 더욱 많은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여긴다. 



한 때는 기술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을 믿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정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건 사람의 의지였어. 




사실 앞으로 내가 다시 리더의 자리에 갈 수 있을진 확신이 없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회사를 다니며 힘들었던 일이나 괴로웠던 순간들이 많았기에 다시 시작할 용기도 선뜻 생기진 않는다. 리더로서 성공하기 위한 포인트라곤 하지만 사실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리더들을 위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단지 사회생활을 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속의 수많은 관계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분명 적용 가능하고 필요한 이야기들이 책속에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감성지능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공감, 소통이기에 그것이 비단 회사에서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통의 부재로 인한 커다란 피해를 탄핵사태를 통해 겪었고 또 그렇기에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특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관리자적 감성지능과 그에 수반된 많은 자질들이 우리가 따라야 하는 리더들에게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내가 한창 사회생활을 하며 책임감과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힘들었을때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과는 많이 다를 수 있었을까? 후회하는건 아니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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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페미니즘 - 인간의 조화로운 새 지평을 위해
이충현 지음 / 물병자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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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사회 시간에 가부장제에 대해 배우며 속에서 끓어 오르던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여자는 나약하고 배우지 못했기에 남자의 소유이며 보호 속에 지내야 한다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인 나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고대부터 시작된 가부장제로 인해 여성들이 억압 받고 차별 받아왔다고 주장하기에 가부장제는 분명히 없어져야 하며 절대 수용될 수 없는 논리라 주장한다. 비단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많은 사람들의 상식에도 이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대부분 자리 잡은 사회지만 아직도 가부장제의 악습이 생활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나역시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고 또 경험했던 은근한 성차별과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뼛속까지 있는 소위 꼰대라 지칭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전면으로 내세운 책에서, 페미니즘의 사상에 가장 위배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고대 철학가들의 해석 방식을 수용하고 또 재해석 한다는 건 어쩌면 페미니스트들에게 공분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그들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를 충분히 파악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해석을 하는 것이 저자의 목표이다. 그들이 주장하던 남성의 우월감과 그들이 옳다고 내세웠던 상징들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분석하여 잘못된 부분들을 찾아내고 또 그런 과정에서 성숙한 비판과 재해석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또 다른 페미니즘의 한 단면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 신의 창조 그 자체가 여성을 불완전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런 식으로 바라 본 고대인의 잘못된 해석이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듭니다. 



나는 열렬한 페미니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어쨋든 여성으로서 이때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받아 왔을 억압에 대해 당연히 반대하는 바이며 앞으로도 성의 차별 없이 평등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생각 이면에 나에겐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고착된 가부장적인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순간 순간 느끼게 되었다. 머나먼 고대 시절부터 철저히 답습된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그로 인한 대립구도만 생각해 봐도 나역시 그런 구도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기원과 생각이 진화 된 과정이나 그것을 확장시킨 역사나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현대에 남아있는 가부장제의 잔재를 떠올리게 해주며 무엇이 잘못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녀 대립의 문제를 넘어 명확하게 두 주체를 나누고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이분법적인 가부장제의 한계를 문제 삼습니다. 

 

하지만 과거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였다해서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이 과거의 남성들과 같이 과격하고 무조건적인 남성 혐오 사상을 드러낸다는 것은 잘못된 페미니즘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페미니즘 역시 절대 여성만을 위한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분법적인 자세로 남성과 여성을 나눠 구분하며 전적으로 어느 한쪽이 우월하고 어느 한쪽이 열등하다는 것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 가기 위한 둘이 아닌 하나가 되자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 사상이라 이야기 한다.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같을 순 없기에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관계.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역시 여성이지만 여성의 나약함을 내세우거나 겉으로 보여지는 여성의 신체나 외모를 가장 큰 경쟁력으로 여기며 그것에 매달리는 많은 시람들을 보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여성성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있다. 아마 그 옛날부터 가부장제가 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이 배움의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우리 세계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곳이 되어 있었을 것이란 생각 또한 들기도 했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위한 사상이고 운동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을 가지거 있던 내게, 페미니즘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생각이란 것을 느끼기 해주었던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준 책이었던것 같다. 




특별하고 고유한 개인들이 자유롭고 다채롭게 하나의 전체가 될 때 완전하고 아름다운 하나 또는 전체가 될 수 있습니다. 자유는 차이를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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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진짜 인생은
오시마 마스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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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이, 인생이 진짜 나의 인생이 맞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당신의 진짜 인생은? 이라 묻는다면 난 자신있게 진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 훌륭하다는 인생도 스스로가 확신이 없고 자신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며, 비록 보잘것 없는 평범한 인생일지라도 내가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그 누군가가 나를 대차게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진짜 인생이지 않을까. 


여기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길을 잃고 헤매는 3명의 여성이 있다. 베스트셀러인 비단배를 쓴 판타지의 대가인 소설가 모리와키 홀리, 홀리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에세이를 대필하는 비서 우시로, 홀리의 팬으로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긴 슬럼프에 빠진 마미. 글을 쓴다는 동일한 선상에 서 있는 이들은 마미가 편집자인 가가미의 추천으로 홀리의 제자로 그녀의 집에 들어가게 되며 함께 생활하게 된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홀리는 마미를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고양이 처칠이라 부르며 마미에게 호감을 표현하게 된다. 십수년간 그녀를 보필하고 또 그녀의 에세이를 대필하며 지내온 우시로는 마미의 등장으로 집에 감도는 묘한 활기에 경계심과 어느정도의 질투심도 느끼게 된다. 마미는 홀리의 집에 묘한 생기를 불어 넣으며 소설이라는 외길을 벗어나 고로케를 만들며 자신의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게 된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 
그때 그 말을 꽉 붙잡은 것은, 무엇보다 마침 잘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 자각은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거기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탈출 방법이 어디 없을지 찾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끊임 없이 자신의 길을, 인생을 찾으려 노력한다. 마미로 인해 다시 글을 쓰게 된 홀리도,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다 홀리의 비서가 되어 글을 쓰게 된 우시로도, 제자로 들어와 소설을 쓰고자 했지만 고로케를 만들며 반찬가게를 하게 된 마미도 비록 헤매기도 하고 처음부터 원했던 삶을 살아가진 못했어도 서로가 촉매가 되어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나에게도 다시 한번 나의 앞날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했다. 



애당초 인생에는 정도가 없다고. 샛길도 없고. 어디를 걷든 어차피 그냥 길이야. 우리는 말이지, 다 길이 아닌 길을 가게 돼 있어. 나나 당신이나, 그 녀석이나 홀리씨나. 




본인이 원하는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넘어지기도 하도 잘못된 길에 들어 방황하기도 하며 그렇게 인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또 길을 찾아가기 마련이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고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결국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된다면 그것이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채 가짜 인생에 갇혀 버릴지도 모른다. 나역시 한번도 나의 진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과거의 일을 후회한 적도 많고 지금 현재의 삶이 팍팍하다 느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인생이 있을 것이란 생각마저 현실에 묻혀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이책의 그녀들은 끊임없이 길을 찾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서 내 삶과 내 인생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스쳐 지나갔던 많은 관계 속에서 난 어떤것을 그냥 지나쳐 버린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하며 앞으로 다가올 내 진짜 인생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길 바라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과 희망을 가져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태어나고 죽고, 살아남기도 하고 살아남지 못하기도 하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그런 것들이 어느 쪽도 아니게 어정쩡하고 애매모호한 부분이 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른다. 뒤집어 보면, 또는 이렇게 비추어 보면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지는 경계 같은 지점이, 이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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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휘게 - 가장 따뜻한 것, 편안한 것, 자연스러운 것
샬럿 에이브러햄스 지음, 홍승원 옮김 / 미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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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덴마크에서 날아온 휘게라는 말이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그전 한때 욜로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휩쓸어 버렸던 적이 있었지만 난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한번 사는 인생이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엔 내게 주어진 책임감이라는 짐을 훌훌 털어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기에.. 유럽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활방식,교육을 동경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너무나 맞지 않는 정서에 단지 꿈으로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휘게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단순히 웰빙, 힐링이랑 비슷한 뜻이지 않을까 싶었고 덴마크 사람들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가 겹쳐지며 뭔가 은근한 기대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행복지수 1위에 빛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가져온 자신들의 가치관이 담긴 휘게라는 정신이 그다지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느낀건 휘게라는 단어의 뜻을 콕 집어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에겐 너무나 중요한 정신이지만 그들 역시 휘겔리한 행동이 어떤것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내용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 한다는 것과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과 따뜻하고 포근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덴마크는 정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에 세금이나 기타 국민으로서 해야할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고 그만큼 또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복지에 많은 힘을 쓰기에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히 가족들과의 시간이나 개인 여가를 위한 시간 또한 충분할 것이기에 그들이 추구하는 휘게라는 정신이 뿌리 깊게 박힐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역시 덴마크 사람이 아니기에 만약 덴마크 사람이 쓴  이야기였다면 100% 공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역시 영국인으로 휘겔리한 삶을 꿈꾸며 그것을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려 시도하고 노력해 보며 깨달은 휘게에 대한 이야기들이기에 훨씬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저자 역시 덴마크 사람들과 똑같은 정서와 생활방식을 따르려 하기 보다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맞는 휘게의 정신이나 방식을 적용하려 노력했기에 나역시 고정된 개념의 휘게가 아닌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좀더 융통성 있는 방식으로의 접근이 가능했던 것 같다. 덴마크 사람들처럼 시간과 여유가 넘치고 국가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교육하며 직장생활이 유동적인 나라에서 사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내 상황에서 내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보다 휘겔리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내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패했다는 생각을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에게 있어 휘겔리한 순간은 어떤 순간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행복한 순간이나 빛나는 순간이 아닌, 정말 나 자신이 행복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아이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자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고 음악도 듣는 그 1~2시간의 짧은 순간이 나에겐 가장 휘겔리란 순간이 아닐까 싶다. 각자가 느끼는 순간은 모두 다르겠지만 화려한 삶의 방식이나 성공한 누군가의 생활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한 순간을 가지고 또 느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휘게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멋진 음식과 화려한 디너파티가 누군가에겐 행복을 줄진 몰라도 나에겐 그것이 휘게는 아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소소한 저녁시간이나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시간처럼 아무렇지 않게 보내던 일상의 시간들도 충분히 휘게의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보며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오늘도 휘겔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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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스티븐 리츠 지음, 오숙은 옮김 / 여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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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이란 어떤 선생님일까? 요즘은 대학 잘 보내는 선생님, 입시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 또는 내신 잘 받게 해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으로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될 학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선생님은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란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건, 흉흉한 학교에 대한 사건, 소문들과 학교란 곳이 아이들에게 더이상 즐거운 배움터가 아닌, 무시무시한 입시전쟁을 치르러 가는 전쟁터처럼 느껴지는 지금의 현실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삶 자체가 심한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듯이, 모두가 평등해야 할 교육의 현장도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통탄하며 선진국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었지만, 자칭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미국에서의 교육 격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며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과 안타까움이 함께 밀려왔다. 미국의 교육이라면 그들이 외치는 평등이라는 이념하에 누구나 다 양질의 공교육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이 책의 배경이되는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인 브롱크스의 아이들은 너무나 위태로워 보인다. 마약과 범죄에 그대로 노출되어 희망도 꿈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양지로 희망으로 이끌어줄 학교와 교육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학교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이자 교사인 스티븐 리츠 역시 우리가 생각하던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았다.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오지도,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농구를 좋아하고 농구화에 운동화를 좋아하는 철부지였던 그는 그저 우연히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만났지만, 브롱크스 아이들과의 운명적 만남을 시작으로, 라디에이터 밑에서 우연히 꽃을 피운 수선화 덕분에 아이들의 인생을 좀더 멋지게 바꿔줄 훌륭한 교사로 자라나게 된다. 거친 말투와 무서운 외모 뒤에 가려진 아이들의 능력과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 맞는 눈높이로 아이들과 대화하고 그 재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과정에서, 식물을 기르고 수확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인생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발견하며 그는 아이들의 교실에 초록의 빛을 비추게 된다. 



나는 채소를 키우지만 내가 키우는 채소는 학생과 학교와 기회와 삶을 키운다. 






평균 출석률 40%, 졸업률 17% 에 불과한 아이들을 100%에 가까운 출석률과 졸업률을 기록하고 주 연합고사 합격률을 극적으로 올리며 수많은 일터를 만들고 지역사회의 풍경을 바꾸며 학생뿐만이 아닌 그 도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변화시킨 것. 이 일을 해낸 사람이 스티븐 리츠와 그의 제자들이다. 그로 인해 그는 백악관은 물론이며 교황까지 접견하는 영광을 누렸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멋지지만 그 무엇보다 방치되고 버려지다시피한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 그가 해낸 가장 훌륭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고난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그 동네가 전부인 줄 아는 우물안 개구리였지만 선생님을 통해 새로운 것,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의지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기에 그가 포기하지 않고, 또 권력에 대항하며 머리 숙이지 않은 그 모습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선생님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성적 향상이나 우등 배지를 위해, 또는 내가 머리 쓰다듬어주기를 바라고서 일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달성하고 싶은 것을 위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숲 어린이집이니, 자연유치원이니 아이들이 어린시절 자연과 함께 커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와 관련된 많은 기관과 교육법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재능에 대해 알아나가야 할 시기엔 단지 공부만을 시키기 위해 학교에 다닐 뿐이니 커가면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며 학교를 공부를 위한 감옥처럼 갑갑하고 답답한 곳으로 인식하게 되버린다. 하지만 대학을 가는 것이, 누구나 다 일반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올바른 길은 아니다. 자신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일텐데 지금 우리의 교육은 너무나도 획일화되어 모두가 똑같은 길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혼란스럽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시기이 흙을 밟고 만지며 느끼는 안정감과 식물을 직접 키우며 느끼는 책임감에 수확을 하며 느끼는 뿌듯함과 노력의 댓가를 깨우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좀더 성숙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나갈 수 있을것이란 생각에 저런 교사와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가 너무나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나라의 교육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미국에 있는 저자처럼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멋진 선생님들이 우리나라에도 분명 많이 계실 것이라 믿는다. 식물이 가진 어마무시한 힘을 여실히 느꼈기에 우리나라에도 단지 입시만을 위한 학교가 아닌 아이들이 정말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많은 형태의 학교들이 더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 보았다. 모든걸 쏟아 붓는 열정을 가진 선생님과 빛나는 재능을 가진 우리 아이들이 만난다면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들도,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도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이 세상 아이들 모두가 평등하게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교육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두려워하고 우리 안의 진실을 말하기를 주저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말해야 할 따 침묵하는 처세술에 따른 것이라면, 
생명과 빛의 신성한 호수는 더는 우리 영혼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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