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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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삶을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yes or no 이런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깨닫는건 우리 삶은 절대 그렇게 쉬운 선택지만을 제시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걸까? 스포츠는 극명하고 단순하게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지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승자일 뿐. 잔인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확실한 보상이기에 그 힘든 과정을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스포츠에 또 다른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스포츠가 가지는 단순하고 순수한 의미는 빛을 잃게 된다. 베어타운 사람들이 종교와도 같이 여기는 하키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용서.

스포츠는 그 모든 걸 하룻 저녁에 맛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오직 스포츠만 그럴 수 있다.


 

<베어타운>에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인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팀내 에이스인 케빈의 성폭행 사건으로 팀이 와해될 위기에 처한 베어타운 하키팀의 이야기다. 성폭행 피해자인 하키팀 단장 페테르의 딸 마야는 피해자임에도 하키팀에 위기를 불러왔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 결국 하키팀은 돈과 권력에 의해 다시 이어지지만 하키팀과 함께 존재하는 검은 재킷의 일당들과의 마찰과 주장인 벤이의 커밍아웃은 베어타운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작은 마을 베어타운에서 착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소름끼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분명 마야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사람들은 마야를 비난하고 복잡한 진실을 덮은채 단순한 거짓을 믿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하키팀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며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올바른 선택이란 오히려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역시 겁 많은 한 사람으로서 그 상황에서 용감하게 진실을 선택했을 것이라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키란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는 것이니까. 베어타운 대 나머지 전부이니까.

작은 마을 베어타운에서 하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마치 우리 사회를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다. 성폭행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여성혐오,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 실업과 빈부격차, 정치까지 다양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담고 있기에 베어타운에 빗대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성폭행을 당한 마야 뿐만이 아닌 그 가족 모두가 겪는 고통으로 인해 점점 무너져 가는 한 가정의 모습,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서로를 이간질하는 기회주의자 정치인,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되는 벤이까지 우리가 그간 쉽게 봐왔던 문제들을 여실히 드러내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그간 직면하지 못했던 현실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스포츠 클럽은 붕괴되지 않는다.

그냥 없어질 뿐이다.

붕괴되는 건 사람들이다.




전작 <베어타운>도 좋았지만 그 후속작이 나왔을 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1편을 뛰어 넘는 2편은 극히 드물기에 어느정도 비슷한 강도의 이야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훨씬 더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에 흡입하듯 읽어나간 6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은 나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갔다. 하키라는 스포츠는 지금도 낯설고 흥미가 가지 않지만 왜 베어타운 사람들이 하키에 미쳐있을 수 밖에 없는지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희망이 없는 마을에서 그 작은 불씨를 살려줄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아무리 복잡한 이해관계와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도 빙판 위에서만은 공평할 수 있고 그들을 가족처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존재가 하키이기에 베어타운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없이 하키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보다 먼저 책을 읽었던 남편은 스포츠광이기에 베어타운 사람들에게 큰 부러움을 느꼈다. 특별히 연고가 있는 팀이 없는 지역에서 살았던 남편은 그저 아무 이유와 의미가 없어도 자신이 사는 지역 연고이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맹목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팀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활력이 되는지 잘 아는 남편이기에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아닐까 싶다. 비록 베어타운은 한때 증오와 폭력으로 가득차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그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회복해 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뻔하지 않게 이야기 하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도 어느정도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달리 표현할 수 없었던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웃음과 감동으로 잘 풀어낸 작가의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던 것 같다. 엄청난 페이지의 압박에 읽기가 망설여 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한번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는 순간 덮는 것은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법같은 독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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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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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딱딱함과 거리감, 좁히려 해도 잘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이름도 어려운 철학가들의 사상은 단편적인 명언처럼 여겨졌고 한번도 그것이 내 일상생활에 깊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시험을 치고 나면 휘발되는 텍스트일 뿐.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문학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그럼에도 외면하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이것저것 잡식성으로 책을 읽던 내게 시시때때로 읽혀졌던 많은 글 중 하나가 인문학, 특히 철학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철학은 절대 우리 생활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여러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철학이라는 분야의 장벽은 높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올해는 진입 장벽이 낮은 입문서 성격의 책부터 시작해 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게 되었다.


 

본래 철학이라는 것은 사회라는 커다란 시스템의 일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극히 평범한 사람이

‘더욱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 할까? 저자가 말하는 가장 큰 이점은 첫째,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고 둘째,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으며 셋째, 정확한 어젠다를 설정하고 넷째,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철학 입문서와는 조금 다른 이 책은 지루함을 유발하는 시간 순서가 아닌 철학자들이 남긴 다양한 개념들을 콘셉트에 따라 정리해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네가지 콘셉트에 따라 나누어 깊이 통찰한다. 과거의 철학자가 남긴 사회에 대한 고찰이 우리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현실의 쓸모에 기초해 유용성을 토대로 쓰였고 핵심적 철학 사상 외에도 경제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언어학의 내용도 함께 다루고 있어 여타 철학 입문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게 한다.

 

 

 

일상적 고민부터 비즈니스 전략까지 다양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이 굉장히 쉽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철학자들의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굉장히 지루하기도 하고.. 다행히 저자는 사람들이 지루해 하고 힘들어하는 포인트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은 배제하고 편하게 다가가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사실 철학자들이 그 사상을 펼쳤을 때와 지금 우리 시대의 갭은 굉장히 크기에 어찌보면 지금 우리에겐 당연시 되는 명제들을 보며 그 오류에 대해 실망하거나 부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철학자들이 살았던 그 시기의 사고와 시대상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시간이 흘러도 우리에게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철학이 실용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느정도의 거리감을 느끼며 힘들게 도전하고 읽어내야 할 학문이라는 생각이 컸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철학이 우리 생활에서 끊임없이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기나 학파에 상관없이 주제에 맞춰 엮어져 있어 훨씬 쉽고 이해하기도 쉬웠던 것 같다. 한 철학자에 대해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좀 더 흥미가 생긴 철학자에 대해선 따로 책을 읽어볼 예정이다. 사실 철학은 입문서 조차도 어렵고 지루해서 그 뒤로 점점 더 깊이 있는 독서로 이어지기가 힘든데, 좋은 책으로 시작하는 철학은 절대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꼭 알아야 하고 우리 생활에 적용시킬 것이 무궁무진한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철학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이 책을 통해 모두가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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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미 - <미 비포 유> 완결판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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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 쉬워 보이지만 참 힘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그저 세상의 기류에 섞여 부유하듯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새로운 곳, 새로운 일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용기는 언제나 대단하다. 하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분명 새로운 자극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루이자에게 윌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 살던 루이자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윌은 영원히 떠나버리고 그 빈자리가 루이자를 힘들게 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루이자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생긴 것 역시 윌 덕분이다. 모든 사람들의 꿈의 도시 뉴욕에서 시작되는 루이자의 마지막 이야기 <스틸 미>는 끝이라는 아쉬움과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라는 묘한 흥분이 뒤섞인 기대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몇 분 동안 생소한 음식을 먹고 이상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순간에만 존재했다.

온전히 현재에 몰두하고 감각이 살아 있었고,

주위의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려고 내 존재 전체가 열려 있었다.

나는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의 딱 한 곳에 있었다.

 


윌은 항상 루이자가 새로운 곳으로 대담하게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루이자는 영국을 떠나 뉴욕의 상류층 집에 어시스턴트로 고용되어 일하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이제껏 보지도 겪지도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루이자는 영국에 있는 연인 샘과의 물리적 거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이별의 슬픔을 겪게 되고 어시스턴트 일도 오해를 받아 해고 당하게 된다. 한편 뉴욕에서 윌과 꼭 닮은 조시를 만나며 그녀는 다시금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사건들 속에서 뉴욕에 정착하고 그것을 이겨내고 나아가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멋진 여성의 당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삶은 흥분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세계에 발 담그고 있지만 다른 한 발은 이민자라는 뼈 아픈 현실 속에 담겨 있기에, 루이자의 뉴욕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게다가 너무 먼 거리에 있는 연인 샘에게 새롭게 온 불여시(?) 파트너를 신경 써야 하고 또 윌과 너무 닮은 조시가 끊임없이 주위를 배회하며 신경 쓰이게 하니 루이자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루이자는 꿋꿋이 뉴욕의 삶을 살아가고 결국 해고를 당해 막막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 같았으면 당장 짐 싸서 고향으로 돌아갔을텐데, 그래도 그녀가 진심을 담아 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그 무엇보다 윌이 자신에게 바랐던 것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통통 튀는 그녀만의 매력도 크지만 언제나 진심을 다해 상대방을 대하는 그녀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루이자를 좋아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평생 윌을 잊지 못하고 윌이 그녀의 삶에서는 항상 큰 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다. 결국 윌을 닮은 조시에게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루이자에게 윌이란 너무나 크고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일테니까.

 


'언젠가는' 그 충격을 느끼지 않을 때가 올까.

무의식적이지만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하는 자신이 의아했다.

 

꿀벌 타이즈를 신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랑스런 루이자를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그녀가 이제는 윌을 떠올리며 슬프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윌이 남겨준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더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나기에, 비록 사랑에 울고 웃으며 윌을 영원히 잊진 못하더라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틸 미>를 읽어보니 앞으로 루이자의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녀가 가진 사랑스런 매력들이 뉴욕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간다면 어떤 어려움이 찾아 와도 루이자처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도 이렇게 해냈으니 당신도 해낼 수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루이자를 만난다면 더 많은 모험가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윌이 뭐라고 했더라?

그날을 붙들어야 한다고. 기회가 오면 끌어안아야 한다고.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조시를 거절했다면, 영원히 그걸 후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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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 페미몬스터즈에서 믿는페미까지―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싸우고 살아남았는가
김보영.김보화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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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살면서 불편하고 불쾌했던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직접적이고 큰 피해는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 만연하게 자리잡은 불합리함을 항상 느끼고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 배우며 자랐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접했을 땐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가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다고 이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두 딸이 태어나며 더이상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생각의 변화를 겪게 되며 서서히 페미니즘에 물들어 갔던 것 같다. 당당하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할 정도까진 못되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소리 없이 그들을 응원하곤 했다. 그래서 내게 오게 된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역시 반갑고 즐겁게 읽게 되었다.


폭력의 피해자였던,

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은

우리가 조심할 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고 방조하는

당신들이 바뀌어야 하는 거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페미니스트 그룹 10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메갈리아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들의 활동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추모에서 시작된 '페미몬스터즈'와 유쾌하게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불꽃페미액션', 대학교 내의 성폭력을 귀여운 펭귄 캐릭터와 허들링에 담아낸 '펭귄프로젝트', 교회 내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여성 차별을 수면위로 끌어내는 '믿는페미'등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페미니즘 운동을 벌이고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의 다양하고 기발한 활동이 담겨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은 크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2018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미투를 통해 여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성폭력과 차별이 더 크게 공론화되며 페미니즘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피해자임에도 숨겨야 했고 보호 받지 못했던,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 있었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그것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이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며 위로를 받고 또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책 속의 10팀은 모두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고 모두 각자가 더 중요시하는 쟁점을 중심으로 서로 다르게, 정말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 연대하며 페미니즘을 더욱 확대시키고 보편화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 무겁지 않고 유쾌하고 자신들이 더 즐거운 페미니즘 운동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이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미래지향적 운동이다.

 

나 하나가 나선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나 하나 참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간 참고 견디며 보낸 시간들이 사실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닌 이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여성들은 이제 당당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이 사회를 바꾸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아마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들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행적을 통해 나역시 앞으로는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내가 아니니까, 나는 괜찮으니까라고 이기적으로 넘겼던 문제들이지만 이젠 그 무엇보다 앞으로 이 사회에서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이 고스란히 겪을지도 모를 일들이기에 더이상 가만히 두고볼 순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이라고해서 과격하고 무거운 것들이 아닌 독특한 아이디어와 재기발랄한,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들을 담고 있어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깨트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제 더이상 숨어 지내는 피해자가 아닌 세상에 드러나 당당하게 자신들의 언어와 주체성을 내보이고 있는 이 사회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페미니즘이 공기같이 느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다들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세상은 바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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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서 77
마이클 콜린스 외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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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오랜 시간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존재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도 종이로 된 책은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거친 종이의 질감과 짙은 잉크향이 베어 있던 옛날의 책들을 기억하기에, 여전히 내게도 책은 종이로 한장 한장 넘기고 음미하며 읽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다. 책의 역사에서도 아마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는 책들이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책들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인류의 정체성을 일깨운 작품, 책의 역사를 바꾼 의미있는 책들에 대해 상세히 파헤친 <불멸의 서 77>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현존하는 최고의 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아름다우면서도 흥미진진한 안내서인 <불멸의 서 77>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희귀하며 독창적인 책과 필사본의 목적, 특징 및 창작자에 대한 설명을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정리했다. 연대기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인간 지식의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책의 형태도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보여준다.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책에 대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책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오래전에 쓰인 책들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읽히고 익숙한 작품들이 많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형태와는 다른 초판의 모습부터 아름다운 삽화, 저자와 세부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함께 더해져 간단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하나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책에 대한 백과사전이란 말이 가장 적합하게 느껴지는 <불멸의 서 77>을 읽다보면 우선 지금과는 다른 섬세하고 아름다운 책 속의 그림들에 빠져들게 된다. 아직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고 기술이 많이 발전되지 않았음에도 기록으로 남기고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이야 손쉽게 책을 구하고 읽을 수 있지만 그 옛날엔 책 한권이 집 한채 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으니,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책이 가지는 가치가 더욱 컸을 것이고, 책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인류의 정체성을 깨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 순으로 화려한 그림들과 함께 읽다보면 점점 발전해 나가는 책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 작품들이 전해지고 읽히는지 그 이유 역시 깨달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책이야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물건이 되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책이 가지는 위대함과 소중함을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책 자체가 예술 작품과도 같은 예전의 책들은 경이로움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이 이어지고 이어져 내 손에 들린 한권의 책으로까지 이어졌듯이 책이란 우리 인간에게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사람들이 읽었던 작품을 지금의 내가 읽고 있다는 그 긴 시간의 괴리를 뛰어넘는 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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