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 페미몬스터즈에서 믿는페미까지―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싸우고 살아남았는가
김보영.김보화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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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살면서 불편하고 불쾌했던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직접적이고 큰 피해는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 만연하게 자리잡은 불합리함을 항상 느끼고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 배우며 자랐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접했을 땐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가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다고 이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두 딸이 태어나며 더이상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생각의 변화를 겪게 되며 서서히 페미니즘에 물들어 갔던 것 같다. 당당하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할 정도까진 못되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소리 없이 그들을 응원하곤 했다. 그래서 내게 오게 된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역시 반갑고 즐겁게 읽게 되었다.


폭력의 피해자였던,

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은

우리가 조심할 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고 방조하는

당신들이 바뀌어야 하는 거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페미니스트 그룹 10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메갈리아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들의 활동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추모에서 시작된 '페미몬스터즈'와 유쾌하게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불꽃페미액션', 대학교 내의 성폭력을 귀여운 펭귄 캐릭터와 허들링에 담아낸 '펭귄프로젝트', 교회 내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여성 차별을 수면위로 끌어내는 '믿는페미'등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페미니즘 운동을 벌이고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의 다양하고 기발한 활동이 담겨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은 크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2018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미투를 통해 여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성폭력과 차별이 더 크게 공론화되며 페미니즘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피해자임에도 숨겨야 했고 보호 받지 못했던,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 있었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그것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닌 이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며 위로를 받고 또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책 속의 10팀은 모두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고 모두 각자가 더 중요시하는 쟁점을 중심으로 서로 다르게, 정말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 연대하며 페미니즘을 더욱 확대시키고 보편화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 무겁지 않고 유쾌하고 자신들이 더 즐거운 페미니즘 운동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이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미래지향적 운동이다.

 

나 하나가 나선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나 하나 참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간 참고 견디며 보낸 시간들이 사실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닌 이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여성들은 이제 당당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이 사회를 바꾸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아마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들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행적을 통해 나역시 앞으로는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내가 아니니까, 나는 괜찮으니까라고 이기적으로 넘겼던 문제들이지만 이젠 그 무엇보다 앞으로 이 사회에서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이 고스란히 겪을지도 모를 일들이기에 더이상 가만히 두고볼 순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이라고해서 과격하고 무거운 것들이 아닌 독특한 아이디어와 재기발랄한,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활동들을 담고 있어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깨트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제 더이상 숨어 지내는 피해자가 아닌 세상에 드러나 당당하게 자신들의 언어와 주체성을 내보이고 있는 이 사회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페미니즘이 공기같이 느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요.

그리고 다들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세상은 바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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