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는 생활의 즐거움 - 미니멀라이프와 맥시멀라이프의 만남
박윤아 / 소울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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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니멀라이프의 붐이 일었던 시기가 있었다. 나역시 채우기 바쁜 맥시멀라이프였기에 비우는 삶이란 엄두가 나지도 않았고 사실 귀차니즘이 좀 있는지라 그냥 있는데로 살자는 생각이 더 컸던것 같다. 하지만 채우면 채울수록 좁아지는 생활공간에 자꾸만 더 큰 집으로 이사가기를 원하게 되고 아이들이 둘이되니 어마무시하게 늘어가는 물건들에 더이상 감당이 되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기에, 서서히 버리고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물건을 버리자는 결심을 하고 어떤것을 버려야 할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서 사실 그저 쌓아두기만 할뿐, 진짜 내가 쓰는 물건은 몇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옷이 있어도 결국 내게 잘 맞고 어울리는 옷만 계속 입게 되듯 입지 않는 옷은 결국 계속 옷걸이에 걸린채 진열되어 있을뿐이고 그것은 신발, 주방용품, 책등 모든것이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을 결단있게 한번에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쓸 것 같고 필요할 것 같고 결국 또 사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선뜻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길 수십번..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게 되었지만 그런 과정의 수많은 반복에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미니멀라이프, 맥시멀라이프가 아닌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한의 미니멀라이프는 인생 마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맥시멀라이프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을 느끼게 하기에 적당한 지점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내가 지향하고 싶었던 방향과 어느정도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펼친 책 안에는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무조건 비워두는 것이 아닌 적절한 공백과 군더더기 없는 채움의 모습이 딱 알맞고 보기 좋은 집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빼기 내지 없애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미니멀라이프 속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 잠시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서 시도한 것이기이 편하지도 않았고, 내내 아쉬움과 허전함이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 보이는 목펴로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서 그 순간 내 나름의 사는 방법에 대한 정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미니멀라이프와 맥시멀라이프의 만남이라고. 



집을 꾸미는 것에서부터 음식, 옷, 식물키우기와 같은 전체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코칭과 대부분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드는 생활소품 만드는 법까지 따라해 보고 싶은 팁들이 가득했다. 특히 우리 부부도 화분 키우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다육이에 큰 애정이 있는데 사실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 역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작은 초록식물이 주는 행복을 알기에 저자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이 되기도 했다.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인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강아지나 고양이만 사랑스러운 생명으로 여겼지 움직임이 없는 식물애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일까? 순리대로 배치된 자연을 더는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식물을 집 안으로 들일 때도 내가 책임감 있게 정성으로 키울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사랑과 정성 없이는 생명을 잘 돌볼 수 없으므로. 
 



사실 어느정도 정리만 잘 해도 굳이 있는 것을 버리지 않아도 될텐데 한번 쌓인 짐들은 이상하게 눈이나 손이 가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또 이런 책을 보면 나도 똑같이 사서 꾸미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새로운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중요시 하는건 자연을 손상시키며 가져오지 말것, 그리고 항상 주변에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놓여있는 위치를 바꿔보거나 외형을 약간만 달리 손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기에 비싸고 좋은 물건을 새로 사서 집을 꾸미는 것이 아닌 항상 곁에 있었던 익숙한 것들을 이용해 새롭게 표현해 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집의 인테리어를 다시 한번 바꿔보려던 계획을 세우던 나에게 많은 도움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또 이것저것 사려고 했던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지금 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기분을 내보는 방향으로 급 전환하며 나만의 개성을 집에 표현해 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공간, 같은 식물일지라도 어느 자리에서 무엇과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느낌을 보여주기에 나는 늘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며 공간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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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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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중한 사람을 먼곳으로 떠나보낸 경험은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 역시 멋모르던 시절에 돌아가셔서 그 슬픔이나 아픔을 체감할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기에 상실의 아픔이란 어떤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죽고 또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삶을 살아간다. 나역시 언젠가는 큰 상실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면, 난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난 그렇게 강하지도 그렇다고 억센 사람도 아니기에 그저 무너져 내릴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삶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고 인생을 영위해 나가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찾고자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그것에 대한 깊은 고찰과 생각을 가지고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진 소설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하는 동일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태양은 위로를 가져다주지 않고, 잠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더 이상 음식은 나에게 만족을 주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숨을 쉬는 것은,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낙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총 3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진다.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인물, 다른 배경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은 3명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아내와 사별한 슬픔을 겪었다는 것이다. 1904년 리스본에서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를 1주일 사이에 모두 떠나 보낸 토마스는 그에 대한 반항과 복수심으로 거꾸로 걷게 된다. 고미술 박물관에서 일하던 그는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가 만든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지만 그 길에서 아이를 차에 치여 죽이게 하고 차를 불태우기도 한다. 결국 찾은 십자고상은 예수의 모습이 아닌 침팬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토마스는 신부에게서 고통으로 인해 완전해진 인간을 보게 되었다. 그가 닮고 싶은 사람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지만,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뭔가를 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지금 토마스가 하고 있는 일이다. 



1939년 브라간사에 사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는 아내를 잃고, 그뒤 자신의 사무실에서 죽은 아내와 만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에 관한 유사성과 선과 악, 종교와 믿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때 또다른 노부인이 찾아와 남편 시신의 부검을 요청하고 남편의 시신 안에는 새끼곰과 침팬지가 들어 있다. 그 노부인은 남편의 시신 안에 자신을 넣고 꿰매어 달라고 청한다. 



우린 죄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죠? 우린 죄를 숨기고 죄를 잊고, 죄를 왜곡하고 죄를 포장하고, 죄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어 해요. 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우리는 복음서에서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 기억하여고 안간힘을 쓰죠.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해 미스터리에서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지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쓰듯이. 



1980년대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역시 아내와 사별한 후 우연히 가게 된 영장류 연구소에서 침팬지 오도와의 교감으로 오도를 사게 되고 그는 캐나다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이 태어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오도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 가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오도와 함께 산책을 하다 높은 바위에 올라 전설의 동물인 이베리아 코뿔소를 마주치며 바위 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고 오도는 코뿔소와 함께 사라진다. 



두려움. 피터는 불쑥 파고드는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밀려드는 공포감에 시달려본 적이 없디만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두려움이 안에서 녹아내리면서 온몸의 모공을 열어, 호흡이 가쁘고 빨라진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잃었다는 점이다. 그런 큰 상실의 고통을 겪은 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도대체 무엇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게 된 것일까? 사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 불리지만 그 산은 그렇게 높지도, 울창하지도 않다. 힘들게 오르는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고행속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닌, 자신 마음속의 믿음을 가지고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그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일지라도 그속에서 구원을 받고 깨닫게 되는 신념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의 실체를 찾는다는 것은 신기루를 찾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이 존재 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하나의 단편처럼 각기 나뉘어져 있는 이야기이기에 처음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게 현실의 이야기인지 판타지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많았다. 죽은 사람이 나타나 대화하기도 하도 사람과 동물인 침팬지가 단 한번의 악수로 교감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며 서서히 맞춰지고 이어지는 퍼즐같은 소설이기에 점점 더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 아무런 관련과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이야기들이 각각의 공통된 요소들과 연결되며 점점 이해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는 독특한 구성과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읽기 쉽거나 무작정 재미있는 책이라곤 할 수 없지만 우리 인간이 가지는 삶과 죽음, 그로 인해 생기는 상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고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느정도는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풍경을 여느 때와 똑같지만, 익숙하다고 감동이 사라지진 않는다. 지평선까지 금빛 도는 노란 풀로 뒤덮인 거대한 사바나가 펼쳐지고, 드문드문 검은 바위들이 있다. 늦은 오후가 만개한 하늘을 제외하면 단출하고 아름다운 전망이다. 그들 위쪽으로 공기의 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 안에서 해와 흰 구름이 서로 장난을 한다. 풍성한 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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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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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좋아한다면, 소설을 좋아한다면 대부분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감히 해본다. 내가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그런것은 제쳐두고 나를 감동하게 해준 이 소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인생을 바꿔 줄 만한 멋진 작품을 탄생시키고 싶다는 욕망, 나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설은 어렵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항상 그렇다. 그렇기에 작가 중에서도 소설가는 특히나 더 큰 경외심이 들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소설이 탄생되기 까지 작가의 창작의 고통부터 출판사의 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겹겹이 쌓여 우리에게로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출판의 선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글이 시대의 대작이 될 것이란 생각으로 투고하지만 한번 두번 거절 당하다 보면 점점 자신감은 바닥을 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돌고 돌더라도 어느 출판사에 안착하기만 해도 다행이지만 어디 집 한구석에 먼지 쌓인채 그대로 묵혀져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채 소멸되는 소설 또한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분명 그 중에 보석은 존재하기 마련이기에 그런 선택 받지 못한 소설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면 독자로서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인정을 받는다는 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해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가들은 더욱 그렇다. 작가는 엉성한 감정의 왕국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며, 대개의 경우, 스스로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편집자 델핀과 그의 연인이자 데뷔작이 큰 실패를 한 소설 작가인 프레드는 델핀의 고향집에 들렀을때 선택받지 못한 소설들을 받아 보관하는 도서관에 가게 되고 거기서 우연히 앙리 픽이라는 피자를 만들던 할아버지가 쓴 소설을 발견하고 성공을 예감하며 책을 출간하게 된다. 역시나 그 책은 발매를 하자마자 엄청난 판매를 기록하게 되고 무엇보다 그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큰 화제가 된다. 작가인 앙리 픽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그가 생전 책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삶을 살았기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런 흥미로운 스토리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소설의 성공으로 연관된 사람들의 삶이 바뀌며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고 또한 소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구심을 가진 한물간 루슈라는 기자는 앙리 픽이 그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직감으로 그 증거를 찾으려 고군분투 하며 제기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약간의 실마리도 남겨 두지 않은채 딱 한편의 소설을 남기고, 그것도 출간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그저 선택 받지 못한 소설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에서 잊혀져 가던 소설이 어떻게 쓰였는지 정말 앙리 픽이 쓴 것은 맞는지 진실을 밝혀줄 당사자는 이미 없기에 수많은 추측과 이야기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책의 내용이야 어떻든 책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책에 얽힌 미스터리한 비화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마케팅한 책속 출판사의 모습은 책의 내용보단 디자인이나 화제성만을 중요시하는 요즘 출판사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표지나 강렬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내용은 형편 없었던 경험을 여러번 해본  경험이 있기에 과열된 마케팅 양상이 그리 반가운 현상은 아니다. 또한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에 맡겨진 수많은 소설들이 그렇게 거절 당하고 결국 빛을 보지 못하며 작가들이 하나의 소설을 쓰기 까지의 고통과 그것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 또한 프레드를 통해 실패한 소설이 가져다 주는 상실감 역시 느낄 수 있기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수성이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을 더 크게 느껴지게 했던 것 같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들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단어들은 항상 목적지가 있으며 다른 이의 시선을 열망한다.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여행 짐을 꾸렸지만 떠나지 않은 것과 같다.

 

 

이 소설은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하나의 소설이 출간되는 과정과 수많은 작가와 책들이 등장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앙리 픽의 소설과 연관된 사람들의 인생이 책이 출간됨과 동시에 바뀌어 가며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들 역시 흥미진진하다. 사실 끝으로 갈수록 뭔가 흐지부지한 결말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반전적인 결말은 그간의 미스터리한 일들의 의문점을 해소해 주었다. 분명 미스터리물이지만 무겁거나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간의 사랑과 가족간의 행복과 같은 따뜻한 이야기와 키득거리며 웃게 만드는 저자의 유머가 적절히 녹아 있기에 그 끝은 가슴 훈훈한 따뜻한 메세지를 전달해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책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지 않을 만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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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재취업 처방전 - 내 안의 천재와 접속하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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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라는 말을 접할때 마다, 들을때 마다, 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쓸 수 밖에 없을때 마다 왠지 모를 마음의 불편함과 씁쓸함이 올라오는 건 경력이 단절 되었다는 그 이면에 세상과도 단절 되어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 또한 들기 때문일까. 분명 가정주부로 집안일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회사에서 일할때보다 몇배는 더 힘들지만 사실 그것을 우리 사회는 100% 인정해주진 않기에 충분히 힘들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상대적인 박탈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엔 사회적으로도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해도 아직 경단녀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그간의 경력 단절로 자신감이 급격히 저하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같은 아줌마를 누가 써주겠어하며 시작도 전에 이미 체념하며 작아질대로 작아진 자신감은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을 살린 취업이 아닌 그저 아이들 학원비나 벌고 용돈 정도만 벌 수 있는 간단한 파트타임 일자리에 대부분 일하게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컸다 치더라도 이제 4~50대일텐데 본인 스스로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선뜻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은 언감생심이라는 선을 그은채 나가고자 한다면 그저 그런 일자리밖에 얻을 수 없기에 우리 주부들에게도 자신감을 높이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주부 재취업이 당연한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곧 평균수명 120세 시대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주부들이 이런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개발해서 사회에 나가 당당히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에는 쉰 살도 예순 살도 청춘일 뿐이며 곧 최상의 여건이 마련될 것이니 지금부터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실 재취업에 대한 방법이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주부로 엄마로 지내다 다시 재취업에 성공하였고 특히 경기도의 여성재취업 관련 블로그의 기자로 활동하였기에 자신을 포함한 여러 경단녀들을 만나며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닦아 놓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고자 하는 주부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읽으며 이해되지 않고 적지 않게 당황스런 내용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끝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작지만 뜨거운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당신, 이제껏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오랫동안 ‘부차적 인간’으로, 직장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지원부서’로서 살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영원히 ‘주변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주부들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부라는 타이틀로 지낸 시간들 역시 새로운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이 경력이 단절된 기간이 아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성취한 것이기에 새경녀(새로운 경력을 추가한 여성)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다. 나역시 경단녀라는 단어에 위화감이 있었기에 훨씬 듣기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재능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20대라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기에 본인의 재능이나 흥미를 잘 찾지 못한채 취업난에 그저 아무 회사에 취업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주부들은 회사생활과 집안일, 육아라는 많은 부분을 거치며 생겨난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남편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뒷받침 되는 경우가 많기에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을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취업을 하기전 충분히 자신의 재능과 흥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대화하며 죽을때까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틀에 박힌 관념으로 기존의 ‘괜찮은 일자리’만 바라보며 침을 흘리기보다 내가 나가서 그 일을 ‘괜찮은 일’로 만드는 역할을 주부가 해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고 집안을 꾸려 온 배짱을 활용하면 된다. 지금과는 다른곳을 바라보고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돌려 우리가 ‘각광받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 



나도 첫째가 많이 컸고 둘째는 아직은 어려 당장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다시 일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미 나역시 4년이라는 공백기가 생겼고 다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막막하기도 하다.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감을 키워야 겠다는 것보단 그저 어떤 곳에 어떻게 취업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한 고민만을 했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런것을 해소해 주길 바라며 읽기 시작했고 초반엔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저 돈이나 시간에 얽매여 무엇이든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생각보단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해 봐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기에 결론적으론 읽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주부라는, 경단녀라는 틀에 묶여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우리를 응원해주고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누군가로부터 큰 용기를 받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이가 들었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긴 안목으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하자. 가 보지 못했던 그 길을 가자. 우리는 설익은 젊은 시절과는 비겨되지 않을 든든한 ‘배경’과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자기실현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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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의 습관
송정연.송정림 지음 / 박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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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이라는 단어가 이젠 좀 낯설기만 하다. 어린시절 한살 한살 커갈수록 마주했던 새로움과 호기심이 이젠 거의 없어졌기 때문일까, 좀처럼 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설레이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간혹 아이들이 커가면서 새로운 것에 처음 마주하게 되는 순간에 엄마로서의 설레임은 느끼곤 하지만 어쨋든 그것은 나 자신으로 인한 설레임은 아니기에,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그 무언가를 만났던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니 참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설레임은 그래도 더러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기대하던 책이 내게 오기까지의 두근거림이나 첫 장을 넘길때의 기분은 확실한 설레임을 준다. 비록 바깥 활동은 거의 못한채 집에 감금되듯 있지만 책을 읽으며 못지 않게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니 그로 인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계속 가질 수 있기에 독서를 멀리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내리는 눈을 보며 더이상 설레이기 보단 차가 막힐까봐 걱정하는 나를 느끼는 순간 이렇게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중년의 나이에 도달한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꽃잎이 떨어져 내리는데 한 옥타브 올라간 감탄사가 이제는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도시의 거리 위에 나뒹구는 꽃잎이 아름답다기보다 처절하다는 것을...


 


이 책은 두명의 저자가 각자 가장 설레이는 순간이나 인생의 설레임을 잊지 않기 위한 버킷리스트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절히 믹스 된 수많은 순간들을 그려내고 있다. 두 저자는 자매 사이로 신기하게 둘 다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감성이 풍부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끊임 없이 설레이는 일을 만들고 느끼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크고 원대한 꿈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감동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될 만한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 대한 회피일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소진하고 나서 달려가는 도피처.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아등바등하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부분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엔 회사를 다니고 바쁘게 지냈어도 나를 위한 시간이 많았기에 틈날때마다 학생시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며 설레임의 순간들을 느꼈던 시간이 많았다. 배워보고 싶던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없이 공부해 보기도 하고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니 이것저것 짬짬이 참 많이도 했더랬다. 그땐 힘든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그런것으로 풀고 해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적인 여유가 거의 없으니 맘껏 풀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점점 그것이 쌓여가는 기분을 많이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저자가 느끼는 설레임의 순간에 대한 아득한 느낌이 어렴풋이 인식되며 내 마음 역시 설레임으로 간질간질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무런 짐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연 보기, 부모님께 시 읽어드리기, 타투하기, 예쁜 드레스 입고 파티하기, 영화에 나오는 음식 만들어 먹기등 거창하지 않지만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많은 버킷리스트는 나역시 하나하나 그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떠오르게 해주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더는 가슴이 떨리지 않는 것, 그것이 늙음이 아닐까.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누구를 만나도 설레지 않고 무엇을 이뤄도 벅차지 않음을 발견했다. 두근거리지 않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꾸역꾸역 걸어는 갔지만 제자리걸음인 시간, ‘목숨의 연명’과 뭐가 다를까.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것과 뭐가 다를까. 



사실 이제 설레임을 느낄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얽매여 설레임이나 두근거림보다는 냉철한 어른으로서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한참은 남은 내 인생의 중반에도 닿지 못했는데 벌써 나를 옭아매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들었다. 굳이 큰 소망이나 희망은 아니더라도 그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소한 작은 설레임으로 인해 나이라는 숫자를 잊고 그저 한사람의 나라는 인간으로서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설레임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매번 바쁘다, 여유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많은 것들을 미뤄두곤 했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한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진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이루어 나가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을 다해 기쁨과 환희와 희망을 접수하는 일은 설렘의 연습이며 행복의 훈련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 건네는 따뜻한 악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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