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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의 습관
송정연.송정림 지음 / 박하 / 2017년 10월
평점 :
설레임이라는 단어가 이젠 좀 낯설기만 하다. 어린시절 한살 한살 커갈수록 마주했던 새로움과 호기심이 이젠 거의 없어졌기 때문일까, 좀처럼 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설레이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간혹 아이들이 커가면서 새로운 것에 처음 마주하게 되는 순간에 엄마로서의 설레임은 느끼곤 하지만 어쨋든 그것은 나 자신으로 인한 설레임은 아니기에,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그 무언가를 만났던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니 참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설레임은 그래도 더러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기대하던 책이 내게 오기까지의 두근거림이나 첫 장을 넘길때의 기분은 확실한 설레임을 준다. 비록 바깥 활동은 거의 못한채 집에 감금되듯 있지만 책을 읽으며 못지 않게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니 그로 인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계속 가질 수 있기에 독서를 멀리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내리는 눈을 보며 더이상 설레이기 보단 차가 막힐까봐 걱정하는 나를 느끼는 순간 이렇게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중년의 나이에 도달한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꽃잎이 떨어져 내리는데 한 옥타브 올라간 감탄사가 이제는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도시의 거리 위에 나뒹구는 꽃잎이 아름답다기보다 처절하다는 것을...
이 책은 두명의 저자가 각자 가장 설레이는 순간이나 인생의 설레임을 잊지 않기 위한 버킷리스트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절히 믹스 된 수많은 순간들을 그려내고 있다. 두 저자는 자매 사이로 신기하게 둘 다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감성이 풍부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끊임 없이 설레이는 일을 만들고 느끼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크고 원대한 꿈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감동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될 만한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쩌면 일상에 대한 회피일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소진하고 나서 달려가는 도피처.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아등바등하던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부분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엔 회사를 다니고 바쁘게 지냈어도 나를 위한 시간이 많았기에 틈날때마다 학생시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며 설레임의 순간들을 느꼈던 시간이 많았다. 배워보고 싶던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없이 공부해 보기도 하고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니 이것저것 짬짬이 참 많이도 했더랬다. 그땐 힘든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그런것으로 풀고 해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적인 여유가 거의 없으니 맘껏 풀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점점 그것이 쌓여가는 기분을 많이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저자가 느끼는 설레임의 순간에 대한 아득한 느낌이 어렴풋이 인식되며 내 마음 역시 설레임으로 간질간질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무런 짐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연 보기, 부모님께 시 읽어드리기, 타투하기, 예쁜 드레스 입고 파티하기, 영화에 나오는 음식 만들어 먹기등 거창하지 않지만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많은 버킷리스트는 나역시 하나하나 그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떠오르게 해주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더는 가슴이 떨리지 않는 것, 그것이 늙음이 아닐까.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누구를 만나도 설레지 않고 무엇을 이뤄도 벅차지 않음을 발견했다. 두근거리지 않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꾸역꾸역 걸어는 갔지만 제자리걸음인 시간, ‘목숨의 연명’과 뭐가 다를까.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것과 뭐가 다를까.
사실 이제 설레임을 느낄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얽매여 설레임이나 두근거림보다는 냉철한 어른으로서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한참은 남은 내 인생의 중반에도 닿지 못했는데 벌써 나를 옭아매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들었다. 굳이 큰 소망이나 희망은 아니더라도 그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소한 작은 설레임으로 인해 나이라는 숫자를 잊고 그저 한사람의 나라는 인간으로서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설레임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매번 바쁘다, 여유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많은 것들을 미뤄두곤 했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한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진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이루어 나가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을 다해 기쁨과 환희와 희망을 접수하는 일은 설렘의 연습이며 행복의 훈련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 건네는 따뜻한 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