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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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이지만 태어나며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성별, 부모, 국가등..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은 비록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고스란히 헬조선의 고통을 견뎌낼 수 밖에 없다. 오는게 있어야 가는게 있고, 인풋이 많을수록 아웃풋 역시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나라가 모든 걸 다 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져야 하고,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헌법의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의 한국은 국가로서의 제기능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라를 내맘대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고, 그렇다고해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누군가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고 그 시민을 모집한다면, 주저없이 신청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오아시스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망상일 뿐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로니아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시민은 늘 항상 언제나 국가권력보다 무겁고 소중하며 우선돼야 한다. 오로지 이것만이 아로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허투루 여기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다. 시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 자격이 없고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는 반드시 사라져야 마땅하다. 잘라서 말한다. 아로니아 시민은 곧 아로니아 국가 그 자체다.


 

 

 

비록 소설일지라도 정말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 이름부터 상큼한 아로니아 공화국은 시민의 행복이 최우선인, 나라를 유지하고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시민인 나라다. 수많은 우리 시민들이 바라고 바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아닐까. 아로니아 공화국은 잘 노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학교에선 노는 기술을 가르치고, 0세부터 매월 연금이 지급되며 군대도 필요없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동차도 필요없다. 모두 다른 언어를 쓰고 여러 나라에서 새롭게 이주해 온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지만 그로인한 차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만해도 행복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바로 아로니아 공화국 아닐까. 



국가가 뭐냐고 물으셨죠? 아로니아가 뭐냐고 물으셨죠? 국가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시민들이 만들고 세우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입니다. 아마도 지금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믿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겠죠. 그래서 저절로 모였고 이렇게 열심히 듣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로니아 공화국은 2028년 6월 23일 건국되었다. 소설 속 아로니아 공화국이 건국된 것은 지금보다 10년뒤의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 시대에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비록 소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수긍할 수 있을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저 허무맹랑한 판타지 소설로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사실과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여 상상력을 가미해 아로니아 공화국이 정말 실존할 수 있을것이란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주권적 권리를 주장하며 JDZ에서 국제분쟁을 시작하는 순간, 당당하게 JDZ 차지하여 나라를 세우고 실제로 현재 중국의 국가 주석인 시진핑이 등장해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로니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위원장인 김강현이 한국에서 검사로 살며 겪었던 부조리와 선의가 사라진 양심 없는 자본주의는 우리가 현재 한국에 살며 느끼고 있는 것들과 별반 다를바 없기에 아로니아 공화국 건국의 정당성 또한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소설 속에 제시된 모든 배경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쨋든 아로니아 공화국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수긍할 수 밖에 없고,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힘든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은 그렇기에 그저 허무맹랑한 판타지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시민을 우선으로 시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를 표방할지라도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국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재밌고 신나게 살기 위해 아로니아라는 국가를 만들었고 그로인해 아로니아는 행복할지 모르지만 아로니아의 시민은 행복을 강요받고 길들여진 것 뿐이며, 아로니아 역시 강하고 새로운 국가만이 남아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말미에 결국 우리는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산다는 이야기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행복하다면 굳이 국가는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 그 무엇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모두가 꿈꾸는 국가의 모습을 한 아로니아지만 국가가 가진 한계점을 피해갈 순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속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유쾌하고 재밌고, 경쾌한 상상력과 웃음이 가득한 소설이지만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들을 번뜩 깨닫게 해주고 인간의 삶이 무엇을 향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살았고 어디서나 살았던 사람은 영원하고, 사람이 만든 국가는 영원하지 않았다. 지나온 세상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하지도 않을 국가를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헛되고 터무니없는 아집이다. 사람과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추잡하고 초라하고 조잡스러우며 너절하고 파렴치하고 무능력한 국가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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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는 순간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전은경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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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들쑥날쑥하지만 그것을 견디고 이겨냈기에 그 끝이 더욱 위대하고 아름답게 평가되곤 한다. 비록 내 인생을 수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거나 되돌아 봐 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 혼자, 스스로 되돌아 봤을 때 후회 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을 삶을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아픔은 점점 삶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게 만들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잃게 만든다. 단지 버텨내야 했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하루가 훗날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누군가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더라면, 후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값싸고 무가치한 것이 없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온 힘을 다해 맹렬하게 파괴하는 것이 이것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이것은 물론 ‘인생’ 이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가이자 여행 작가인 저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택시 운전사, 건설현장 관리인, 북클럽 운영자, 공원 경비원, 연극배우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에 여행지에서 문득, 자신이 지옥 같은 인생을 견뎌온 힘이 글쓰기에 있음을 깨닫고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부모의 폭력과 무관심으로 절망적인 유년기를 보냈기에 그는 많은 방황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구원해준 글쓰기를 만나고 그로인해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곳에서 만난 처참하고 절망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온기를 느끼고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들 역시 실패하여 선로에 머무는데, 단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이들에게는 상처를 견딜 기적의 무기인 ‘언어’가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매일 고통을 당한다. 어디서도 치료제를 구할 수 없으니까. 심장에서 쏟는 피를 멎게 할 언어도, 다른 그 무엇도 없다.



그가 세상을 여행하며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나 절망적이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물론 못지 않지만 읽기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조언하는대로 훅훅 치고 들어오는 진짜 삶의 이야기들이 소설이 아니라 직접 보고 겪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이 훨씬 더 충격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넘어선 생사의 기로에서 처절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절망밖에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저자는 그 속에서 기적같은 힘을 발견해 낸다. 누군가의 눈엔 그저 비참한 삶일지라도 온전히 나로 살아가며 나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선 수많은 유혹들이 넘쳐난다. 그 유혹에 넘어가 삶을 망가뜨린 사람들도 있지만 그 유혹을 이겨낸 사람들이 깨닫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 역시 그런 삶을 이겨냈기에 우리의 삶은 사랑 받길 원하고, 또 스스로를 사랑하며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행운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사실 쉬워 보이지만 바쁘고 힘든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흔히 가질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비루하다고 생각했던 내 삶에 희망을 채워주고 감사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을 그래서 저자가 이 세상 모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사랑의 대상이 언제나 사람일 필요는 없다. 사랑의 대상은 수만 가지다. 어쨋든 뭔가는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빙하가 되어버린다. 심장은 딱딱한 덩어리가 되고 이 현상이 손끝까지 전이된다.


 

 

 

 

항상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사소한 아픔과 고통에도 삶을 원망하고 한탄하곤 한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처럼 누군가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말과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내 삶을 비관하며 소중한 하루을 낭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누군가의 처절하고 절망적인 삶을 맞닥뜨려야만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분명 그런것을 느껴보지도 못한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이 책을 읽게 된 나는 아마 행운아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잔인해 사실 읽는내내 마음 한켠이 불편하기도 하고 자꾸만 잔상으로 남아 날 괴롭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몸에 좋은 약은 쓰기 마련이라고 그만큼 나의 생각을 더 크게 뒤흔들고 환기시켰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분명 나의 삶이고 내가 이끌어가야 함에도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과 변수들에 끌려다니며 온전한 나의 삶을 꾸려나가지 못했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비관으로 시간을 가득채워 허비하며 살아가기엔 내게 주어진 깨닫지 못했던 사랑으로 가득한 나의 환경들이 너무나 아깝고 소중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보면 다들 느끼게 될 것이다. 되는 것도 없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억울하고, 자꾸만 불행이 찾아오기만 하는 삶에 지치고 힘든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가 전하는 러브레터가 더 많이 전해져 모두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나역시 바라본다. 



뭔가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비겁한 일도 있다. 나는 한 일, 그리고 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 때문에 우울하다. 또한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그것을 나 스스로에게서 감춤으로써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것도 빌어먹을 내 인생의 일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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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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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소설은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그 속엔 소설가의 진짜 삶과 경험들이 그대로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소설가들의 인생에선 유년기의 작은 경험 하나도 모두 소설의 자양분이 되고 소재가 되기도 한다. 작품을 위해 이야기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써내려가야 하는 삶이 쉬울리는 없다. 가끔 한 글자조차 쓰기 어려운 순간에도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소설가는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을 조각조각 남기고 그 흔적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자신의 시간을, 일상을, 여행을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작가란 기억 또는 추억을 파먹고 사는 족속들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소설의 팔할, 아니 그 이상이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기억을 좇는 추억의 추적자, 기억을 찾고 있는 추억의 탐험가로 살아간다.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불어를 전공하였기에 프랑스 문학에 대해 깊은 애정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보들레르, 랭보, 카뮈등 프랑스 문학의 거장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여행기와 소설가로서의 삶의 모습과 고뇌, 그리고 그속에서 그가 깨닫고 느낀 개인의 아픔과 사회의 고통까지 괜찮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저자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위로와 안부를 전한다. 문학작품부터 미술과 음식, 여행까지 다양한 방면의 경험과 지식을 풀어 놓는 글에선 소설가로서의 단단한 힘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느리지만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여러 단편들이 천천히, 하지만 깊숙히 내 머릿속을 채워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란 그저 이야기의 재미(오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흘러가는 시간에 맞서는 예술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 던지는 존재이다. 뭇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어긋나고 응어리진 현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작가이고, 소설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글에선 그의 애정을 듬뿍 받는 것들이 등장한다. 불어 전공자로 영향을 받게 된 프랑스 문학과 작가들의 삶을 따라 가는 여행은 소설로 만났던 공간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벅찬 감동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하고, 저자가 현재 살고 있는 부산 달맞이 고개의 탁 트인 전경을 자랑하는 서재에서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저자의 뒷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는 파릇한 에너지, 그리고 부모로서, 또 자식으로서 살아가는 나와 다를바 없는 생각과 마음이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글을 업으로 살고 있는 작가로서의 무시 못할 내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새로움은 무조건 낯선 것, 먼 곳에 있다고 고집했었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하루하루 성장하는 새로운 존재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고유한 것, 아득한 곳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시절의 착각이었다.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되뇌이는 괜찮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의 위로도 귀에 들리지 않는 때에 언뜻 눈에 박히는 또렷한 글자가 머리와 마음을 뒤흔들며 미친듯이 출렁이던 파도가 거짓말처럼 잔잔해지는 순간의 고요함이 가져다 주는 평온의 힘, 그것이 글이고 책이 가지는 힘이다. 뇌리에 급격히 박히는 강렬함이나 촌철살인의 문장보다도 글 하나하나에 진심이 묻어나는 은은하지만 짙은 향기를 가진 글은 서서히 나의 시간을 물들이며 온 몸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이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던 것 같다. 대놓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많은 책들에선 사실 그다지 큰 울림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자신이 보고, 읽고, 느낀 것들을 글로서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프로방스를 보기도 하고, 가슴 뜨거웠던 우리의 광장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기도 하고, 나의 고향이기도 한 그리운 부산을 느끼게 해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여행하며 일상을 환기시키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준다. 글쟁이로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많은 곳을 다니며 꾹꾹 눌러 쓴, 자신이 겪어온 삶의 조각들을 우리와 함께 나누며 위로와 감동을 줘야하는 작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진실한 안부의 말이 느껴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한 사람의 생을 집요하게 추억하는 여정이라고 했던가. 여행이 끝나자 비로소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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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지음 / 자화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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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고 글을 적다 보면 처음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어느순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과 글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항상 뒤죽박죽 엉킨 머릿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지만, 작정하고 시작했을 땐 도저히 그 출발부터가 답답하지만 그저 무의식적으로 끄적이다보면 엉킨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후련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정말 목이 마를 땐 그 어떤 음료수보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물이 우리의 갈증을 가장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것처럼.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그 가벼운 상태가 사실 가장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상태인 것처럼 말이다. 



세상엔 수많은 정보들로 넘쳐 난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일은, 내 삶에 좋은 영감을 주는 정보들에게 길을 터주는 작업이리라. 중요함의 우선순위를 선별해두는 것, 쓸데없는 가십에 흔들리지 않고 알차게 성장하기 위한 이 시대 필수 덕목 아닐까.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해 지금은 말하기 강의나 행사 진행자로 활동하며 프리하게 살고 있는 저자는 글을 통해 나조차 몰랐던 내 마음을 비로소 확인하고 그런 순간마다 찾아오는 평온한 공기를 사랑하기에 그 진심을 고백할 수 있는 설렘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46개의 단어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별 의미 없이 생각되던 단어들이지만, 그 안에서 저자만의 시선으로 특별하고 따뜻한 의미들을 끄집어내어 새롭게 인식될 수 있게 해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위대한 발견에는 수많은 ‘만약에’가 깃들어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인연 역시, 수시로 ‘만약에’를 곱씹어보던 그 배려의 시간들에 의해 완성됐던 것 같다. 



사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면면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단어들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내 삶에 대입해 나가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참 힘들고 번거롭게 느껴진다. 아마 그렇기에 우리가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진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잊은채 익숙함에 떠밀려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마는 것 아닐까.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나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정해두고 가야할지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들 때,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단어 하나가 큰 힘이 되고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경험을 했기에, 자신을 지탱해 준 단어들이 우리에게도 같지만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완벽하지 않은 나라도 나의 취향을 인정하고 나의 가능성을 믿게 해주는 단어,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고 배려할 줄 알게 하는 단어, 우리 관계의 농도가 한층 짙어지고 소중하게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단어. 그 모든 단어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고 그냥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에 새로운 시선과 감성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사실 ‘그냥’은 세상에서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이다. 어떤 생각도 감히 끼어 들어오지 못하는, 미세한 틈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순도 높은 담백함아 무례함으로 오해받게 될까 봐 화려한 장식들을 주렁주렁 달아놓는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안일하다고 생각했다. 뚜렷한 목표 없이 흘러보내는 시간들이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한탄할 뿐, 바꾸고자 하는 노력 역시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런 노력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진즉에 좀 더 건설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겠지. 가끔은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되겠지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어느 순간 또다른 의미와 가능성으로 다가올 때, 소소하고 작은 모든 것들에서도 큰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되고 그로인해 내 인생이 더 나다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사실 우리 삶이 매일 별반 다를바 없기에 그 속에서 찾게 되는 새로움은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을 발판삼아 의미 없을 것 같은 나의 1분 1초가, 그래도 모이고 모여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는 책이다. 



‘스스로가 인지하는 자신의 모습’에다 ‘타인의 시선 속 내 모습’을 더할 때, 진짜 ‘나’라는 사람의 완전체를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난 오늘도 네가 기억해준 나의 모습들이 몹시 궁금하다. 나에 대한 다른 누군가의 기억은, 늘 받고 싶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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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마음 사이
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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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말로는 내 마음을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고 함께 감동을 나누고 싶지만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말뿐이기에, 부족한 언변으론 오롯이 전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아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나의 진심을 전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고 그 사이에 균열이 생기며 멀어지는 가슴 아픈 경험을 하는 것 아닐까. 



말은 마음을 다 담지 못하고, 마음은 말을 미처 따라가지 못합니다. 말과 마음이 같지 않다 보니 우리는 그 사이에서 관계를 고민합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은 말과 마음 사이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갑니다. 


 

 

 

 

저자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위한 상담전문가로 가정폭력 가해남편, 가해아내를 위한 정부표준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한국의 부부와 부모 자녀가 겪는 고통의 뿌리에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있음을 발견하고 한국분노관리연구소를 설립했다. 여러기관에서 가족 관계 향상 및 분노 조절을 주제로 강사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그런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들은 세 가지 길에서 방향을 잃고 힘들어 하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말 길, 마음 길, 사이 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세 가지 길을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걸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말이란 그렇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는 말을 통해 시작된다. 상대방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또 나를 표현하는 것도 말이지만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고, 또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말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과정은 길고도 힘들다. 그렇기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하며 서서히 그 방법을 배워간다. 다양한 상호관계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통해 어떤 말이 상처를 주는지, 어떤 말을 써야 내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의 피로와 수많은 외부적 압박에 짓눌려 진짜 내 감정을 뒤로한채 자꾸 숨기기만 한다면 애꿎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폭발해버리며 상처를 줄 수 있다. 저자는 그간 서로간의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관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돌보며 가꾸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솔하게 이야기 한다. 


말을 하는 것도, 올바르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모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고 그렇기에 앞서 말한 말과 마음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이어가며 나의 삶 또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과의 사이가 상대방에겐 전혀 다른 사이로 인식되어 있다면 아무리 좋은 말과 마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로인해 사이가 틀어지고 멀어진다면 그 인식이 변하지 않는한 다신 그 사이를 메울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을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과 세상 때문에 지금 고통스럽다면 내가 고집스레 붙잡고 있는 시선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수만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가치간과 목표에 따라 추구하는 것도 달라지겠지만 그 바탕엔 항상 말,마음,사이의 길을 올바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던 것 같다. 상대방을 짓밟더라도 내가 목표로 한 정상에만 오르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성공뒤엔 더 큰 허무함과 공허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생의 목표가 우리가 아닌 나를 위한 포커스에 맞춰져 있다면,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함께 하나씩 성취하고 이뤄나가는 기쁨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따뜻한 말이 가진 힘과 진솔한 마음을 나누었을 때 그로인해 채워지는 서로의 사이가 우리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꼈기에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주고자 하는 진심어린 마음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후회하며 가슴앓이 하기전에 나의 말과 마음 사이를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은 대부분 씁쓸하다가 어쩌다 달콤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나의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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